[기고] '땅'을 알아야 지반침하 사고 막을 수 있다
2002년 개봉한 공상과학(SF)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최첨단 시스템인 프리크라임을 통해 미래의 범죄를 예측해 범행 시간과 장소, 범죄자를 특정하고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체포해 시민의 안전을 지킨다는 내용이다. 대다수의 사람은 주인공이 구사하는 혁신적인 미래 기술에 환호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기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어떠한가. 자동차가 스스로 운행하고, 로봇이 인간의 행위를 대신하는 등 영화에서나 볼 법한 기술이 현실에서 재현되고 있다.

2014년 서울 잠실동 석촌호수 인근에서 발생한 싱크홀로 지반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커졌다. 이후 수많은 연구자가 땅속에 발생한 공동(텅 빈 구멍)을 신속하게 찾기 위해 다양한 기술을 개발했다. 지금은 최첨단 장비로 수집한 정보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땅속 공동을 정확하게 찾아내는 기술까지 개발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아직 도심지에서 공동은 계속 발생하고, 굴착공사 현장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지반침하 역시 완벽히 예방하지 못하고 있다.

공학 기술은 하루가 멀다고 진화하고 있다. 반면 카를 폰 테르자기가 토질역학을 새로운 학문으로 개척한 지 100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땅이 지닌 특성을 모두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과학과 공학 기술이 지하 안전사고 예방과 더 나은 사회 건설에 기여하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를 얘기해 본다.

먼저 ‘혁신의 주체, AI’다. AI 기술 도입에 더 이상 의문은 불필요하다. 모든 공학 분야에 다양하게 도입돼 있다. 당연히 지반공학 분야에서도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지하 안전관리 분야에서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지하 안전평가, 착공 후 지하 안전조사, 육안 및 공동 조사에 AI를 접목하는 노력은 지금도 늦은 감이 있다.

‘딥테크’도 관심이다. 과학적 발견이나 혁신적인 공학 기술을 토대로 복잡한 문제를 다루는 딥테크 연구개발이 조합된 연구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 우리는 아직 땅을 다 알지 못한다. 지하 안전사고 예방에서 ‘지피지기 백전백승’을 위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땅을 알아가는 연구개발은 꼭 필요하다.

‘적정 기술과 한계 극복 기술’도 중요하다. 지하 안전관리를 위한 기술은 전통적 지반공학 기술에서 크게 발전하지 않은 채 활용되고 있다. 불편하고 효율성도 떨어지지만 익숙함을 쉽게 포기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불편한 것부터 빠르게 해결하고, 사소하지만 새로움을 찾는 과감한 시도가 기술 혁신의 첫 단추다. 보고서로 제출하는 지하 안전평가서를 클라우드 컴퓨팅 기반으로 대체하는 노력부터 시도해볼 만하다. 급변하는 기술 생태계에서 개발 기술의 실현과 정책·실무 반영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다음 단계로 진일보하는 연구개발 선순환 구조를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