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PRO] '카더라'가 사실로…불금 퇴근길 악재성 공시 '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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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오픈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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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를 돈 통으로 생각하나"
-온라인 주식 커뮤니티(투자자 A씨)

'올빼미 공시'가 기승을 부리면서 투자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올빼미 공시는 투자자들의 관심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장 마감 이후 오후 늦게 슬그머니 공시하는 것을 뜻한다. 공시 얌체족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매년 나오고 있으나 무용지물이다. 유상증자 등 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요사항 공시는 오후 7시 등 늦게까지 제출이 가능해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꾸준히 나오고 있어서다. 국내 증시 침체 국면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저평가)를 심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뿔난 개미들…주말 직전에 '올빼미 공시'

그래프=구글 캡처
그래프=구글 캡처
1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반도체 기판 제조업체인 이수페타시스는 금요일인 지난 8일오후 6시44분 약 5500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불금 퇴근시간 악재성 정보를 내보낸 전형적인 올빼미 공시 사례다. 유증 목적은 인수합병(M&A)과 시설자금 조달을 위해서다. 항간에 떠돌던 '유상증자설'이 사실로 확인된 순간이다. 이 회사는 지난 4일 인수합병과 관련한 보도에 대해 "확정된 바 없다"고 부인했다. 불과 나흘 만에 기존 입장을 바꾼 것이다. 이수페타시스의 '유상증자설'은 지난달부터 꾸준히 나왔었다. 유상증자는 신규 발행으로 주식 가치가 희석돼 주가엔 부정적으로 여겨진다. 결국 월요일인 지난 11일 주가는 22.68% 급락했다. '코리아 밸류업 지수'에 편입돼 있는 회사가 되레 '밸류 다운'을 야기하는 촌극이 발생한 것이다.
[마켓PRO] '카더라'가 사실로…불금 퇴근길 악재성 공시 '도마'
올빼미 공시는 올해 반기보고서 제출 마감일에 기승을 부렸다. 올해 반기 보고서 마감일은 광복절 연휴 직전인 지난 8월14일이었다. 이날 삼부토건의 반기 검토의견 부적정 공시는 오후 6시49분에 올라왔다. 세원이앤씨와 KC그린홀딩스도 6시 전후로 같은 종류의 공시가 나왔다. 코스닥시장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웰킵스하이텍과 제넨바이오는 반기 보고서를 각각 오후 8시53분, 오후 8시21분에 제출했다. 오후 6시 이후 반기 검토의견 부적정 공시가 게시된 코스닥 기업은 13곳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5곳에서 2.6배 늘어났다.

한 펀드 매니저는 "이수페타시스와 같은 늑장 공시 사례는 해외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이런 일부 대주주의 횡포는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에 환멸을 느끼게 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내 증시가 외면 받으면 피해자는 결국 최대 주주"라고 덧붙였다.

형식적인 공지...제도적 장치 '미비'

표=한국거래소 카인드
표=한국거래소 카인드
악재성 '늑장 공시'가 매년 되풀이되는 이유는 공시 접수 시간이 탄력적으로 운영되고 있어서다. 한국거래소의 공시 시간 규정은 허술한 편이다. 공시 접수시간은 오전 7시30분에서 오후 7시다. 금융감독원과 사전에 협의한 주요사항 보고서의 경우 오후 7시까지 수동으로 접수해 당일 공시할 수 있다. 유상증자처럼 주가에 영향을 주는 공시가 늦어지는 이유다. 공시 담당자가 이런저런 이유로 늦을 수 있다고 하면 거래소 담당자가 늦게까지 남아 제출된 공시 서류를 승인해주는 것이 구조적으로 가능한 것이다.

제도적으로 막을 수단이 미비한 점도 문제다. 거래소는 공시 지연제출, 기재누락, 미제출, 허위 기재시 최대 2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있다. 증권발행제한, 검찰고발, 경고, 주의 등 조치도 취하고 있으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거래소는 연간 올빼미 공시 일정 안내 및 실제 늦어진 공시에 대해 연휴 이후 재공시하는 등 예방 조치에 그치고 있다.

기업들의 공시 부담을 덜고 투자자들에게 더 빠른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공시 접수 시간을 지난해 한 시간 연장했으나 일부 기업들이 이를 악용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오전 일찍부터 오후 늦게까지 이어지는 공시에 거래소 담당자들은 돌아가며 '공시 당번제'를 운영하고 있다. 거래소 담당자는 "이사회가 늦게 끝나거나 증빙서류 및 공시 서식 문제 등으로 공시가 늦어지는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고 말했다.

조아라 기자 rrang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