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기 조종사의 눈 대신 드론으로 참치 떼를 찾아낸다. 드론이 수집한 영상 정보는 AI가 분석한다. 영상을 학습한 AI는 참치 떼가 만드는 고유의 포말(백파)을 선별해 선장에게 배가 가야 할 길을 알려준다. 저궤도 위성에 기반한 통신이 가능해지면서 부산에 설치된 대시보드로 멀리 태평양에 뜬 원양어선 소속의 드론을 관리할 수 있게 됐다. 부산 스타트업 해양드론기술이 조만간 실현할 미래다. 기계의 눈은 공장과 노인 요양시설로 향한다. CCTV에서 수집된 영상은 공장 부품의 공정률을 뚝딱 계산하고, 생산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자재의 최적 배치를 추천한다.

침대에 누운 노인의 낙상 사고를 예방하는 것도 IoT(사물인터넷)의 역할이다. 수십 개의 계약서를 관리하는 PM(프로젝트 매니저)도, 역직구하는 외국인도, 물고기 폐사를 걱정하는 수산업자의 고민도 모두 AI가 해결한다.
IT 강소기업이 모인 부산 해운대구 센텀 일반산단.  부산시 제공
IT 강소기업이 모인 부산 해운대구 센텀 일반산단. 부산시 제공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부산시, 부산정보산업진흥원이 지원하는 이 사업은 부산의 산업·경제적 문제를 지역 기업의 디지털 기술로 해결하라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지난 6월 부산의 6개 기업이 각자의 영역에서 새로운 해법을 제시했다.

김태열 부산정보산업진흥원장은 “기업이 가진 기술을 활용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도록 지원하지만, 기업 입장에선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한 기회가 되는 제도”라며 “부산이 가진 지산학(지자체, 산업, 대학) 체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선정 기업이 제시한 기술의 실현 가능성을 극대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역색’ 강조한 과기부 디지털 지원책

수산업계의 더딘 디지털 전환은 업계와 부산시 기업 지원 기관의 고민 중 하나다. 어기야팩토리는 센서를 단 이동식 수조로 이런 고민을 해결한다는 계획이다. 수산풀필먼트(WFC)의 수조에 든 해수질을 AI가 관리한다. 폐수는 얼려서 재활용하고, 정화를 한 해수는 수조 속 어종에 따라 염도와 온도를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이미 베트남 기업과 이동식 수조 수출 계약을 맺었으며, 활어 트럭 기반의 순환식 배송 대신 내륙 거점의 수산풀필먼트 방식의 유통 구조가 빠르게 정착할 것이라는 평가다.

부산정보산업진흥원이 추진하는 이번 과기부의 공모 사업은 각각 ‘지역 디지털 기초체력 지원 사업’과 ‘지역 자율형 디지털 혁신 프로젝트’다.

지역 디지털 기초체력 지원 사업은 기업 육성과 품질 인증 인프라를 지원해 디지털 혁신 프로젝트를 발굴하는 사업이다. ‘지역 자율형 디지털 혁신 프로젝트’는 기업이 가진 디지털 기술력으로 지역의 현안을 해결하고 지역 주도의 혁신 환경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지역 디지털 기초체력 사업에는 어기야팩토리를 비롯해 해양드론기술, 딜리버드코리아, 에스씨티, 모두싸인 등 5개 기업이 선정됐다.

해양드론기술은 참치어군 AI 자동 탐지 및 위성운항관리 플랫폼 개발 과제를 제안했다. 어기야팩토리는 ESS(에너지저장장치) 기술을 활용한 WFC(수산풀필먼트센터) 순환자원 처리 AI 솔루션을 개발할 예정이다. 딜리버드코리아는 해외 주문 및 물류관리 시스템 고도화를 통한 국내 쇼핑몰 글로벌 시장 진출을 지원할 예정이다. 에스씨티는 가정 및 시설의 노인 돌봄 혁신 플랫폼인 ‘아르고스 케어’ 서비스를 고도화한다. 기업의 전자 계약으로 수백억원의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 모두싸인은 계약생애주기(CLM) 서비스를 개발할 방침이다.

일주지앤에스는 디지털 기술로 지역 현안을 해결하는 ‘지역 자율형 디지털 혁신 프로젝트’에 선정됐다. 부산지역 중소 조선기자재 기업을 위한 보급형 AI 모델을 만들 계획이다.

○다양한 지역 현안, 데이터로 해결

부산정보산업진흥원과 함께 사업을 수행하는 6개 기업은 해양, 물류, IT 등 각 산업군에서 디지털 전환과 관련한 기술을 이미 수년 전부터 습득해온 기업이다.

해양드론기술은 해양용 드론을 직접 개발해 부산항에 정박한 배의 선원에게 약품과 음식 등을 배달하며 장거리 해양 ‘비행술’을 익혔다. 원양어선 헬기의 드론 대체 가능성을 찾은 원동력이 됐다. 수산물 유통 사업으로 시작한 어기야팩토리는 산지부터 소매상까지 최대 3번에 이르는 수조 교체 과정에서 물고기 폐사 리스크가 크다는 문제점에 착안해 AI 기반의 수질 정화 및 물류 시스템 개발에 도전장을 냈다.

딜리버드코리아는 코로나19 시점 국내 온라인 쇼핑몰의 해외 판매 홈페이지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매출이 잘 일어나지 않는 구조를 파악해 역직구 플랫폼으로 관련 시장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구매와 배송 대행에만 집중한 사업 구조이므로, 딜리버드코리아의 성장이 국내 제품 판매업자의 성장으로 이어진다. 딜리버드코리아는 최근 3년(2021~2023년)간 230%의 매출액 성장을 일궜다. 모두싸인 역시 올해에만 177억원의 투자를 받으며 기업의 전자계약 표준을 만든 데 이어 모든 전자계약의 개별 조항까지 관리하는 계약생애주기(CLM) 시스템 개발에 나선다.

센서와 데이터 수집 경험을 풍부하게 보유한 에스씨티는 초기 경쟁력 확보 모델이었던 스마트팩토리 기술을 헬스케어 분야에 적용, 아르고스케어를 2021년 개발해 꾸준히 보완해왔다. 스마트기저귀, 노인 낙상 예방, 외출 알림 앱 등을 개발할 예정이다. 이 기업의 가장 큰 경쟁력은 이미 요양원 등에서 이뤄지는 모든 의료 데이터를 확보했다는 점이다.

일주지앤에스는 ‘보급형’ 공장 AI 모델을 제시했다. 부산에 가장 많이 집중된 조선기자재 기업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다. 생산 라인 대신 숙련공 경험 중심의 프로젝트형 공장, 중소기업 등 두 가지 특성에 맞는 가성비 높은 공정 혁신 기술을 개발할 예정이다. 이미 홀로그램 기반의 저숙련공 속성 교육 기기 등 기술 개발을 위한 채비를 갖춘 기업으로 꼽힌다.

○지산학 모델 적극적으로 활용한 기업들

부산의 강점은 대도시에 몰린 풍부한 대학 인프라다. 부산시는 지산학 체계를 통해 교육부와 대학 중심의 기존 산학협력의 틀을 고도화하고 있다.

해양드론기술과 어기야팩토리는 해양대와 손을 맞잡았다. 해양대는 해양 분야의 지식을 살려 AI 알고리즘의 신뢰성을 검증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어기야팩토리는 현장에서 모인 수질 데이터를 해양대의 정밀 검사기를 활용해 신뢰도를 높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일주지앤에스는 보급형 AI 모델의 확산을 위한 거대한 협의체를 꾸렸다. 부경대, 부산대 소속 교수의 기술 자문부터 기술 실증을 위한 지역 중견 조선기자재 기업이 사업에 참여했다. 이외에도 부산조선해양기자재공업기술협동조합 등 산업 단체가 기술 개발과 시장 확대를 도울 방침이다.

부산=민건태 기자 mink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