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나눌 것인가?

유난히도 퇴근이 늦었던 어느 가을, 이제 막 나눗셈을 배우기 시작했던 큰아이는 숙제를 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저녁 식사를 하지 못한 채 늦은 귀가를 했는데, 나눗셈 숙제 앞에서 끙끙거리는 아이에게 “이 정도를 어려워해선 안 된다”며 차갑게 말했습니다.

다음 날 초등학교 교사인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원래 초등학교 남자애들은 나눗셈을 어려워해 현호야, 절대로 혼내선 안 된다”며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한 자신만의 비법을 공유해왔습니다.

마법사의 비책처럼 출력물을 들고 집으로 향했고, 아이로부터 용서를 구한 후 비법에 따라 함께 공부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이와 함께, 숙제를 마무리하지 못하더라도 밤 10시가 되면 예외 없이 잠을 자자고 약속했습니다. 지금은 5학년이 된 큰아이는 수학을 참 좋아하게 됐습니다. 나눗셈 때문에 힘들었던 순간은 어렴풋하게만 기억난다고 말합니다. 저도 너무 늦지 않게 사과해서 다행이라고 느꼈던 나눗셈 일화입니다.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관한 고민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강서경 작가의 작품이 나눈 빛과 그림자 / 사진. ⓒ김현호
강서경 작가의 작품이 나눈 빛과 그림자 / 사진. ⓒ김현호
시점을 나눴더니 서로 이해하게 됐어요

주로 ‘장소’, ‘도시’, ‘국가’ 등을 작품명으로 정하는 소설가 제임스 미치너의 작품 가운데 제목 자체가 <소설>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4명의 인물에게 고유의 시점을 부여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작가·편집자·평론가·독자의 시점에서 아주 약간의 시차를 허용하는 정도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공감했던 기억이 납니다. 작품의 구체적인 내용보다 ‘어떻게 이야기를 이렇게 구성할 수 있었을까?’하고 감탄했던 당시의 기억이 매우 선명합니다.

R.J.팔라시오의 원작 소설 <아름다운 아이>를 영화화한 작품 <원더(2017)>는 주인공 어거스트 풀먼(이하 어기), 엄마, 누나로도 부족해 어기의 친구, 누나의 친구 시점에서 동일한 사건을 재조명합니다. 인물의 시점에 따라 이야기를 나눈 구성이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감동적으로 전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겠죠? 인물의 시점에 따라 동일한 사건을 따라갈 때마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하고 깊게 공감하게 됐습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사자성어는 어린아이들이 모두 알 정도의 쉬운 말이지만, 막상 실천하기는 어렵습니다. 나뉜 시점에 따라 인물을 조명하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리게 되었으니, 다행스럽다고 봐야겠죠?
리움의 창틀이 나눈 햇살과 보행자 / 사진. ⓒ김현호
리움의 창틀이 나눈 햇살과 보행자 / 사진. ⓒ김현호
다중우주에서 함께 보낸 시간

폴 오스터의 마지막 작품 <4321>은 인물의 이야기를 공간으로 나눴습니다. 그런데 그 규모가 큽니다. 공간을 단지 장소, 도시, 국가 정도의 층위로 나누지 않고 무려 평행우주의 세계를 그렸기 때문입니다. 각각 수백 장에 이르는 두꺼운 2권짜리 책 <4321>은 부연 설명 없이 읽기 시작했을 때 도무지 갈피를 잡기 힘들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지? 죽었던 인물이 되살아나고 이복(異腹)남매였던 인물이 어느 순간 연인이 되는 게 이상한데? … 아 평행우주로구나’ 하고 뒤늦게 눈치챘습니다.

어떻게 70대의 거장 소설가는 미국의 근현대사 책에 나올 법한 문장들을 쌓아 끝끝내 평행우주 이야기로 완성해낼 생각을 했을까요? 막대한 분량의 이야기를 4개의 우주로 나눈 기획 자체에 감탄하게 됐습니다. <4321> 속 다양한 삶을 사는 퍼거슨을 보며 저도 ‘그때 이런 선택을 했더라면…” 하는 상상을 했습니다. (사실 그런 상상을 매우 자주 합니다) 어쩌면 그 수많은 경우의 수가 합쳐진 존재가 현재의 우리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하루하루를 더욱 소중하게 보내야 하겠다는 다짐도 생겼습니다.
시드니 퀸 빅토리아 빌딩의 창틀이 나눈 풍경 / 사진. ⓒ김현호
시드니 퀸 빅토리아 빌딩의 창틀이 나눈 풍경 / 사진. ⓒ김현호
잊을 수 없는 평행우주의 영화라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가 있습니다. 작품 속에서 주인공은 가장 부족한 역량의 에블린(주인공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까닭에 다른 우주에 존재하는 동일 인물들을 대표할 구원자로 낙점받게 됩니다. 엄마와 감정의 골이 깊어져 상처를 얻게 된 딸 조이가 때로는 평행우주를 넘나드는 악당이 되기도 하고, 여린 마음씨의 남편 웨이먼드가 다른 우주에선 영웅 서사의 주인공처럼 엄청난 힘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시종일관 평행우주를 넘나들며 대소동을 벌이던 인물들에게 중요한 것은 단 하나입니다. 엄마 에블린이 딸 조이에게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다고 해도 어디에서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해도, 나는 너와 함께 있고 싶단다”라고 말합니다. 인물을 평행우주로 나눠 한바탕 난리법석을 그려낸 다니엘 콴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참 단순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함께 보내는 시간이야”라고 말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역시 이야기의 구도를 잘 나눴더니 감동이 더 커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니엘 콴의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 스틸 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다니엘 콴의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 스틸 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나누기의 왕

잘 나누기로 치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을 빼놓을 수가 없겠죠. <인셉션(2010)>에서는 꿈을 잘게 나누는가 싶더니만, <덩케르크(2017)>에선 하늘과 육지, 바다를 나누고 그마저도 한 시간, 일주일, 한 달로 잘게 쪼개고 말았습니다. 배리 젠킨스 감독의 <문라이트(2016>는 한 인물의 시간을 3개로 나눴죠. 그다지 닮지 않은 세 명의 배우가 각각 어린이·청소년·성인 시절을 연기하는데요. 그때마다 리틀·샤이론·블랙이라는 별명과 본명을 병행해 부르는 까닭에 ‘참 흥미롭게 나눴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 가운데 ‘셋잇단음표(보통 두 개로 나눠야 할 음을 세 개로 나눠 연주하도록 지시하는 음표)’가 유난히 많은 ‘비포 롱(Before Long)’이라는 연주곡이 있습니다.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이 음악에 적절한 셋잇단음표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해봤습니다. 아마도 연주자가 사카모토 류이치의 셋잇단음표를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특유의 고혹적인 음악 맛을 오롯이 느낄 수 없을 듯합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언제라도, 만약 나눗셈 공부를 어려워하는 어린이가 있다면, 학습지 문제를 한 개라도 더 풀라는 말 대신 나누기의 천재들에 관해 이야기를 꺼내 보는 건 어떨까요?

[사카모토 류이치의 'Before Long']


김현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