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뇌가 생각보다 게으르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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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정소연의 탐나는 책
세포가 알려주는 감정의 비밀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리사 펠드먼 배럿 지음, 최호영 번역, 생각연구소
세포가 알려주는 감정의 비밀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리사 펠드먼 배럿 지음, 최호영 번역, 생각연구소
‘헛다리 짚기’가 뇌에서는 기본
"슉슉".
사무실에서 들려온 수상한 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아니, 회사에서 누가 감히 전투 게임을?' 범인을 찾아 고개를 돌렸지만, 1분 뒤 진실이 드러났다. 범인은 다름 아닌 내 책상 위의 이어폰. 음악을 재생하고 있었을 뿐이다. 어이없는 해프닝이지만,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덮어놓고 동료를 비판한 나의 '인성 노출적 실수'를 따뜻하게 감싸준다.
우리의 뇌는 상황을 판단할 때 꽤나 부주의한 친구다. 마치 월요일 아침의 직장인처럼, 최소한의 에너지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려 한다. 뇌의 본업은 멋진 생각이나 감정 표현이 아니라, 우리 몸의 복잡한 시스템을 무리 없이 돌아가게 만드는 일종의 콘트롤타워 역할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보를 수집하느라 진땀 빼는 것보다는 이미 가진 데이터로 '얼추' 상황을 때우는 걸 좋아한다. 믿기 어렵지만 감정마저 뇌의 '게으른 추정'이다. 심장이 좀 빠르게 뛰면? "아, 이거 불안이구나." 한숨이 나오면? "역시 우울하네." 입이 바짝 마르면? "긴장되는 거겠지." 마치 고등학교 시험 문제처럼, 뇌는 익숙한 보기 중에서 하나를 골라 체크할 뿐이다.
하지만, 이 게으른 뇌도 변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희망적인 메시지다. 늘 하던 대로만 반응하는 '인이 박인’ 뇌도 새 경험을 통해 조금씩 바뀔 수 있다. 가령,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의견을 가진 사람을 만났을 때, 5분 만이라도 그의 입장을 상상해 보는 거다. "진짜 왜 저런 생각을 할까?" 하고 말이다. 쉽지는 않지만, 이것이 게으른 뇌에게 주는 새로운 운동이 될 수 있다.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마지막으로 이 책은 일본 노인들의 시를 모은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이라는 재치 있는 시집처럼, 몸과 마음의 반응을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두근거림은 사랑일까, 불안일까, 아니면 그저 부정맥일까? 뇌에게 물어봐도 그저 느슨한 추측만 할 뿐이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 게으른 친구의 습관을 조금씩 바꿔주는 인내심이 아닐까.
▶[관련 리뷰] "연상이 내 취향인데, 이젠 없네"…일본 포복절도한 노인들의 詩
저자 리사 펠드먼 배럿은 뇌과학 분야의 혁신을 선도하는 심리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다. 다른 저서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은 뇌의 최신 지식을 광범위하게 다룬다. 몇 가지를 소개하면, 인간은 국가, 법 같은 ‘사회적 현실’을 만들기에 문명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회적 판타지가 부서지기 쉽다는 점은 자주 망각한다. 또 “우리 뇌는 보이지 않게 다른 뇌와 함께 움직인다.” 즉, 우리는 타인에게서 행불행이 온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생각을 뒤엎는 이 책들에서 딱 하나만 고른다면? 내 생각에도 구멍이 많고, 상대의 어떤 말은 그저 무신경한 말실수일 수도 있다. 그가 어떤 세월을 살아왔는지 반영하는 것일 뿐. 그래서 동료를 게임 중독으로 몰아간 나는?
정소연 세종서적 편집주간
"슉슉".
사무실에서 들려온 수상한 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아니, 회사에서 누가 감히 전투 게임을?' 범인을 찾아 고개를 돌렸지만, 1분 뒤 진실이 드러났다. 범인은 다름 아닌 내 책상 위의 이어폰. 음악을 재생하고 있었을 뿐이다. 어이없는 해프닝이지만,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덮어놓고 동료를 비판한 나의 '인성 노출적 실수'를 따뜻하게 감싸준다.
우리의 뇌는 상황을 판단할 때 꽤나 부주의한 친구다. 마치 월요일 아침의 직장인처럼, 최소한의 에너지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려 한다. 뇌의 본업은 멋진 생각이나 감정 표현이 아니라, 우리 몸의 복잡한 시스템을 무리 없이 돌아가게 만드는 일종의 콘트롤타워 역할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보를 수집하느라 진땀 빼는 것보다는 이미 가진 데이터로 '얼추' 상황을 때우는 걸 좋아한다. 믿기 어렵지만 감정마저 뇌의 '게으른 추정'이다. 심장이 좀 빠르게 뛰면? "아, 이거 불안이구나." 한숨이 나오면? "역시 우울하네." 입이 바짝 마르면? "긴장되는 거겠지." 마치 고등학교 시험 문제처럼, 뇌는 익숙한 보기 중에서 하나를 골라 체크할 뿐이다.
하지만, 이 게으른 뇌도 변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희망적인 메시지다. 늘 하던 대로만 반응하는 '인이 박인’ 뇌도 새 경험을 통해 조금씩 바뀔 수 있다. 가령,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의견을 가진 사람을 만났을 때, 5분 만이라도 그의 입장을 상상해 보는 거다. "진짜 왜 저런 생각을 할까?" 하고 말이다. 쉽지는 않지만, 이것이 게으른 뇌에게 주는 새로운 운동이 될 수 있다.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마지막으로 이 책은 일본 노인들의 시를 모은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이라는 재치 있는 시집처럼, 몸과 마음의 반응을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두근거림은 사랑일까, 불안일까, 아니면 그저 부정맥일까? 뇌에게 물어봐도 그저 느슨한 추측만 할 뿐이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 게으른 친구의 습관을 조금씩 바꿔주는 인내심이 아닐까.
▶[관련 리뷰] "연상이 내 취향인데, 이젠 없네"…일본 포복절도한 노인들의 詩
“당신이 의사를 찾아가 왠지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가쁘다고 호소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라. 이것은 심장마비 증상일 수도 있다. 만약 당신이 여성이라면 불안 때문이라는 진단과 함께 그냥 집으로 돌아갈 확률이 높다. 반면에 당신이 남성이라면 심장병 진단을 받고 생명을 구하는 예방 치료를 받게 될 확률이 높다. 이런 차이로 인해 65세 이상 여성이 남성보다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사례가 많다.”뇌는 게으르고 편견이 가득할지 몰라도, 감정과 이성이 손에 잡히는 무엇이 아니라도, 감정을 세심하게 분류하면 도움이 된다. 감정이 추정이든 계산에 불과하든, 우리는 혼자서 또 같이 잘 살기 위해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스스로를 납득시킬 필요를 느낀다. 예로, 우리가 ‘불안’을 느낄 때, 그 이유는 상황마다 다르다. 해야 할 일이 쌓여서 불안한 것인지, 새로운 상황이 두려워서인지, 단지 충분히 쉬지 못해 예민해진 것인지 말이다.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서문 중에서
저자 리사 펠드먼 배럿은 뇌과학 분야의 혁신을 선도하는 심리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다. 다른 저서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은 뇌의 최신 지식을 광범위하게 다룬다. 몇 가지를 소개하면, 인간은 국가, 법 같은 ‘사회적 현실’을 만들기에 문명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회적 판타지가 부서지기 쉽다는 점은 자주 망각한다. 또 “우리 뇌는 보이지 않게 다른 뇌와 함께 움직인다.” 즉, 우리는 타인에게서 행불행이 온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생각을 뒤엎는 이 책들에서 딱 하나만 고른다면? 내 생각에도 구멍이 많고, 상대의 어떤 말은 그저 무신경한 말실수일 수도 있다. 그가 어떤 세월을 살아왔는지 반영하는 것일 뿐. 그래서 동료를 게임 중독으로 몰아간 나는?
정소연 세종서적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