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문세 /사진=변성현 기자
가수 이문세 /사진=변성현 기자
가수 이문세가 "은퇴는 없다"고 못 박으며 '현재진행형 레전드'다운 음악 행보를 이어간다.

이문세는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스탠포드호텔에서 정규 17집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진행은 이문세와 친분이 깊은 방송인 박경림이 맡아 의미를 더했다.

1983년 가수로 정식 데뷔해 '옛사랑', '사랑이 지나가면', '깊은 밤을 날아서', '소녀', '광화문 연가',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휘파람', '그녀의 웃음소리뿐', '붉은 노을' 등의 곡을 히트시킨 이문세는 한국 대중가요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의 발라드는 4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남녀노소 불문하고 많은 이들의 마음에 가닿고 있다.

이문세의 올해는 '쉬지 않고 마이크를 잡은 해'였다. 시즌제 콘서트 '씨어터 이문세' 투어를 돌며 전국 각지의 팬들을 만났고, MBC 라디오 '안녕하세요 이문세입니다'로 DJ 복귀에도 성공했다. 이어 내년 정규 17집 발매까지 예고, 선공개곡을 통해 분위기 예열에 나섰다.

이번 행사는 앨범 발매를 앞두고 수록곡 2곡을 선공개하면서 마련한 자리다. 이문세는 지난해 12월 '웜 이스 베러 댄 핫(Warm is better than hot)'을 선공개 한 데 이어 이날 오후 6시에 '이별에도 사랑이', '마이 블루스' 두 곡을 추가로 내놓는다.

어느덧 앨범 앞에 '17'이라는 숫자가 붙게 됐지만 이문세는 "창작의 고통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다"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는 "예전에는 뭣도 모르고 음악을 만들고 씩씩하게 해왔는데 이제는 조금 더 면밀하고 세심하게 분석하고 곡의 완성도와 '지금 이 시기에 이 음악이 맞나'라는 생각까지 꽉 차 있어서 예전보다 새 음악을 만들기가 녹록지 않다. 그러다 더뎌지고 늦춰졌지만 빠르다고 좋은 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내년 정규 17집 발매를 목표로 현재도 곡 작업에 한창이라고 했다. 이문세는 "지난 16장의 음반을 어떻게 냈는지 생각이 안 날 정도로 까마득하다. 1집 앨범을 만났을 때 '17장, 20장 되는 가수가 되고 말 테야'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주어진 환경, 좋은 음악들을 그때그때 낸 게 차곡차곡 쌓여서 16장의 앨범이 나왔던 거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켜켜이 쌓아나가서 몇겹이 완성되어야 17집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문세 "잘 놀다 잘 가자"…박수 있다면, 은퇴는 없다 [종합]
'이별에도 사랑이'는 이문세가 차세대 싱어송라이터 헨(HEN)과 '웜 이스 베러 댄 핫'에 이어 함께 작업한 두 번째 곡이다. 템포 루바토를 극대화해 섬세하고 강렬한 이별의 감정을 표현한 발라드로, 연인과의 이별을 넘어 인생에서 소중한 사람들과의 다양한 이별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다.

이문세는 헨을 "천재성을 지닌 뮤지션"이라고 극찬했다. 그는 "현대와 과거를 넘나드는 멜로디 진행과 노랫말로 내 마음을 먼저 움직였다. 너무 멋있는 뮤지션"이라면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OST로 처음 만났는데 힘을 하나도 안 주는데 할 말은 다 하더라. 대범한 뮤지션의 등장에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이어 곡에 대해 "'옛사랑'이 나 혼자 듣고 싶은 곡이었다. 훅이 없고, 기승전결이 완벽하게 갖춰진 게 아니라 독백하는 거였다. 이 곡도 다 같이 합창하자는 곡은 아니다"라면서 "다시 한번 자기 사랑과 이별에 대해 짚어보는 노래가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뮤직비디오에는 배우 윤계상이 출연해 진한 감성 연기를 펼친다. 이문세는 "내가 4년만 어렸어도 윤계상 씨 역할을 했을 텐데"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또 다른 수록곡 '마이 블루스'는 이문세가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로, 가수로 긴 시간을 살아오며 느낀 감정과 상황들을 솔직하게 담아냈다.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목가적인 일상과 무대의 삶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이문세의 진솔한 이야기를 녹여냈다. 15집 '무대', 16집 '프리 마이 마인드(Free my mind)'에 이어 이문세의 인생관을 보여주는 시리즈다.

'사랑 한 번은 해봤으니까 / 내 인생 밑지지는 않았나보다 / 박수 한 번은 받아봤으니까 / 내 인생 끝이어도 좋아', '어차피 발버둥 쳐도 / 인생은 가는 거 / 누구나 가는 그 길 / 잘 놀다 가는 거지' 등의 가사가 인상적이다.

이문세는 기타를 잡고 편안하게 '툭' 부르다 만들어진 곡이라고 했다. 그는 "사석에서 친구, 가족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잘 놀다 잘 가자'는 거다. 함축된 의미가 있다. 잘 살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다. 잘 가기도 쉽지 않다.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한 시간이다. 이 땅에 함께 살아가는 나보다 조금 어린 젊은이들에게 충고와 용기, 위안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문세 "잘 놀다 잘 가자"…박수 있다면, 은퇴는 없다 [종합]
어느덧 대중 앞에서 노래한 지 4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문세는 "중간에 힘든 과정도 있었고, 넘어야 할 강과 산도 있었다"면서 그런데도 마이크를 내려놓지 않았던 이유는 자신의 노래를 듣고 터져 나온 '박수' 덕분이라고 했다.

"음악을 하는 사람은 단순한 삶을 살아야 한다"며 자기는 음악 외에 다른 사업도 하지 않는다고 강조한 이문세는 "히트곡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머릿속에 있지만, 앨범을 낼 때마다 '이 음악이 과연 먹힐까 안 먹힐까', '트렌디한가 아닌가'에 대한 고민은 없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이크를 잡고 박수를 받았던 게 원동력이 됐다. 음반뿐만 아니라 공연에도 에너지가 됐다. 음악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최근에는 '가요계 선배' 조용필이 20집을 발매하며 저력을 과시했다. 이문세는 "그분들이 앞장서서 가니까 나도 뒷짐 지고 여유 있게 쫓아갈 수 있는 거다. 용필이 형님은 은퇴 공연을 안 했으면 좋겠다. 무대에 서 있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고 존경스럽다"면서 "그게 뒤에서 묵묵히 쫓아가는 후배에 대한 일종의 용기, 위안이 될 수 있다"고 소신을 밝혔다.

"난 은퇴 없다"는 약속을 내걸기도 했다. 이문세는 "은퇴라는 자체가 쓸쓸히 퇴장한다는 거다. 아티스트한테는 퇴장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손뼉을 쳐주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객석에 앉아있다면 그분을 위해 휠체어를 타고서라도 마이크를 잡아야 하는 운명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대중들한테 박수 한 번은 크게 받아봤으니 밑질 건 없고, 사랑 한 번 진하게 해봤으니 여한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에는 소유의 가치와 존재의 가치 두 가지가 병행한다고 합니다. 어느 쪽에 비중을 더 둘 것인지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 거죠. 전 본능적으로 어렸을 때부터 존재의 가치가 조금 더 컸던 것 같습니다.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를 했을 때 수많은 TV 프로그램에서 제안이 오고 수많은 클럽에서 돈을 많이 주겠다는 제안을 해왔지만 거절했어요. 전 '별밤지기'였기 때문이죠.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가치를 스스로가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음악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같아요. 폼 잡으려는 것도 아니고, 살아보니 정말 인생이 그렇더라는 거죠."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