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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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13일 "고려아연과 대한민국 산업의 영혼을 위해, 모든 주주와 국민께서 고려아연을 지켜주시고 함께 해달라"고 호소했다. 고려아연은 지난달 30일 제출한 2조5000억원 규모 일반공모 유상증자 결정을 이날 전격 철회했다. 최 회장은 기습 유상증자 발표로 시장에 혼란을 초래한 점을 공개 사과하고,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놓고 이사회 독립성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임시 주주총회 표 대결을 앞두고 경영권 분쟁 중인 MBK파트너스·영풍 연합과 지분율 격차가 벌어지자 소액주주의 지지를 끌어내려는 뜻으로 풀이된다.

고려아연, 2조5000억 규모 유증 철회…"진심으로 사과"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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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회장은 이날 서울 중구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언제나 그랬듯 고려아연과 그 모든 임직원은 주주의 현명한 판단을 믿고 의지한다"며 "지난 60일간 힘든 싸움을 하는 고려아연을 긍휼히 여겨 주시고, 긴박한 가운데 때로는 한가지 목표만을 집중하며 행동하는 저희가 보다 많은 것을 살필 수 있도록 이끌어 달라"고 요청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일반공모 유상증자 철회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오전 고려아연은 임시 이사회를 열어 2조5000억원에 달하는 유상증자 결정을 철회했다. 이에 대해 최 회장은 "다양하고 독립적인 주주 기반을 강화하고자 도모했던 일이었지만, 긴박하고 절박한 상황 속에서 충분히 사전에 기존 주주님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무겁게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최 회장은 자사주 공개매입 종료 직후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추진해 시장의 혼란을 초래한 점에 대해 고의가 아니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최 회장은 "금융시장에서 공개매수 등에 상당히 서툰 점이 많았다"면서 "지난달 23일 공개매수가 끝나면서 (주가가) 상한가를 치고, 아주 적은 거래량을 통해 엄청나게 변동하는 현상이 있을 것이라고는 솔직히 말해 예상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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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회장은 소액주주 보호 및 참여 강화 방안과 주주 친화 방안도 밝혔다. MBK·영풍 연합과 지분율 격차가 벌어지자 소액주주에 지지를 호소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날 MBK는 특수목적법인(SPC) 한국기업투자홀딩스를 통해 공개매수 결제일 이후인 지난달 18일부터 이날까지 고려아연 28만2366주(발행주식총수의 1.36%)를 취득했다고 공시했다. 이로써 MBK·영풍 연합의 고려아연 지분율은 기존 38.47%에서 39.83%로 증가했다.

반면 최 회장 측 지분율은 34.65%로 추정된다. 우군으로 분류됐던 한국투자증권(15만8861주·0.87%)이 이탈하면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MBK·영풍 연합이 사실상 승기를 잡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다만 최 회장은 지분율 격차가 5%포인트 안팎까지 벌어졌다는 추정에 대해 "추측성 기사엔 동의하지 않는다"고 짧게 답했다. 주요주주 국민연금과의 소통 여부를 묻는 말에도 답을 아꼈다.

최 회장은 "기관 투자자와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고 경영 참여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정관에 명문으로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소수주주 다수결제도'(MOM·Majority of Minority Voting)를 통해 지배주주 이외에 소액주주분들의 의사를 반영해 일정한 이사를 추천하는 방안 등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MOM은 지배주주를 제외한 소액주주의 의사와 여론을 이사회 구성 및 주요 경영 판단에 반영할 수 있는 방식이다.

아울러 그는 "주주에게 정기적인 수익을 제공해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도모할 수 있도록 분기 배당을 추진하고, 배당 기준일 이전 배당을 결정해 예측 가능성과 함께 회사의 신뢰도를 높이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연말 주총 표 대결서 결판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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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이르면 연말 임시 주총에서 표 대결로 판가름 날 전망이다. 최 회장은 "앞으로 다가올 임시주총 또는 정기주주총회에서 고려아연의 운명을 결정할 사람은 회사의 우호 세력도 아니며, 영풍, MBK는 더더구나 아니다"라며 "고려아연의 캐스팅 보트는 고려아연을 믿고 사랑하는 수많은 주주"라고 밝혔다.

앞서 영풍은 임시주총 소집 허가를 법원에 신청한 상태다. 이달 27일 심문기일을 거쳐 법원이 인용 결정을 한다면 임시 주총은 이르면 올 연말께 열리게 된다.

최 회장은 "고려아연은 좋은 주식이기 전에 좋은 회사다. 최대한 책임감 있는 방법으로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주총장에서 (고려아연을) 좋은 회사로 만들 수 있는 쪽에 투표해달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이사회 의장직도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아 이사회 독립성 강화하고, 자신은 경영에만 집중하겠단 방침이다. 그는 "이사회의 독립성 강화, 소액주주 보호와 참여를 위한 방안을 추진해 주주와 시장의 목소리에 더욱더 귀를 기울이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 방안이 추진되려면 정관이 변경돼야 한다. 정관 변경은 주주총회 특별결의 사안으로 출석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 찬성을 요건으로 한다. 경영권 분쟁 중인 MBK·영풍 연합의 동의가 필요한 셈이다. 이에 대해 최 회장은 개인적인 예측이란 점을 전제로 "제가 이사회 의장을 내려놓고, 회장으로서만 일하겠다고 하면 MBK·영풍 연합도 동의할 것이라 판단한다"고 말했다.

MBK·영풍 연합은 이날 고려아연의 일반공모 유상증자 철회에 대해 입장문을 내고 "애당초 진행되지 말았어야 했다"고 날을 세웠다. 이어 "자본시장에 큰 혼란을 끼치고 기존 주주들에게 피해를 준 후에야 뒤늦게 철회된 점에 대해 고려아연의 최대주주로서 안타까움을 가진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고려아연은 전 거래일보다 16만1000원(14.10%) 내린 98만1000원에 장을 마쳤다.

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young7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