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의 인공지능(AI) 모델 ‘라마’를 이용해 군사용 AI 모델을 개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AI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중국 인민해방군의 핵심 연구기관인 군사과학원(AMS) 등에 소속된 중국 연구원 6명이 라마의 초기 버전으로 ‘챗비트(ChatBIT)’라는 군사용 AI 챗봇을 제작한 것. 챗비트는 군사 분야에 최적화한 챗봇이다. 중국 정부는 향후 전략 계획과 시뮬레이션 훈련, 지휘부 의사결정에도 활용할 계획이다. 메타는 라마의 사용 규정에 ‘군사용 활용을 금지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라마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공개된 제품)여서 악용 사례를 단속하는 것이 쉽지 않다.

미·중의 AI 군사 전쟁

'전쟁 AI' 안 만든다더니…슬쩍 레드라인 넘은 빅테크
미국과 중국 중심으로 AI 군비 경쟁이 치열하다. 최고 성능의 AI 모델을 앞다퉈 도입하고, 국방 관련 첨단 무기 활용에 적극적이다. 대부분 민간 AI 기업과 손을 잡는 방법으로 군 고도화에 나서고 있다. 중국처럼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자체적으로 군사용 AI를 개발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오픈AI의 경쟁자로 꼽히는 AI 기업 앤스로픽은 최근 아마존웹서비스(AWS) 등과 손잡고 AI 모델 ‘클로드’를 미국 정보부와 국방부에 제공하기 시작했다. 케이트 젠슨 앤스로픽 영업책임자는 “앞으로 미국 정보·국방 기관은 방대한 양의 복잡한 데이터를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강력한 AI 도구를 이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메타는 지난 4일 미국 국방 기관과 관련 민간 업체에 자사 AI 모델 라마를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메타의 관련 업체 목록에는 록히드마틴 등 방산 업체가 포함됐다. 닉 크레그 메타 글로벌 담당 사장은 “미국과 미국 동맹국의 안전, 안보, 경제적 번영을 지원하기 위해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메타가 공식적으로 라마의 군사적 사용을 허용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도 누구나 라마를 사용할 수 있다. 다만 메타는 ‘군사, 전쟁, 핵 관련 산업, 스파이 활동 등에는 사용할 수 없다’는 제한 규정을 뒀다. 이 규정에 예외를 적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업계에선 중국이 라마로 군사용 AI를 개발했다는 소식에 메타가 서둘러 미군과 협력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AI 기업의 새로운 먹거리

챗GPT로 유명한 오픈AI도 미국 국방부와 협력해 사이버 보안 소프트웨어 솔루션을 개발 중이다. 앞서 오픈AI는 자사 서비스 관련 이용 약관에서 군사 및 전쟁 응용프로그램에 자사 AI 사용을 막는다는 조항을 삭제하기도 했다. 지난 6월 폴 나카소네 전 미국 국가안보국(NSA) 국장을 이사회 구성원으로 영입한 것도 국방 사업 확대를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반면 구글에선 직원들이 AI의 군사화에 강하게 반대해 관련 사업 확대가 더디다. 8월 구글의 AI 연구 자회사 딥마인드 직원 200여 명은 구글이 이스라엘 정부와 체결한 ‘프로젝트 님버스’ 계약을 종료할 것을 촉구했다. 프로젝트 님버스는 이스라엘 정부와 군대에 클라우드 컴퓨팅 인프라, AI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방 분야에서의 AI 오용에 대한 우려가 크지만 관련 시장 규모가 조달러 수준이라 AI 기업이 관심 가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시장 조사업체 비즈니스리서치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방산 시장 규모는 2조3760억달러(약 3319조5096억원)에 달한다. 연평균 5% 성장해 2032년에는 3조6869억달러(약 5149조8619억원)로 커질 전망이다. IBM 기업가치연구소(IBV)가 지난해 32개국의 국방 관련 기관의 기술 임원 6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7%가 ‘3년 뒤 국방에서 AI가 매우 중요하다’고 답했다.

민간이 주도하는 국방 AI

현존하는 최고의 민간 AI 국방 기업은 미국의 팰런티어테크놀로지스다. 팰런티어는 전장 등의 다양한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필요한 전술 정보를 제공한다. 최근 우크라이나가 드론 공격 성공률을 50% 미만에서 80%대로 끌어올린 것도 팰런티어가 보유한 기술 덕이다.

최근 우크라이나군은 수백㎞ 떨어진 곳에서 러시아 중심부의 전력 시설과 정유 공장을 정밀 타격했다. 공격 수단으로 사용된 AI 드론은 스스로 지형을 탐색하고 목표를 찾아내 자폭 공격에 나선다. 이스라엘도 팰런티어와 협업 중이다. 이스라엘군은 AI로 팔레스타인 주민과 무장 단체의 연관 가능성을 추정해 테러 의심자를 찾아내고 있다.

팰런티어 외에 국방 시장을 노리는 AI 기업이 적지 않다. 미국 방산 AI 스타트업 안두릴 인더스트리스는 지난달 백팩에 담을 수 있는 공격용 드론을 공개했다. 드론은 무게는 약 6.8㎏으로 가볍고 조립·가동하는 데 5분 정도 걸린다. 이 드론도 AI가 조종한다. AI 스타트업 스케일AI는 미국 국방부가 AI 솔루션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있다.

한국에서도 AI가 국방의 핵심 도구로 떠오르고 있다. 국방부는 올 7월 국방 버전 챗GPT인 ‘국방생성형 AI’ 서비스를 국방부 직원 대상으로 시작했다. 국방생성형 AI는 기존 대규모언어모델(LLM)을 기반으로 군사 용어, 군 내부 규정 등 국방 분야 데이터를 집중 학습시켜 개발했다. 해킹 위협과 군사정보 유출 등을 고려해 국방 내부망에서만 사용 가능하다.

국방부는 지난 4월 국방AI센터를 열기도 했다. AI 기반 유무인 복합체계, 전장 상황 인식 등의 기술을 개발하고, 민간 AI 기술의 군 적용을 위한 산학연 협업 강화 등을 수행하는 기관이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 주도로 국방 AI 수준을 높이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결국 미국처럼 민간 AI 국방 기업이 성장하고 이들과 협업해야 성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선 아직 거물급으로 분류되는 국방 AI 기업이 없다. 정부가 ‘방산혁신기업 100’ 사업을 추진하는 이유다. 방산혁신기업 100은 우주, 드론, 반도체, AI, 로봇 등 5대 국방 첨단전략산업 분야에서 혁신적인 기술을 보유한 중소·벤처기업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사업이다. 정부는 2026년까지 방산혁신기업 100곳을 선정해 5년간 기업당 최대 50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