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전쟁을 끝낼 '거래의 기술'
1988년 한국경제신문에 ‘아메리카의 꿈, 재계의 새 우상’이라는 한 인물의 저서가 광고로 소개됐다. 바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거래의 기술>이었다. 이 광고에서 ‘미국의 대통령감으로 지목받는다’고 언급된 트럼프는 결국 2016년 45대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됐고, 올해 47대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트럼프는 이 책에서 거래를 ‘일종의 예술’로 정의내린다. 거래를 통해서 인생의 재미를 느끼고, 거래 자체를 위해서 거래한다는 게 그의 가치관이다. 수많은 거래 속에서 얻은 삶의 철학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어설픈 성공보다는 빠른 실패가 낫다.”

우크라전 종전 논의 시동

트럼프가 내년 1월 취임하기도 전에 벌써부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거래에 나서는 움직임이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7일 트럼프 당선인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하며 우크라이나에서 확전을 자제할 것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크렘린궁이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지만 외교가는 WP 보도가 사실일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크렘린궁이 진실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게 일종의 정설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선거 기간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취임 후 24시간 내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내년이면 벌써 3년째에 접어든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양측은 막대한 인명 피해와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9월 서방 정보기관 등을 인용해 우크라이나 사상자는 약 50만 명, 러시아 사상자는 약 60만 명으로 추산했다. 유엔인구기금에 따르면 전쟁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 현지 인구는 해외도피까지 겹치며 약 20%(800만 명) 감소했다.

트럼프의 거래에 대비해야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는 전쟁을 막지도, 우크라이나에 승리를 안겨다 주지도 못했다. 2022년부터 올해까지 1120억달러(약 157조원) 규모의 군사 및 인도적 지원을 했지만 파병은 하지 않았고, 자국 무기의 러시아 영토 타격을 불허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전황은 갈수록 우크라이나에 불리해지고 있다. 러시아는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영토의 약 20%를 점령했다. 전략 요충지인 동부지역에서는 공세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북한군까지 끌어들이며 우크라이나에 점령당한 자국 영토인 쿠르스크 탈환도 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서방 세계도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유럽에서는 유럽의회 선거와 각국 총선에서 우크라이나 지원에 회의적인 강경 우파 정당이 줄지어 승리했다. 만성적인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미국도 의회에서 우크라이나 지원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트럼프의 종전 방안은 우크라이나에 고통스러울 수 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점령당한 동부 영토를 포기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20년 이후로 미루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어쩌면 언제 올지 모를 어설픈 승전보다는 빠른 종전이 나을지 모른다.

트럼프의 거래가 다가오고 있다. 이제서야 전쟁의 끝이 어렴풋이 보인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그 이후를 준비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