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엔비디아 AI 서밋 재팬’ 행사에서 손정의 회장이 젠슨 황 CEO(왼쪽)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우는 시늉을 하고 있다. / 출처=블룸버그TV 화면 갈무리
지난 13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엔비디아 AI 서밋 재팬’ 행사에서 손정의 회장이 젠슨 황 CEO(왼쪽)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우는 시늉을 하고 있다. / 출처=블룸버그TV 화면 갈무리
“마사(손정의의 영어 애칭)는 한때 엔비디아의 주주였습니다.” 지난 13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엔비디아 AI(인공지능) 서밋 재팬’ 행사에 참석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손정의(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에게 이 같이 말했다.

농담조였지만 손 회장에게는 진한 안타까움을 남긴 기억이었던 모양. 그는 “아!”라고 탄식하며 말문이 막힌 듯 황 CEO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우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황 CEO는 손 회장을 다독이며 “괜찮아요, 우리 함께 울어요”라고 웃어넘겼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가 과거 엔비디아 지분을 전량 매각한 일을 언급한 것으로 풀이된다. 소프트뱅크는 2017년 엔비디아 지분을 4.9% 취득해 4대 주주 자리에 올랐으나 2019년 약 40억달러에 모두 처분했다. 만약 이 지분을 팔지 않고 현재까지 보유했을 경우 가치는 1780억달러(약 250조원) 이상일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 손 회장도 이 일을 못내 아쉬워했다. 그는 지난 6월 주주총회에서 엔비디아 지분을 너무 일찍 팔아 1500억달러(약 210조원)의 손해를 봤다고 언급한 적 있다. 당시 엔비디아 지분을 매각한 이유에 대해선 “펀드 실적을 올리고 현금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황 CEO는 대담에서 “상상해보세요, 당신이 우리의 최대 주주였다면…”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손 회장이 “3번 (엔비디아 인수를) 시도했다”고 털어놓자 황 CEO는 “그때 거절한 것을 지금 약간 후회하고 있다”고 농담 섞어 회고했다.
지난 13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엔비디아 AI 서밋 재팬' 행사에서 젠슨 황 CEO(왼쪽)와 손정의 회장이 대담하고 있다. / 사진=AFP
지난 13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엔비디아 AI 서밋 재팬' 행사에서 젠슨 황 CEO(왼쪽)와 손정의 회장이 대담하고 있다. / 사진=AFP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보도에 따르면 손 회장은 2016년 영국 반도체 설계기업 암(ARM)을 인수한 뒤 사석에서 황 CEO에게 엔비디아 인수를 제안했다. 손 회장이 당시 “시장이 엔비디아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취지로 인수를 타진했으나 황 CEO는 “나는 돈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며 거절했다는 후문이다.

비전펀드가 엔비디아 지분을 모두 처분한 이후인 2020년에도 소프트뱅크는 엔비디아에 ARM을 매각하고 대신 엔비디아 주식을 약 8% 취득하는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 반(反)독점 당국의 반대로 2022년 결국 포기해야 했다.

일찌감치 엔비디아의 가능성을 눈여겨고 지분 취득에 이어 인수까지 시도했지만, 엔비디아가 몇 년 후 AI 시대 최대 수혜주가 돼 뉴욕증시 시가총액 1위에 오를 것이란 예측까지는 미처 못한 셈이다.

이날 재회한 손 회장과 황 CEO는 양사의 협력 청사진을 제시했다. 소프트뱅크는 엔비디아의 블랙웰 반도체를 탑재한 일본 내 최고 성능 AI 슈퍼컴퓨터를 만들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아울러 엔비디아 설비를 이용한 AI 통신망도 구축하기로 했다. 황 CEO는 “기존 통신 네트워크는 AI 네트워크로 바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