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빛·대양의 소리…천체가 깨운 감각의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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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사 유람일기
일본 문화예술의 정수 에노우라 측후소
우주의 광활함 속에서
의식의 근원 찾는게 예술
동지와 하지, 춘분과 추분
태양 관찰 콘셉트 건축
천체의 섭리 관찰하는
고대의 관습으로 회귀해
먼 미래 향한 실마리 모색
절기마다 일출 관찰하며
숲·바다·바람 소리 듣고
예술에 대한 깨달음 얻어
일본 문화예술의 정수 에노우라 측후소
우주의 광활함 속에서
의식의 근원 찾는게 예술
동지와 하지, 춘분과 추분
태양 관찰 콘셉트 건축
천체의 섭리 관찰하는
고대의 관습으로 회귀해
먼 미래 향한 실마리 모색
절기마다 일출 관찰하며
숲·바다·바람 소리 듣고
예술에 대한 깨달음 얻어
‘감각의 제국’. 아마도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심한 노출과 실제 정사 장면으로 논란이 됐던 이 영화를 쉬이 떠올릴 것이다. 한국에는 수위 문제로 한참 후에나 편집돼 프랑스어 제목인 ‘L’Empire des Sens’를 번역한 ‘감각의 제국’이란 제목으로 수입됐다. 성적 욕망이 끝으로 치달아 상대를 죽이고 성기를 잘라 며칠을 들고 돌아다니다가 잡혀갔다는 극단적인 결말을 맺는 일본 실화 바탕의 영화다. 그러니 볼 생각도 없었고 여전히 보고 싶지도 않지만 언제나 제목만큼은 20대부터 마음에 큰 울림을 남겨왔다.
오랜 시간 찾아 헤매던 감각의 제국을 드디어 발견했다. 우연히 들렀던 일본의 시골 마을, 건축 기행의 일환으로 스치듯 방문한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 독특한 이름의 공간에서 그 감각의 제국을 발견한 것이다. 인생 반세기 만에 발견한 감각의 제국, ‘에노우라 측후소’다.
사진 작업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스기모토 히로시(杉本博司·76)는 온천으로 유명한 하코네 근처의 너른 태평양이 쏟아지듯 내려다보이는 고향마을인 가나가와현 오다와라, 사가미만의 한적한 귤밭에 이 뜻밖의 공간을 펼쳤다. 이곳의 가이드북 첫 페이지에서 그가 세운 이 감각의 제국의 설립 취지를 밝힌다.
“인류 발전의 의미심장한 시점(시대적으로 성장의 임계점)에 이른 지금 예술은 목적의식의 투명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오늘날 예술은 무엇을 표현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해 간단명료하게 답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오직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인간 의식의 원천으로 돌아가 그 근원을 탐구하고 지금까지의 과정을 도식화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다와라 문화재단이 에노우라 측후소를 설계하며 스스로에게 던진 천명입니다.”
예술을 위한 예술로 이뤄낸, 예술지상주의를 종교로 택한 감각의 제국 황제다운 일갈이 아닐까?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자각의 과정 중에 우리 선조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우주의 광활함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의미를 파악하고 정체성을 탐구하는 일은 예술의 저변에 깔린 중차대한 자극이었습니다. 새로운 생명이 다시 태어나는 동지, 계절의 진자가 원점으로 반환되는 하지, 극단 사이의 중간 지점인 춘분과 추분. 나는 우리가 천체의 섭리를 관찰하는 고대의 관습으로 회귀한다면 우리의 먼 미래로 향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의 이런 생각을 토대로 전체 영역의 상층부인 명월문 지역에는 ‘하지광(夏至光) 숭배 100m 갤러리’와 ‘동지광 요배 수도’가 미학적 중심을 이루며 자리한다. 입구인 명월문(明月門)으로부터 방문객 안내동, 돌정원, 돌무대, 광학유리무대, 다실 우청천, 그리고 외부의 카페 석기시대가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하지와 동지의 태양 관찰을 콘셉트로 설계된 두 개의 건축물은 특별한 감정을 자아낸다. 주변 경관과 완벽하게 조응하는 자연스러움, 값비싼 재료를 능수능란하게 다룬 재료적인 측면, 그리고 아름다움을 위해 큰 비용을 감수하며 구조적 포기 없이 시도된 완벽한 시공은, 어마어마한 건축비를 차치하고서라도 소요되는 시간과 끝으로 치달은 완벽주의 때문에 건축 전문가들에게 특별한 감동을 선사한다.
전문가적 견해를 갖지 못한 일반인이라고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 건축물은 천체의 섭리와 우주에서의 인간 존재를 파악하는 과정을 모두가 느낄 수 있도록, 그래서 예술이 본연의 의무를 다하고 인류가 잃어버린 미래의 지향점을 깨달아 동기를 얻도록 자극한다. 그렇게 군데군데 절기마다 일출을 관찰할 수 있는 최적의 포인트를 지정해 우리의 마음을 열어준다.
이뿐만 아니다. 차를 마시며 빗소리를 들어보라는 다다미 두 장 크기의 소박한 다실 ‘우청천’에는 매일의 소확행을 소중히 여기라는 ‘일일시호일’이라는 스기모토의 글씨가 깨알 디테일을 챙긴다. 2020년 서예를 시작했다는 그의 글씨는 감각의 제국 황제다운 달필인 까닭에 나면서부터 글씨를 써온 양 완벽하다. 인공 조림한 대나무 숲과 오랫동안 이 자릴 지킨 귤나무를 스치는 바람 소리, 새들의 지저귐과 태평양을 거쳐 가슴까지 이르는 바다의 소리는 예술과 감각을 신봉하는 모두에게 세상을 만든 조물주의 광막한 세계가 어딘가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돕는다.
발길이 이어지고 호기심이 증폭될 즈음 군데군데 등장하는, 열십자로 삼끈을 묶은 돌덩어리가 ‘출입 금지’ 팻말을 대신해 발길을 가둔다. 도메이시(止め石)다. 일단 발견했다면 그 돌 이상은 넘어서서는 안 되는데 이런 장치들조차도 감각의 제국이 특별하게 마련한 것이라 하겠다.
천천히 걸어 살피면 세 시간이 모자란 광활한 공간은 스기모토의 오랜 돌 컬렉션으로 가득하다. 태고의 원기를 축적하고픈 그의 바람이다. 자연과 완벽하게 조응하는 ‘인위연(人爲然)’에 조성된 아름다운 공간은 그야말로 감각의 제국 그 자체이고 여기저기 정신을 팔다 보면 역으로 향하는 셔틀버스를 놓치기 십상이다.
결론은 이렇다. 코로나 팬데믹 직후 문화적 갈증을 품고 일본 어딘가를 다녀온 이들이 하나같이 하던 말 “일본엔 신선한 것들이 없어요, 이제 서울이 더 핫해요”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겸허한 마음으로 집요하게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취향과 문화를 갈고닦은 일본인의 문화적 전통을, 그리고 예술을 위한 예술일지언정 진지하게 유지해온 그들만의 오래된 습관, 예술과 감각으로 완성한 의례와 격식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한 작가가 그리운 고향마을에 너른 귤밭을 사들여 재단을 설립하고 장기간 연구와 스터디를 통해 계획하며 일궈낸 놀라운 ‘감각의 제국’. 세련미의 정수인 에노우라 측후소는 생애 한 번쯤 꼭 경험하길 추천한다. 이곳에 다녀온 후에야 비로소 예술의 의무, 그리고 인류가 나아갈 길에 대해서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헌 칼럼니스트
오다와라 문화재단
에노우라 측후소(江之浦測候所)
▷주소: 가나가와현 오다와라시 에노우라 362번지 1
▷완전 예약제: 공식 사이트에서 사전 구입 요망
▷휴관일: 화·수요일, 연말연시 및 임시휴관일
▷입장시간: 오전 10시~오후 1시, 오후 1시30분~4시30분
▷입장료: 3300엔(당일권: 3850엔 전화 예약만 가능)
사진 작업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스기모토 히로시(杉本博司·76)는 온천으로 유명한 하코네 근처의 너른 태평양이 쏟아지듯 내려다보이는 고향마을인 가나가와현 오다와라, 사가미만의 한적한 귤밭에 이 뜻밖의 공간을 펼쳤다. 이곳의 가이드북 첫 페이지에서 그가 세운 이 감각의 제국의 설립 취지를 밝힌다.
“인류 발전의 의미심장한 시점(시대적으로 성장의 임계점)에 이른 지금 예술은 목적의식의 투명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오늘날 예술은 무엇을 표현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해 간단명료하게 답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오직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인간 의식의 원천으로 돌아가 그 근원을 탐구하고 지금까지의 과정을 도식화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다와라 문화재단이 에노우라 측후소를 설계하며 스스로에게 던진 천명입니다.”
예술을 위한 예술로 이뤄낸, 예술지상주의를 종교로 택한 감각의 제국 황제다운 일갈이 아닐까?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자각의 과정 중에 우리 선조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우주의 광활함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의미를 파악하고 정체성을 탐구하는 일은 예술의 저변에 깔린 중차대한 자극이었습니다. 새로운 생명이 다시 태어나는 동지, 계절의 진자가 원점으로 반환되는 하지, 극단 사이의 중간 지점인 춘분과 추분. 나는 우리가 천체의 섭리를 관찰하는 고대의 관습으로 회귀한다면 우리의 먼 미래로 향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의 이런 생각을 토대로 전체 영역의 상층부인 명월문 지역에는 ‘하지광(夏至光) 숭배 100m 갤러리’와 ‘동지광 요배 수도’가 미학적 중심을 이루며 자리한다. 입구인 명월문(明月門)으로부터 방문객 안내동, 돌정원, 돌무대, 광학유리무대, 다실 우청천, 그리고 외부의 카페 석기시대가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하지와 동지의 태양 관찰을 콘셉트로 설계된 두 개의 건축물은 특별한 감정을 자아낸다. 주변 경관과 완벽하게 조응하는 자연스러움, 값비싼 재료를 능수능란하게 다룬 재료적인 측면, 그리고 아름다움을 위해 큰 비용을 감수하며 구조적 포기 없이 시도된 완벽한 시공은, 어마어마한 건축비를 차치하고서라도 소요되는 시간과 끝으로 치달은 완벽주의 때문에 건축 전문가들에게 특별한 감동을 선사한다.
전문가적 견해를 갖지 못한 일반인이라고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 건축물은 천체의 섭리와 우주에서의 인간 존재를 파악하는 과정을 모두가 느낄 수 있도록, 그래서 예술이 본연의 의무를 다하고 인류가 잃어버린 미래의 지향점을 깨달아 동기를 얻도록 자극한다. 그렇게 군데군데 절기마다 일출을 관찰할 수 있는 최적의 포인트를 지정해 우리의 마음을 열어준다.
이뿐만 아니다. 차를 마시며 빗소리를 들어보라는 다다미 두 장 크기의 소박한 다실 ‘우청천’에는 매일의 소확행을 소중히 여기라는 ‘일일시호일’이라는 스기모토의 글씨가 깨알 디테일을 챙긴다. 2020년 서예를 시작했다는 그의 글씨는 감각의 제국 황제다운 달필인 까닭에 나면서부터 글씨를 써온 양 완벽하다. 인공 조림한 대나무 숲과 오랫동안 이 자릴 지킨 귤나무를 스치는 바람 소리, 새들의 지저귐과 태평양을 거쳐 가슴까지 이르는 바다의 소리는 예술과 감각을 신봉하는 모두에게 세상을 만든 조물주의 광막한 세계가 어딘가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돕는다.
발길이 이어지고 호기심이 증폭될 즈음 군데군데 등장하는, 열십자로 삼끈을 묶은 돌덩어리가 ‘출입 금지’ 팻말을 대신해 발길을 가둔다. 도메이시(止め石)다. 일단 발견했다면 그 돌 이상은 넘어서서는 안 되는데 이런 장치들조차도 감각의 제국이 특별하게 마련한 것이라 하겠다.
천천히 걸어 살피면 세 시간이 모자란 광활한 공간은 스기모토의 오랜 돌 컬렉션으로 가득하다. 태고의 원기를 축적하고픈 그의 바람이다. 자연과 완벽하게 조응하는 ‘인위연(人爲然)’에 조성된 아름다운 공간은 그야말로 감각의 제국 그 자체이고 여기저기 정신을 팔다 보면 역으로 향하는 셔틀버스를 놓치기 십상이다.
결론은 이렇다. 코로나 팬데믹 직후 문화적 갈증을 품고 일본 어딘가를 다녀온 이들이 하나같이 하던 말 “일본엔 신선한 것들이 없어요, 이제 서울이 더 핫해요”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겸허한 마음으로 집요하게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취향과 문화를 갈고닦은 일본인의 문화적 전통을, 그리고 예술을 위한 예술일지언정 진지하게 유지해온 그들만의 오래된 습관, 예술과 감각으로 완성한 의례와 격식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한 작가가 그리운 고향마을에 너른 귤밭을 사들여 재단을 설립하고 장기간 연구와 스터디를 통해 계획하며 일궈낸 놀라운 ‘감각의 제국’. 세련미의 정수인 에노우라 측후소는 생애 한 번쯤 꼭 경험하길 추천한다. 이곳에 다녀온 후에야 비로소 예술의 의무, 그리고 인류가 나아갈 길에 대해서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헌 칼럼니스트
오다와라 문화재단
에노우라 측후소(江之浦測候所)
▷주소: 가나가와현 오다와라시 에노우라 362번지 1
▷완전 예약제: 공식 사이트에서 사전 구입 요망
▷휴관일: 화·수요일, 연말연시 및 임시휴관일
▷입장시간: 오전 10시~오후 1시, 오후 1시30분~4시30분
▷입장료: 3300엔(당일권: 3850엔 전화 예약만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