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가 확립한 총체예술로 다시 그렸다, 사무엘 윤의 '방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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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이틀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한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
예술의전당 기획 보컬 마스터즈 시리즈
예술의전당 기획 보컬 마스터즈 시리즈
"음악과 시각, 연기와 무대효과가 하나로 결합된 새로운 리사이틀 공연의 등장"
서울 예술의전당 '보컬 마스터즈 시리즈'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의 리사이틀 <방랑자, 영웅의 여정>은 전통적인 성악 공연의 틀을 뛰어넘었다. 음악, 연기, 조명, 소품이 하나로 결합되며 공연의 모든 요소가 관객의 몰입시키기 위해 각자의 역할을 했다.
이번 공연은 독일의 오페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가 창시한 게잠트쿤스트베르크(Gesamtkunstwerk·총체예술)의 개념을 오페라 무대가 아닌 독창회(리사이틀) 무대에서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창조한 시도였다. 바그너가 꿈꾼 예술의 궁극적인 개념을 국내 리사이틀 무대에서 구현한 것이다.
총체예술은 음악과 시, 춤과 회화, 무대장치와 조명장치, 분장과 의상 등 공연에 쓰여지는 모든 요소들이 '극의 실현'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두고 유기적으로 연결돼 움직이는 것이다. 바그너는 자신의 오페라에서 총체예술의 실현을 극대화하기 위해 전용 극장(바이로이트)을 지어 공연을 직접 제작했다.
소프라노 홍혜경과 베이스 연광철의 리사이틀에 이어 지난 토요일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무대에서 열린 예술의전당(사장 장형준) 기획 '보컬 마스터스 시리즈' 마지막 공연,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의 <방랑자, 영웅의 여정>은 국내 최초로 총체예술이 접목된 리사이틀이었다.
이번 리사이틀에서 사무엘 윤은 성악가가 피아노나 오케스트라를 배경으로 목석(木石)처럼 서서 노래하는 여느 독창회와 달리 오페라 무대에서 노래해 온 성악가와 오페라가수를 꿈꾸는 성악도들이 소화하고 도전해야 하는 새로운 리사이틀의 비전을 제시했다.
공연 프로그램은 사무엘 윤이 직접 겪었던 스토리구성됐다. 첫 주제인 고독에 이어 슬픔, 혼돈, 절망과 죽음, 구원과 소망으로 이어지는 5개 테마로 이어지는 공연은 90분간 쉼 없이 진행됐다. 제 1주제 '고독'이 시작되기 전 객석에 들어서니 무대는 어둡고 고독한 피아니스트의 방이다. 그랜드 피아노 한대와 스탠드 조명 한대뿐이다. 피아니스트 박종화가 등장해 슈베르트의 <방랑자의 환상곡>C장조 1악장을 경쾌하게 시작한다.
1악장의 연주가 끝나고 회전무대를 통해 전환된 무대는 주인공 '방랑자'(사무엘윤)의 방이다.
"이 곳의 햇볕은 내게 너무 차가워(Die Sonne dünkt mich hier so kalt)"와 "나는 어디에서나 이방인이라네(Ich bin ein Fremdling überall)."라는 가사를 강조해 부른 사무엘윤의 노래로 극이 시작된다. 사무엘윤은 슈베르트의 가곡 <방랑자_D.489>의 가사를 통해 한국을 떠나 해외에서 받은 이방인으로의 고독함을 표현했다. 이때 무대 상부에서 등장한 수십 개의 의자는 해외 무대에서 도전과 검증 과정을 이어 온 성악가가 느낀 '객석의 감시자'의 압박이 표현됐다.
이어지는 4챕터의 방랑자의 주제들은 각자 저마다의 스토리에 맞춰 음악과 연기, 특수효과, 조명으로 무대에서 표현되며 관객들의 눈과 귀를 집중시켰다. 제 2주제 '슬픔'의 두 번째 음악인 레스피기, <안개_Nebbie> 연주 중 차분하게 시작한 음악이 고조돼 연주되는 클라이막스 "혹독하게 춥다(come ho freddo)"의 가사가 노래될 때 무대 양 옆에서 방랑자를 비추던 조명이 회색 빛으로 바뀌며 방랑자가 읊조리는 가삿말의 내용을 시각적으로 뒷받침해 실제로 춥게 느껴지는 효과를 자아냈다. 제 3주제 '혼돈'에서 노래한 <도플갱어(Der Doppelgänger)>에서는 두 대의 전신거울을 소품으로 이용해 자신과 같은 모습을 한 불운한 존재인 '도플갱어'와의 대치 장면을 역동적으로 표현했다. 볼프의 가곡 <화염의 기사(Der Feuerreiter)>에서는 상부에서 내려 온 붉은 천을 흔드는 것으로 무대에 화염이 표현됐다. 공연의 연출을 맡은 바키(박귀섭)는 소품을 활용한 동작과 드라마틱한 몸짓을 가미하는 등 미학적인 볼거리들로 공연의 작품성을 끌어올렸다. 아벨 콰르텟이 거리의 악사로 등장해 소녀의 묘비 앞에서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 제 14번 <죽음과 소녀>를 연주로 시작한 제 4주제 '절망과 죽음' 무대에서는 전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종횡무진 활약한 사무엘 윤의 절대적인 존재감이 드러났다. 바그너, 오페라 <라인의 황금(Der Reingold)>의 알베리히 역이 부르는 저주의 아리아 '내가 자유라고? (Bin ich frei?)'를 노래하는 장면에서 사무엘 윤은 2012년 크리스티안 틸레만의 지휘로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개막작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Der fliegende Holländer>에서 주인공 홀랜더 역을 맡아 한국 성악가의 위상을 알린 사무엘윤처럼 당당했다. 사무엘윤은 바그너의 오페라 무대에서 베이스 바리톤이 맡는 주역인 하겐, 보탄, 군터와 홀랜더, 알베리히까지 모두 소화한 유일한 한국인이다. 마지막 제 5주제 '구원과 소망' 무대에서 스트링 콰르텟을 위해 편곡된 말러의 교향곡 제 5번 4악장 '아다지에토'가 연주되던 순간, 객석은 숨소리도 내지 않으며 몰입하듯 조용했다.
사무엘윤이 슈트라우스의 가곡 내일 (Morgen)을 부른 후 제 1주제 '고독'에서 방랑자의 다른 자아로 등장했던 여성 무용수가 그를 찾아와 무대 뒤편의 노을을 바라보며 공연은 끝이 났다.
90분간 이어진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의 이번 공연은 바그너가 제시한 총체예술의 개념을 리사이틀에서 실현하며 관객에게 음악과 볼거리를 통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번 공연의 프로그램을 직접 짠 사무엘윤은 "이미 다음 공연의 주제를 선정해 작품을 구상중"이라고 밝혔다. "성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제 공연을 보고 자신들이 나아갈 방향을 찾기를 바란다"고도 덧붙였다.
조동균 기자 chodogn@hankyung.com
서울 예술의전당 '보컬 마스터즈 시리즈'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의 리사이틀 <방랑자, 영웅의 여정>은 전통적인 성악 공연의 틀을 뛰어넘었다. 음악, 연기, 조명, 소품이 하나로 결합되며 공연의 모든 요소가 관객의 몰입시키기 위해 각자의 역할을 했다.
이번 공연은 독일의 오페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가 창시한 게잠트쿤스트베르크(Gesamtkunstwerk·총체예술)의 개념을 오페라 무대가 아닌 독창회(리사이틀) 무대에서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창조한 시도였다. 바그너가 꿈꾼 예술의 궁극적인 개념을 국내 리사이틀 무대에서 구현한 것이다.
총체예술은 음악과 시, 춤과 회화, 무대장치와 조명장치, 분장과 의상 등 공연에 쓰여지는 모든 요소들이 '극의 실현'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두고 유기적으로 연결돼 움직이는 것이다. 바그너는 자신의 오페라에서 총체예술의 실현을 극대화하기 위해 전용 극장(바이로이트)을 지어 공연을 직접 제작했다.
소프라노 홍혜경과 베이스 연광철의 리사이틀에 이어 지난 토요일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무대에서 열린 예술의전당(사장 장형준) 기획 '보컬 마스터스 시리즈' 마지막 공연,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의 <방랑자, 영웅의 여정>은 국내 최초로 총체예술이 접목된 리사이틀이었다.
이번 리사이틀에서 사무엘 윤은 성악가가 피아노나 오케스트라를 배경으로 목석(木石)처럼 서서 노래하는 여느 독창회와 달리 오페라 무대에서 노래해 온 성악가와 오페라가수를 꿈꾸는 성악도들이 소화하고 도전해야 하는 새로운 리사이틀의 비전을 제시했다.
공연 프로그램은 사무엘 윤이 직접 겪었던 스토리구성됐다. 첫 주제인 고독에 이어 슬픔, 혼돈, 절망과 죽음, 구원과 소망으로 이어지는 5개 테마로 이어지는 공연은 90분간 쉼 없이 진행됐다. 제 1주제 '고독'이 시작되기 전 객석에 들어서니 무대는 어둡고 고독한 피아니스트의 방이다. 그랜드 피아노 한대와 스탠드 조명 한대뿐이다. 피아니스트 박종화가 등장해 슈베르트의 <방랑자의 환상곡>C장조 1악장을 경쾌하게 시작한다.
1악장의 연주가 끝나고 회전무대를 통해 전환된 무대는 주인공 '방랑자'(사무엘윤)의 방이다.
"이 곳의 햇볕은 내게 너무 차가워(Die Sonne dünkt mich hier so kalt)"와 "나는 어디에서나 이방인이라네(Ich bin ein Fremdling überall)."라는 가사를 강조해 부른 사무엘윤의 노래로 극이 시작된다. 사무엘윤은 슈베르트의 가곡 <방랑자_D.489>의 가사를 통해 한국을 떠나 해외에서 받은 이방인으로의 고독함을 표현했다. 이때 무대 상부에서 등장한 수십 개의 의자는 해외 무대에서 도전과 검증 과정을 이어 온 성악가가 느낀 '객석의 감시자'의 압박이 표현됐다.
이어지는 4챕터의 방랑자의 주제들은 각자 저마다의 스토리에 맞춰 음악과 연기, 특수효과, 조명으로 무대에서 표현되며 관객들의 눈과 귀를 집중시켰다. 제 2주제 '슬픔'의 두 번째 음악인 레스피기, <안개_Nebbie> 연주 중 차분하게 시작한 음악이 고조돼 연주되는 클라이막스 "혹독하게 춥다(come ho freddo)"의 가사가 노래될 때 무대 양 옆에서 방랑자를 비추던 조명이 회색 빛으로 바뀌며 방랑자가 읊조리는 가삿말의 내용을 시각적으로 뒷받침해 실제로 춥게 느껴지는 효과를 자아냈다. 제 3주제 '혼돈'에서 노래한 <도플갱어(Der Doppelgänger)>에서는 두 대의 전신거울을 소품으로 이용해 자신과 같은 모습을 한 불운한 존재인 '도플갱어'와의 대치 장면을 역동적으로 표현했다. 볼프의 가곡 <화염의 기사(Der Feuerreiter)>에서는 상부에서 내려 온 붉은 천을 흔드는 것으로 무대에 화염이 표현됐다. 공연의 연출을 맡은 바키(박귀섭)는 소품을 활용한 동작과 드라마틱한 몸짓을 가미하는 등 미학적인 볼거리들로 공연의 작품성을 끌어올렸다. 아벨 콰르텟이 거리의 악사로 등장해 소녀의 묘비 앞에서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 제 14번 <죽음과 소녀>를 연주로 시작한 제 4주제 '절망과 죽음' 무대에서는 전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종횡무진 활약한 사무엘 윤의 절대적인 존재감이 드러났다. 바그너, 오페라 <라인의 황금(Der Reingold)>의 알베리히 역이 부르는 저주의 아리아 '내가 자유라고? (Bin ich frei?)'를 노래하는 장면에서 사무엘 윤은 2012년 크리스티안 틸레만의 지휘로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개막작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Der fliegende Holländer>에서 주인공 홀랜더 역을 맡아 한국 성악가의 위상을 알린 사무엘윤처럼 당당했다. 사무엘윤은 바그너의 오페라 무대에서 베이스 바리톤이 맡는 주역인 하겐, 보탄, 군터와 홀랜더, 알베리히까지 모두 소화한 유일한 한국인이다. 마지막 제 5주제 '구원과 소망' 무대에서 스트링 콰르텟을 위해 편곡된 말러의 교향곡 제 5번 4악장 '아다지에토'가 연주되던 순간, 객석은 숨소리도 내지 않으며 몰입하듯 조용했다.
사무엘윤이 슈트라우스의 가곡 내일 (Morgen)을 부른 후 제 1주제 '고독'에서 방랑자의 다른 자아로 등장했던 여성 무용수가 그를 찾아와 무대 뒤편의 노을을 바라보며 공연은 끝이 났다.
90분간 이어진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의 이번 공연은 바그너가 제시한 총체예술의 개념을 리사이틀에서 실현하며 관객에게 음악과 볼거리를 통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번 공연의 프로그램을 직접 짠 사무엘윤은 "이미 다음 공연의 주제를 선정해 작품을 구상중"이라고 밝혔다. "성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제 공연을 보고 자신들이 나아갈 방향을 찾기를 바란다"고도 덧붙였다.
조동균 기자 chodog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