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료 인공지능(AI) 기업 루닛이 아스트라제네카(AZ)의 세계 1위 폐암약 ‘타그리소’ 약효가 나타날 환자군을 걸러내는 AI 진단회사로 선정됐다. 국내 의료 AI 기업이 글로벌 ‘톱10’ 대형 제약사 본사와의 동반 진단에 물꼬를 뜬 최초 사례다.
[단독] 루닛 "아스트라제네카와 폐암약 진단시장 진출"
켄 네스미스 루닛 최고사업책임자(CBO)는 17일 한국경제신문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계약 내용을 밝혔다. 그는 이번에 AZ와 맺은 계약을 담당한 총책임자다. 네스미스 CBO는 “AZ가 올해 초 공모한 ‘비소세포폐암 AI 바이오마커(생체표지자)’ 경쟁 입찰에서 최근 루닛이 단독 파트너사로 선정됐다”며 “항암제 분야 리더인 AZ와 이런 계약을 맺었다는 것은 루닛의 AI 기술이 세계 최전선에 있음을 입증한다”고 말했다.

타그리소는 전 세계 환자 70만 명에게 사용되는 비소세포폐암 치료제다. 비소세포폐암은 전체 폐암의 85%를 차지한다. 그중에서도 절반가량이 EGFR이라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보유한 환자에게서 발병한다. 타그리소는 이런 EGFR 돌연변이가 있는 환자에게 약효를 나타내는 치료제다.

여기서 핵심은 누가 EGFR 돌연변이가 있는지 없는지를 사전에 알아내는 것이다. 폐암 증세가 있지만 EGFR 돌연변이가 없는 환자에게는 아무리 타그리소를 처방해도 제 효능을 보기 어렵다. 엉뚱한 약을 처방받은 환자로서는 불필요한 의료 비용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치료 시기도 놓친다.

이를 막기 위한 대형 제약사의 동반 진단(특정 약을 쓰기 전에 효능이 있을 환자군을 미리 선별해내는 진단) 수요는 계속 존재했다. 지난해 매출 기준 세계 7위(약 64조원)를 차지한 빅파마 AZ도 예외는 아니다.

기존 제약사들은 차세대 유전체 분석(NGS) 검사 등을 통해 돌연변이 유무를 파악했다. 하지만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AZ는 이를 보완할 AI 기술을 찾기 위해 전 세계 의료 AI 기업을 대상으로 입찰을 공모했고, 여기서 루닛이 단독으로 선정됐다. 루닛의 EGFR 변이 식별 AI 바이오마커(루닛 스코프 지노타입 프리딕터)는 디지털화된 조직 슬라이드 이미지를 분석해 5분 안에 결과를 내놓는다. 빠른 속도와 높은 정확성, 상용화 경험이 AZ를 사로잡은 주요인으로 전해졌다.

네스미스 CBO는 “AI는 돌연변이를 매우 빠르게 예측하기 때문에 의사들은 그 결과를 보고, 꼭 필요한 환자들만 NGS 검사를 하는 등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다”며 “이는 지금 이 시간에도 문제가 되는, 환자에게 적합하지 않은 약물이 처방되는 상황을 줄일 수 있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이어 “루닛과 AZ는 EGFR을 넘어 다른 폐암 돌연변이를 예측하는 것으로 제품 범위를 확장하는 방안도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