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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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계약서’상 심부름 이행 의무를 지키지 않은 손자들을 상대로 증여 재산 회수를 요구한 할아버지와 손자들 간 소송전에서 법원이 손자들 손을 들어줬다. 손자 측을 대리한 법무법인 화우는 효도계약서가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점을 적극적으로 증명해 승소 판결을 끌어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제37민사부(재판장 공도일 판사)는 80대 남성 A씨가 손자 두 명을 상대로 낸 소유권말소등기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A씨는 두 손자에게 건물 일부 지분을 증여하고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이후 부인과 불화를 겪으며 아들과도 사이가 멀어지자 손자들에게 증여한 건물 지분을 되찾으려 했다.

A씨는 주변의 조언을 듣고 증여계약서와 별도로 작성한 효도계약서를 근거로 증여계약 해제를 주장했다. 효도계약서에는 ‘A씨가 심부름을 부탁하면 손자들은 잘 이행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A씨는 손자들이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부담부 증여계약을 해제하고 등기를 말소해야 한다고 했다.

재판 쟁점은 건물 지분을 손자들에게 증여한 증여계약이 ‘부담부 증여계약’인지였다. 부담부 증여계약은 증여받는 사람에게 채무 등 일정한 조건을 붙이는 계약을 뜻한다.

화우는 등기부등본상 등기 원인이 ‘증여’인 점, 효도계약서 작성 일자와 등기 원인의 증여 일자가 다른 점, 효도계약서에 친권자 서명·날인이 없는 점을 들어 부담부 증여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 대법원 판례를 인용해 효도계약서상 심부름의 내용이 특정돼 있지 않고, 심부름 내용에 관해 당사자 간 합의가 없었을 뿐 아니라 심부름 이행 여부를 판단할 구체적 기준이 없기 때문에 ‘급부(부담)’의 법적 요건인 확실성을 갖춘 것으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1심과 항소심 모두 화우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최유나 화우 파트너변호사는 “증여하면서 적법한 효과가 있는 ‘부담’을 붙이려면 ‘부담부(조건부) 증여계약서’라는 정식 서류를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제대로 작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