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속 연수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연공급제(호봉제)가 중심인 우리나라 임금 체계를 개편하지 않으면 100조원 이상의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경고가 나왔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최근 내놓은 ‘인구구조 변화를 고려한 임금체계별 사회적 비용 연구’ 보고서는 과거 고도성장기에나 유효했던 연공급제가 이제는 기업의 생존마저 위협하는 등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국민연금 개혁과 맞물려 계속 고용 또는 정년 연장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는 만큼, 그 필수 전제가 돼야 할 임금체계 개편 문제도 함께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노동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의 임금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연공성이 강하다. 유럽의 주요국에 비해서는 물론이고 임금 연공성이 높다는 일본보다도 정도가 심하다. 근속 30년 이상 근로자의 임금은 1년 미만 근로자의 4.4배에 달한다고 한다. 근속 15~19년만 돼도 1년 미만 신입 근로자의 3.3배 임금을 받는 등 격차가 심하다.

이런 근로자의 생산성과 임금의 불일치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생산성이 낮은 근로자가 오래 근속했다는 이유만으로 생산성을 초과하는 임금을 받는다면 기업들의 지급 능력에 한계가 올 수밖에 없다. 생산성이 높은 근로자는 열심히 일할 의욕을 잃어 다른 기업으로의 이직을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연공급제가 기업과 근로자 모두에게 이익이던 시기도 있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정년제도와 맞물려 불필요한 노동 이동을 줄이고 장기근속을 가능하게 했다. 근로자는 안정적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고, 기업도 숙련 근로자라는 인적 자본을 축적할 수 있었다. 생산성과 임금의 불일치 문제 역시 평생직장이라는 틀 안에서 생애 주기적으로 일치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무엇보다 저성장과 인구 감소라는 조건 아래에서는 맞지 않는 옷이다. 특정 시기에 효과적이었다고 해서 인구구조 등 사회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낡은 임금제도를 금과옥조처럼 계속 가져가야 할 이유도 없다.

세계 유례없는 속도로 저출생·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청년은 줄고 노인 인구는 늘어나는 와중에 정년 60세 이후에도 일해야 할 경제적 필요성이 커졌고 충분히 일할 수 있을 만큼 건강 나이도 젊어졌다. 정년 연장 논의가 본격적으로 불붙은 까닭이다. 하지만 연공급제를 직무와 성과에 따라 임금을 주는 직무급제, 성과급제 등으로 바꾸지 않는 한 정년 연장은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밖이다. 경직적인 임금체계가 이미 기형적 제도인 임금피크제나 40, 50대 조기퇴직을 초래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노동시장의 낮은 생산성과 비효율성을 방치한다면 그 피해는 모두 미래 세대에 돌아갈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