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속연수에 따라 자동으로 임금이 올라가는 연공급 중심의 임금체계를 개혁하지 않는다면 세대별로 100조원 넘는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것이라는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정년 이후 계속고용과 임금체계를 두고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진 가운데 국책연구원이 임금체계 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17일 한국노동연구원은 ‘인구 구조 변화를 고려한 임금체계별 사회적 비용 연구’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선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자동으로 올라가는 연공급제(호봉제)가 지배적 임금체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세대 간 임금 격차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사업체 노동력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근속기간 30년 이상 근로자가 1년 미만 근속자에 비해 4.4배의 임금을 받고 있다. 20년 이상 30년 미만 근속 근로자의 임금은 1년 미만 신입 근로자 대비 2.83배로 독일(1.88배) 프랑스(1.34배) 영국(1.49배) 등 주요 선진국은 물론 호봉제의 ‘본산’인 일본(2.54배)보다도 높다.

보고서는 한국이 고령화사회에 들어선 지 25년 만에 내년 초고령사회 진입이 확실시되면서 연공급제의 효용성이 크게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일본(35년)보다도 10년이나 더 빠르다.

보고서는 “호봉제와 같은 ‘장기 임금계약’은 청년 세대의 생산성 일부를 장년 세대 근로자에게 이전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며 “호봉제는 급격한 고령화, 저성장과 맞물려 효용성을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호봉제는 청년 세대가 장년이 됐을 때 높은 연봉으로 보상받고 감소한 생산성을 미래 세대에게 보장받는 노동시장 내 ‘세대 간 계약’이다. 보고서는 “급격하게 오른 청년 세대 이직률 탓에 장기 임금계약은 지속되기 어려워졌다”며 “먼 미래에 보상받을 수 있다는 ‘제안’은 청년 세대에게 신빙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시험적 계산 모형을 통해 ‘개별 세대’가 부담하는 사회적 비용을 추산한 결과 대략 국내총생산(GDP) 대비 7%라고 설명했다. 공동 연구진인 이철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2023년 기준 실질 GDP가 2243조원이라면 7%는 157조원이고, 여기서 노동 부분은 70% 정도로 약 110조원”이라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경제 및 인구 구조 변화에도 불구하고 연공급제를 계속 그대로 유지한다면 비효율이 발생할 것”이라며 “연공성이 강한 한국 임금체계를 시대 변화에 맞도록 개혁해야 한다”고 밝혔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