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적 정서를 보여주는 이야기꾼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왼손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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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서정의 머나먼 나라의 책 읽기
러시아적 심성의 골짜기에서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왼손잡이>
러시아적 심성의 골짜기에서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왼손잡이>

레스코프는 가명이 수없이 많은 사람이었다. '시편 기자', '군중 속의 사람', '시계의 연인' 등과 같은 이상하고 기괴한 이름으로 글을 썼다. 실명으로 글을 쓰기 전까지 가장 널리 알려진 그의 필명은 '스텝니츠키'였다. 1831년 성직자 출신의 예심판사와 영락한 귀족 가문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니콜라이 레스코프는 어린 시절을 오룔에서 보낸 후, 아버지의 실직으로 크로미시 근처 파니노 마을로 이사했다.

이러한 경력이 반영된 <봉인된 천사>(1873)에서 레스코프는 분리파[구 예전파] 신앙을 신봉하는 일군의 유랑 건설노동자 집단을 그린다. 이들이 가진 신앙의 특성은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된 동력이 되는데, 그 이해를 위해 17세기 후반 러시아정교회 분열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16세기에 교회 문헌 번역을 위해 러시아로 초청된 그리스 신학자 막심 그렉은 예배 서적을 비잔틴으로부터 들여오며 번역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나 콘스탄티노플 함락(1453년) 이후 자신의 보편성에 대한 자의식으로 충만했던 러시아 교회는 민족교회 전통을 기독교 진리의 잣대로 간주한다.
그런데 17세기 러시아정교회의 총대주교가 된 니콘은 예배서 번역상의 오류들을 바로잡아야 할 필요성을 인정한다. 이 작업을 위해 그는 키이우에서 신학자들을 초청하는데, 모스크바 교계에서는 이들에 대해 ‘라틴 가톨릭’에 오염되었다는 의심을 했다. “우리 교회의 거룩한 조상들로부터 전해진 모든 것이 거룩하고 오류가 없다.”라고 설교하던 주사제 아바쿰을 비롯한 일군의 지도자들은 맹렬하게 저항했고, 정치적으로 패배한 분리파는 박해를 피해 행정력이 덜 미치는 벽지로 떠나갔다.

성경을 잘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이콘을 통해 눈으로 하늘의 영광을 보게 되면 인생의 가장 고귀한 의미를 생각하며 어떻게 이 목표에 도달해야 할지 알 수 있게” 된다는 그들의 설명은 이콘에 대한 기이한 사랑이 단순히 물성에 대한 숭배가 아니라 그 구체성에 깃든 육화된 진리를 지각하는 과정이라는 이해에 도달하게 한다. 상징의 숲으로서 이콘은 그 아름다움을 더듬어가는 생의 지도와 같다. 그래서 그들 기도의 목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생을 마치고 최후 심판의 날에 선한 판결을 받는” 시점을 향한다는 것이다.
러시아 인민의 삶을 토속적 언어에 실어 민족적 전형성을 부여
금지되어 비밀스러운 것이었고, 그래서 악한 기운이 감도는 것, 따라서 바르지 못한 것으로 비쳤다. 19세기 러시아 작가 레스코프는 왼손잡이를 주인공으로 작품을 썼고, 아주 특별한 능력에 관한 기이한 이야기를 펼친다. 이 작품에는 <툴라의 강철 벼룩 장인>이라는 부제가 붙어있으며, 이는 ‘러시아 정신’에 관한 이야기다. 톨스토이는 “우리 작가들 중 러시아인 바로 그 자체인 작가”라고 레스코프를 칭했다.

새 차르 니콜라이가 이를 발견하자 플라토프는 지난 일을 보고하고, 차르는 플라토프에게 명령을 내려 강철 벼룩이라는 놀라운 물건을 능가하는 작품을 러시아의 장인들에게서 만들어 오라고 한다. 플라토프는 툴라의 유능한 총포 제작자를 찾아 세 장인에게 일을 맡겼는데 결과물이 신통치 않아 보이자 세 장인 중 하나인 왼손잡이를 붙잡아 차르에게 직접 고하라며 그를 데리고 차르에게 간다. 차르 앞에서 시연된 벼룩은 전처럼 뛰지 못했는데 놀랍게도 그 발에 편자가 박혀있었기 때문이다.
왼손잡이는 죽기 전에 유언을 남겼는데 그가 영국에서 입수한 옳은 총기 보관법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정보는 불합리한 관료제도의 벽에 부딪혀 차르에게 가닿지 못한다. 그리고 화자는 그 정보가 묻히는 바람에 크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한 것이라고 한탄한다.

<왼손잡이>를 두고 당대 진보파는 민족주의적이라고 비난했고, 보수파는 러시아 인민의 삶에 대한 묘사가 지나치게 우울하다고 생각했다. 후대 비평가들은 독창적인 신조어, 풍자적인 서브 텍스트로 포화 된 이야기 구현의 기교에 주목했다.
그런데 1930년대에 문예 비평가 발터 벤야민은 니콜라이 레스코프에게서 소멸해 가는 ‘이야기꾼’의 가치를 발견했다. 레스코프는 화자가 특유의 지역적 문체로 어떤 화자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을 취하는데, 이야기꾼으로서의 레스코프는 개인적 체험을 포괄하는 집단적 경험을 자신의 이야기로 끌어올 수 있는 능력을 보인다는 것이다. 벤야민은 “그 어떤 경우이든 이야기꾼은 듣는 이에게 조언해줄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오늘날 ‘조언을 해줄 줄 안다’라는 것이 케케묵은 것으로 들리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경험의 전달 가능성이 줄어든 상황에 그 원인이 있다. <...> 조언은 그것이 살았던 삶의 직물 속에 짜여 들어갈 때 지혜가 된다. 이야기하는 기술이 종언을 고하고 있다. 그 이유는 진리의 서사적 측면인 지혜가 사멸해가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이야기를 이어간다는 것은 집단 삶의 문맥에서 물음의 방향을 제안한다는 것이고, 일찍부터 조상의 삶 속에 새겨져 내려온 구체적 지혜에 주목해 온 작가로서는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세속적 성자전(聖者傳)
<왼손잡이>에서 작가는 동화와 현실, 희극과 비극을 결합하면서 러시아 민족의 실제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고 민족성을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 이 작품에는 대조적 표현이 많다. 러시아와 영국의 삶을 보여주며, 평범한 사람들과 권력을 부여받은 사람들을 그린다.
왼손잡이는 뛰어난 재능과 노력을 타고났으며, 미천해 보이나 조국을 포기하지 않는 민족적 영웅이자 의로운 인물이다. 이야기의 다른 극에는 군주가 있는데, 그는 자기 백성들에게 무심하고 그들의 운명에 거의 관심이 없다. ‘왼손잡이 영웅’은 국가에 의해 잊히고 버려진다. 여기에는 레스코프가 즐겨 읽었다는 성자전의 전통이 반영되어 있다. ‘왼손잡이’는 세속 성자이고, 그는 이렇게 기려진다.

러시아정교회 주교는 시베리아의 미개한 원주민들을 가르치고 세례를 통해 정교회를 전파하려는 목적으로 시베리아 오지를 여행하는 과정에서 시베리아의 혹심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진정한 선과 인간성을 잃지 않는 원주민 안내인의 모습을 보며 인간의 본질적인 종교적 심성이 가지는 가치를 깨닫게 된다. 여행 중 죽음의 문턱에 서게 된 주교는 ‘세례받지 않은’ 안내인에 의해 구출되고, 이 ‘야만인’이 만들어낸 구원의 기적에 충격을 받은 그는 정신적 전환점을 경험한다.
전통의 '구체적 온전함'에 대한 극단적 믿음과 도그마를 넘어서는 광활한 신앙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어느 지점에서 만나 ‘유대인’ 나사렛 예수의 보편성과 호응한다. 그리고 레스코프라는 산은 이 골짜기들을 다 품고 있다.
서정 에세이스트•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