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쥐고 있는 사람은 없다. 쥐고 있는 척할 뿐이다. 이름있는 사회학자들의 거의 모든 책은 죽었으나, 소설들은 살아남았다. 기억하라. 진리는 숨어서 드러나지 그대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김현(1942~1990) 한국 문학사에서 평론 분야를 논할 때 첫손에 꼽히는 불세출의 문학평론가입니다. 동시에 프랑스 문학 연구에서도 탁월성을 인정받는 저명한 불문학자이기도 하죠. 하나의 분야에서도 최고가 되기 힘든데 그는 국문학과 불문학 양대 분야에서 모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거장입니다. 특히 그의 평론은 평론이 소설 못지않게 아니, 오히려 소설보다 더 매력적이며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마스터 피스입니다. 아직 그의 평론을 접하지 않은 분들에겐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김현 / 사진출처. 지성과 문학사 페이스북
김현 / 사진출처. 지성과 문학사 페이스북
그러나 오늘 제가 소개해 드릴 책은 그의 평론집이 아닙니다. 이미 그가 집필한 평론의 탁월성은 한국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에겐 상식이거든요. 그래서 평론에 비해 덜 조명됐으나, 뛰어난 에세이스트로서 그의 유려한 문장에 실린 삶의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책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제목은 <행복한 책읽기>로 김현의 일기를 엮은 책입니다. 가장 최신 개정판은 2015년에 나왔지만, 초판은 1992년에 나왔으니 무려 세상에 나온 지 32년 된 책입니다. 이 책은 그가 생의 마지막에 남긴 글로 유고집입니다. 1985년 12월 30일부터 1989년 12월 12일까지의 일기죠. 이 일기를 마지막으로 그는 1990년 6월 48세의 나이에 작고합니다.
김현 <행복한 책읽기> 표지 / 사진출처. 교보문고 홈페이지
김현 <행복한 책읽기> 표지 / 사진출처. 교보문고 홈페이지
그럼 일기를 통해 김현이라는 뛰어난 사색가의 통찰력 넘치는 내면으로 한번 들어가 볼까요?

가장 먼저 살필 ‘압도적 한 문장’은 제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기도 합니다.

진리를 쥐고 있는 사람은 없다. 쥐고 있는 척할 뿐이다. 이름있는 사회학자들의 거의 모든 책은 죽었으나, 소설들은 살아남았다. 기억하라. 진리는 숨어서 드러나지 그대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1989년 8월 5일 일기 中)

물론 김현이 사회학 자체나 사회학의 뛰어난 저서들을 폄훼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문학, 특히 소설의 위대함을 설파하는 것이죠. 사실 당대에는 매우 뛰어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던 사회과학의 다양한 이론들이 시간이 지나 사회적 상황이 달라지고 연구가 진전되면서 오류가 발견됩니다. 그게 학문의 속성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학, 특히 소설은 근대 이전은 물론 중세 그리고 기원전 고대까지 무수히 많은 작품이 여전히 인류의 사랑을 받으며 굳건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죠. 시대를 불문하고 인간의 본성과 욕망, 삶의 본질과 의미가 담긴 소설들은 언제나 깊은 울림을 줍니다. 그리고 그런 소설들에 담긴 가치는 각각의 개인들이 그 소설을 읽을 때만이 느낄 수 있는 매우 개별적인 행위이기도 합니다. 김현은 바로 뛰어난 소설을 읽는 행위는 그 자체가 바로 진리를 발견하는 방법이라고도 얘기하는 겁니다.
기억하라, 진리는 숨어서 드러난다는 것을
이 문장의 앞부분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사회학자들이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로 읽지 않고 자료로 읽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사회학자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마음대로 폄하하는 것-뭐랄까, 사회학적 인식이 덜 됐다는 거다. 마치 자기들은 진리를 쥐고 있고, 소설가들은 아무리 그것을 가르쳐 줘도 모른다는 듯이, 돌대가리들이다-는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앞의 문장을 읽지 않아도, 제가 꼽은 ‘압도적 한 문장’만으로도 그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죠. 세상 누구도 진리를 쥐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쥐고 있는 척할 뿐, 또는 쥐고 있다고 착각하거나 간절히 쥐고 싶을 뿐이죠. 이 글에선 ‘사회학자 VS 소설가’로 묘사했지만, 이 대립은 다른 말을 대입해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정치인 VS 국민’은 어떨까요? 정치인들도 언제나 자신들이 국민의 마음, 민심을 정확히 알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매우 구체적으로 민심을 얘기하면서 때로는 자신들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마음대로 가져다 씁니다. 그러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정치인들의 허황된 말은 거의 허공으로 사라졌지만, 민심의 간절한 외침은 살아남았습니다.

다음날 일기에서 김현은 이 진리 문제에 대해 더 천착합니다.

자만심이 악덕인가 아닌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의 심리적 근거는 자기는 진리를 쥐고 있다는 확신이다. 진리의 이름으로 남을 비판하는 사람의 그 기세당당함은 회의나 반성, 따짐과 잼 등의 일체의 이성적 조작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1989년 8월 6일 일기 中 )

진리를 쥐고 있다는 자기 확신이 지나치면 결국 자만심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결국 어떤 사안에 있어서 이성적인 가치 판단이 무뎌지게 한다는 것이죠. 이런 ‘진리 확신범’이 공적 영역에서 어떤 결정을 하게 됐을 때의 폐해는 뭐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아실 겁니다.

어쩌면 2024년 현재, 한국 사회가 직면한 많은 갈등 상황도 상당수 이 범주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립하는 양측 모두 각기 자신들만이 진리를 쥐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아주 자신만만하죠. 그래서 자신들의 입장에 그 어떠한 반론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기억하라, 진리는 숨어서 드러난다는 것을
김현은 다른 일기에서 진리와 권위주의를 더욱 통렬하게 정리합니다.

권위주의의 특성은, 자기는 옳고 다른 사람은 그르다는 ‘믿음’에서 연유하는 오만과 뻔뻔함에 있다. 나는 옳으니까 너는 내 말을 들어야 한다는 뻔뻔함과 나는 옳으니까 내가 틀릴 리가 없다는 오만함은 동어반복에 기초하고 있다. 권위주의는 동어반복이다. 나는 권위 있으니까 권위 있다! (1988년 10월 12일 일기 中)

마침내 김현은 진리 확신범과 권위주의자로 가득한 한국 사회에 이런 일갈을 던집니다.

이 타락한 세계에서 면책 특권이 있는 자가 어디 있을까? (1988년 3월 18일 일기 中)

최효안 북 칼럼니스트·디아젠다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