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트럼프의 Fed 흔들기
인플레이션 조짐이 역력하던 1970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고문이던 아서 번스를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으로 임명했다. 번스는 닉슨의 뜻에 따라 당시 연 8%인 기준금리를 1년도 안 돼 연 3%로 떨어뜨렸다. 이후 물가가 급등해 번스는 Fed 사상 최악의 의장으로 기억되고 있다. 오일쇼크가 한창이던 1979년 10월 6일. Fed 의장이던 폴 볼커는 기준금리를 연 15.5%로 한꺼번에 4%포인트나 올렸다. 이른바 ‘토요일밤의 학살’이었다. 초고금리 탓에 재선에 실패한 지미 카터 대통령은 볼커 임명을 “최악의 실수”라고 했지만 볼커는 역대 최고의 Fed 의장으로 꼽힌다.

Fed 의장은 ‘세계의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지만 미국 대통령과의 관계는 불편한 적이 많았다. 제롬 파월 현 의장도 예외가 아니다. 애초 2018년 Fed 의장에 파월을 임명한 건 트럼프였다. 파월이 경기 부양 방침에 적극적으로 호응할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파월은 임기 첫해 기준금리를 네 차례나 올렸다. 트럼프는 “Fed가 미쳤다” “파월은 멍청하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Fed는 트럼프가 파월을 해임하면 대통령을 상대로 소송을 거는 것까지 준비했다.

이번 대선 국면에서도 트럼프와 파월의 갈등이 재점화했다. 트럼프는 대선 전엔 금리 인하에 반대했다. 금리 인하가 민주당을 돕는 일이란 이유에서다. 하지만 파월은 “선거 결과를 염두에 두고 통화정책을 결정하지 않는다”며 금리를 인하했다. 최근엔 트럼프 최측근으로 부상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나섰다. 최근 X(옛 트위터)에 ‘누가 금리 결정을 더 잘할까’라는 질문을 올리며 선택지로 ‘Fed’와 ‘매직 8볼’을 고르게 했다. 매직 8볼은 ‘예’ ‘아니요’로 답할 수 있는 질문을 하고 뒤집어 운세를 보는 공 모양 장난감이다. 한마디로 아무나 금리 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파월도 고분고분 물러나진 않을 태세다. 그는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당신을 해고하거나 끌어내릴 수 있는 것 아닌가”란 질문에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트럼프는 파월이 번스처럼 되길 바라지만 파월은 볼커가 되길 원하고 있다.

주용석 논설위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