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보안감점제 탓 서로 헐뜯는 조선 빅2…그사이 KDDX는 무기한 연기
방위산업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도입한 감점 제도가 방산 시장을 되레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매년 급증하는 산업 기술 유출 신고와 달리 방산 기술 유출 신고는 지난 10년간 단 한 건도 없었던 게 그 방증이다. 유출 사고가 없어서가 아니라 신고하면 입찰에서 탈락하는 불이익을 보기 때문에 ‘쉬쉬’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설명이다. 보안 사고 감점제는 ‘한국형 이지스함’으로 불리는 군의 차기 구축함(KDDX) 사업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국내 조선 ‘빅2’인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여부를 두고 ‘죽기살기식’ 대립 양상을 보이면서 사업 일정이 줄줄이 지연되고 있다.

○‘너 죽고 나 살자’ 다툼에 방산 휘청

18일 방위사업청과 경찰에 따르면 방산 보안 사고 감점제가 사업자 당락을 좌우한 첫 사례는 지난해 법정 공방 끝에 사업자가 확정된 신형 호위함 건조 프로젝트다. 지난해 11월 한화오션은 방사청과 3600t급 신형 호위함 5, 6번함을 7918억원에 건조하는 본계약을 체결했다. 한화오션은 100점 만점에 91.8855점을 받았고, 경쟁사인 HD현대중공업은 91.7433점으로 0.1422점 차로 탈락했다. 군사기밀을 촬영해 사내에 공유한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2022년 유죄 판결을 받아 보안 점수가 1.8점 깎인 게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이 사건은 방첩사령부가 인지 수사 형태로 조사에 들어간 사례다.

HD현대중공업은 “감점을 적용하면 입찰 결과가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가처분 신청을 내고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하며 반발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한화오션은 “1.8점 감점은 불법성에 비해 과소하다”고 주장했다. 방사청은 “감점 기준을 정하는 건 입찰 기관 재량”이라고 반박했다.

감점제의 위력은 차세대 이지스함 구축 사업인 KDDX 관련 수사로도 확대되고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해부터 왕정홍 전 방사청장의 규정 변경 의혹, HD현대중공업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임원 개입, 한화오션 임원의 명예훼손 등을 수사하고 있다. 소송 승자가 8조원 규모의 KDDX 사업을 가져갈 수 있어 두 기업 모두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기술 줄줄 새고, ‘경쟁입찰’ 원칙도 훼손

방산업계에선 선의의 경쟁과 협력을 통해 군 전력을 높이고 세계 시장을 공략해야 할 두 기업의 이전투구를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최근 중간 결과가 알려진 호주 호위함 수주전에서 미쓰비시 등과 정부가 한 팀을 꾸린 일본과 달리 HD현대중공업, 한화의 협력이 불가능했던 것도 이처럼 감정의 골이 깊게 파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해군 무기체계의 핵심이 될 KDDX 사업자가 감점 여부로 결판나면 국가 계약 원칙인 경쟁입찰제가 유명무실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방산업계 고위 관계자는 “보안 감점 위력이 커지면 기업이 기술을 키우기보단 상대 흠집을 잡는 데 혈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안 감점제가 정작 기술 유출을 막지 못하고 부작용만 일으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방산 하청 기업 A사는 창원지방법원에서 국내 대기업 및 유럽 기업의 기술을 빼돌린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 회사를 대리하는 법무법인은 피해를 본 대기업에 “보안 감점을 받을 수 있으니 사건을 덮자”고 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엔 일반 기술 유출 혐의가 적용된 것으로 전해졌다.

‘입찰 자격 박탈’과 다름없는 감점 대신 벌금 등을 내도록 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최기일 상지대 국가안보학과 교수는 “KDDX 관련 두 회사의 다툼이 격화한 이유는 방사청이 오랫동안 보안 감점 문제를 방치했기 때문”이라며 “기업들이 내부에선 선의의 경쟁을 하고, 해외에선 협력할 수 있도록 정부가 유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철오/정희원 기자 che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