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존재감 커진 '시니어 코인개미'…투자액 20대의 9배 훌쩍
60대 남성 이모씨는 5년 전부터 매달 30만원씩 투자해 꾸준히 비트코인을 모으고 있다. 은퇴 후 풍족한 노후를 보내기 위해선 공격적인 재테크 전략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다. 누적 수익률은 약 210%. 이씨는 “매달 몇백만원씩 나가는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선 자산을 계속해서 불려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며 “은행 예·적금에만 의존하기보다 암호화폐와 미국 주식 등에 골고루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젊은 층이 주도한다는 인식이 강한 가상자산 시장에서 시니어 세대의 존재감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60대 이상 시니어 투자자의 평균 가상자산 투자 금액은 20대보다 아홉 배가량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액티브 시니어’가 가상자산 시장에서 큰손으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비트코인 투자액 ‘쑥’

18일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업비트, 빗썸에서 가상자산 보유액이 10억원을 초과하는 고액 계좌 수(9월 말 기준)는 50대(904개)가 가장 많았다. 40대와 60대가 각각 850개, 538개로 뒤를 이었다. 20대 이하와 30대의 10억원 초과 고액 계좌 수는 각각 69개, 454개에 그쳤다. 50대와 60대 큰손(10억원 초과 투자자)의 인당 평균 가상자산 보유액은 21억원에 달했다.

세대별 투자 비중은 40대(32.0%)가 가장 높았고 △50대(29.3%) △30대(21.1%) △60대 이상(13.2%) △20대 이하(4.4%) 순이었다. 하지만 인당 평균 투자액만 놓고 보면 60대 이상이 가장 많았다. 60대 이상 투자자의 인당 평균 가상자산 보유액은 약 872만원이었다. 20대 이하(98만원)와 30대(298만원)의 각각 9배, 3배 수준이다. 자산 규모가 큰 시니어 세대 특성상 암호화폐에 투자하는 절대적인 금액이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가상자산 시장 침체기였던 2022년 말 60대 이상 고객의 인당 평균 투자액은 260만원이었다. 1년9개월 만에 60대 이상의 코인 투자액이 세 배 넘게 급증했다.

“위험자산 투자 꺼리지 않아”

과거 젊은 세대가 주를 이룬 가상자산 시장에 시니어가 대거 뛰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시니어 세대는 과거와 달리 여가·문화 등을 중시하고 사회활동을 활발히 이어가는 특징을 보인다. 이때 필요한 노후 생활비 마련을 위해 주식 등 위험자산 투자도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게 금융권의 공통된 설명이다.

한 암호화폐거래소 관계자는 “라운지에 찾아오는 고객 10명 중 3~4명이 시니어 세대”라며 “고령층 암호화폐 투자자가 젊은 세대보다 오히려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산업에 관심이 높다”고 전했다.

업비트와 빗썸에 개설된 계좌 증가율을 분석한 결과 60대 이상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올해 9월 말 60대 이상 고객 계좌는 77만5718개로, 2021년 말 대비 30.4%(18만834개) 증가했다. 같은 기간 50대 고객 계좌도 22.5%(35만6169개) 늘었다.

시니어 세대는 가상자산 대장주인 비트코인에 주로 투자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60대 이상 업비트 고객의 가상자산 보유액 가운데 47.3%가 비트코인이었다. 그 뒤로 리플(15.8%), 이더리움(9.9%) 순이었다. 20대 이하와 30대의 비트코인 자산 비중이 각각 31.0%, 29.7%인 것과 비교하면 시니어 세대의 비트코인 선호도가 높았다. 비트코인이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가상자산)보다 상대적으로 변동성이 작고 안전하다는 점이 시니어 세대에게 매력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가 가상자산산업을 제도권 내로 편입해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 의원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코인 투자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지만 가상자산은 여전히 제도권 밖에 머물고 있다”며 “가상자산산업 발전을 위해 정부의 체계적 관리와 감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형교 기자 seogy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