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8일 브라질 일간지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한국에 있어 미국과 중국 양국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고 언급한 건 경제와 안보 모두에서 중국보다는 미국에 치중하던 외교 기조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중국과의 관계 강화를 통해 리스크는 줄이고 협상력은 높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다. 중국 역시 더 심해질 차기 트럼프 정부의 대중 압박 정책을 견제하고 러·북 밀착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주력하고 있다.
판 바뀌는 경제·안보 환경…美·中 사이서 '능동외교'

대통령실 “외교 기조 전환 아냐”

페루 리마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잇달아 열리고 있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및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는 트럼프 당선 이후 열리는 첫 다자외교 행사다. 트럼프 2기를 준비하는 주요국의 외교 전략을 엿볼 수 있는 무대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윤 대통령은 ‘우 글로부’ ‘폴랴 지 상파울루’ 등 브라질 유력 일간지 두 곳과 인터뷰하면서 “미·중 양국과 긴밀히 협력해 나가겠다” “국제사회에서 협력과 경쟁은 병존할 수밖에 없다” 등 그동안의 외교 레토릭(수사)과는 다소 다른 발언을 내놨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외교) 기조의 전환은 아니다”며 “한·미 동맹 복원 및 한·미·일 협력 강화 등 과제가 일단락된 상황에서 앞으로는 중국과의 관계 강화를 위해 더 힘쓰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외교가에서는 최근 한·중 관계가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윤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5일 리마에서 2년여 만에 정상회담을 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서비스 분야 협상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상대방에게 서로 자국 방문을 요청하기도 했다. 앞서 중국은 이달 초 한국인 관광객에 대한 비자 면제 조치를 깜짝 발표한 데 이어 한동안 공석이던 주한 중국대사를 국장급으로 급을 올려 임명했다. 우리 측은 지난달 김대기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새 주중대사로 내정했다.

“韓에 미·중은 선택 아니라 설득 대상”

이 같은 전략 변화에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경제와 안보 등 모든 분야에서 환경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란 판단이 깔렸다. 경제 분야에서 한국은 그동안 가치 동맹 중심의 공급망 재편 전략에 편승해왔지만, 앞으로는 거래를 중시하는 트럼프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는 과제가 있다. 안보 분야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당선인은 김정은과의 직접 대화 가능성을 시사하고 주한미군 주둔 비용 인상을 압박하는 등 조 바이든 행정부와는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트럼프 당선인이 동맹국을 압박하거나 경시하는 행동을 보이며 한국이 난감해질 수 있는 위험을 줄이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미·중은 선택이 아니라 결국 설득의 대상”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또 “트럼프의 대중 외교정책이 더 강경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현재의 대미 관계를 그대로 가져가는 것은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의미한다”며 “(정부 입장에서) 전술적 변화를 주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방위비 분담, 전기차 보조금 폐지 등 문제가 산적해 있다”며 “한국 입장에서는 주요 현안에 대한 협상에 대비하기 위해 중국과의 관계를 레버리지로 활용할 여지가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 입장에서도 북·러 군사 밀착 등 복잡해진 국제 관계에서 한국과의 관계 개선 동기가 커졌다는 평가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중국은 미국의 ‘아메리카 퍼스트’ 외교 노선이 중국에 새로운 외교 가능성 열어준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차원에서 (한국과) 선제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풀이했다.

김동현 기자/리우데자네이루=도병욱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