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우 음료 속 과즙 함량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사진에 기준이 있다. /사진=크리에이터 '레이첼에너지' 인스타그램 캡처
일본의 경우 음료 속 과즙 함량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사진에 기준이 있다. /사진=크리에이터 '레이첼에너지' 인스타그램 캡처
"일본에서 주스 고를 때 과일의 슬라이스(단면)가 보이면 과즙 100%라는 뜻이에요."

일본의 세부적인 식품 광고 표시 기준이 화제다. 국내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관련 영상이 인기를 끌면서 "국내 도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식품에 대한 규정 만큼은 강화해 소비자 신뢰를 높일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영상 크리에이터 '레이첼에너지', '지식창' 등이 게재한 영상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과일 주스에 따라 과즙 함량에 차이가 있다. 과즙 함량이 100%라면, 과일 속 과육이 드러나는 단면 사진을 사용할 수 있다. 과즙이 들어있으나 100%가 아니라면 과일이 잘리지 않은 원물 사진만 사용할 수 있다. 만일 과즙이 들어 있더라도 5% 미만으로 함량이 극히 적다면, 실제 사진이 아닌 일러스트 형태의 그림만 포장지에 묘사할 수 있다.
일본 과자류에서 실물 과자 조각 크기와 인쇄 포장지 속 그림이 거의 일치하는 모습. /사진=유튜브 '지식창' 캡처
일본 과자류에서 실물 과자 조각 크기와 인쇄 포장지 속 그림이 거의 일치하는 모습. /사진=유튜브 '지식창' 캡처
과자의 경우에는 실물 크기가 포장지에 인쇄된 사진 속 크기와 일정 기준 이상 차이가 나면 안 된다. 포장지를 뜯었을 때 실제 과자의 크기가 포장지와 비슷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에 해외 인플루언서들이 일본의 과자를 구매해 인쇄 포장지와 실제 과자의 크기를 비교하는 다수 게재되기도 했다. 실제로 실물 과자가 인쇄된 모습보다 더 크거나, 거의 동일했다.

이러한 내용을 담아 레이첼에너지가 지난 9일 공개한 영상은 인스타그램에서 127만회 넘게 조회됐다. 유튜브 채널 '지식창'에 14일 비슷한 내용으로 게재된 영상은 5일 만에 무려 489만회의 조회수를 돌파했다.

영상을 접한 누리꾼들의 반응도 뜨겁다. "일본 광고 기준이 훨씬 직관적이라 이해하기 좋다", "우리나라 도입이 시급하다", "한국 식품 기업들이 이 영상을 싫어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주스나 과자 사려면 원재료명, 성분표 글씨부터 봐야 한다" 등의 반응을 내놨다. 대부분 일본의 광고 기준 대비 국내의 기준이 한눈에 알아보기 어렵다는 지적이었다.

우리나라 기준 어떻길래

국내의 경우 식약처에서 고시하는 식품등의 부당한 표시 또는 광고의 내용 기준에 따라 '합성향료물질만을 사용하여 원재료의 향 또는 맛을 내는 경우 그 향 또는 맛을 뜻하는 그림, 사진 등을 사용하는 광고'는 부당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만 그림이나 사진에 명확한 세부 기준은 없다. 이처럼 향료만으로 구성된 탄산 음료도 '00향'이라는 문구 표시가 명확하게 있다면 추상적인 도안 정도의 과일 그림은 사용할 수 있다. /사진=코카콜라 공식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제품판매창 캡처
국내의 경우 식약처에서 고시하는 식품등의 부당한 표시 또는 광고의 내용 기준에 따라 '합성향료물질만을 사용하여 원재료의 향 또는 맛을 내는 경우 그 향 또는 맛을 뜻하는 그림, 사진 등을 사용하는 광고'는 부당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만 그림이나 사진에 명확한 세부 기준은 없다. 이처럼 향료만으로 구성된 탄산 음료도 '00향'이라는 문구 표시가 명확하게 있다면 추상적인 도안 정도의 과일 그림은 사용할 수 있다. /사진=코카콜라 공식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제품판매창 캡처
국내의 식품 광고 기준은 어떨까. 한경닷컴이 식약처에 문의한 결과, 우리나라에도 음료나 과자 포장지에 사진 활용 등에 대한 기준이 있긴 하나, 앞선 일본의 사례에 비해 두루뭉술한 편이었다. 일본의 사례가 온라인 상에서 주목받은 이유다.

국내의 경우 식약처에서 고시하는 '식품 등의 부당한 표시 또는 광고의 내용 기준'의 제2조 3항 자 항목에 따라, "합성향료물질만을 사용하여 원재료의 향 또는 맛을 내는 경우 그 향 또는 맛을 뜻하는 그림이나 사진 등을 사용하는 광고는 부당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합성향료만을 이용해 만든 음료는 과일이나 사진을 사용할 수 없고, 원재료가 들어있어야 과일이나 사진을 쓸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일본처럼 그림이나 사진의 사용 범위를 원재료 함량에 따라 세부적으로 나눠두진 않았다.

기준이 다소 광범위하다 보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혼동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국내에 유통되는 '환타 오렌지향' 음료는 과일 농축액 등의 원재료를 포함하지 않고 향료만으로 구성된 탄산음료인데 과일을 연상시키는 추상적인 도안이 그려져 있다. 국내 고시 기준상 이러한 이미지 옆에 '○○향'이라는 문구가 정확하게 기재돼 있다면, 일러스트 이미지 정도의 과일 그림은 사용할 수 있다.

이 포장지 도안과 관련, 식약처 관계자는 19일 한경닷컴에 "제품명 주위에 '합성오렌지향'이라고 명시된 점, 사용된 이미지는 과일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은 추상적인 도안인 점 등으로 보아 소비자가 오인·혼동할 우려가 크지 않다"며 "부당한 표시 광고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과자 포장지의 경우도 인쇄면과 내용물 크기가 일치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는 상황. 관계자는 "과자 포장지에 인쇄된 모습과 내용물 크기가 동일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으나, 포장지에 조리식품 사진이나 그림을 사용하는 경우 사용한 사진이나 그림 근처에 '조리예', '이미지 사진', '연출된 예' 등의 표현을 10포인트 이상의 글자로 표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우리나라 식약처는 '식품의 기준 및 규격' 규정 고시를 통해 소비자들이 음료를 세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끔 관리하고 있다. 같은 과일 음료라도 식품 유형을 과즙 함량에 따라 과채주스·과채음료·혼합음료·액상차 등으로 나누는 것이 예시다. 주로 제품 포장 뒷면의 '식품 유형'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도 식품 원재료에 대한 함량 등 세부 정보는 모두 포장지 뒷면에 상세히 기술돼있다"면서도 "다만 사진이나 포장지 인쇄 그림에도 세부적인 기준을 만들어 놓은 일본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기준이 허술하고 직관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소비자가 식품 정보를 수월하게 파악하게끔 규제나 정책이 점점 세밀해지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며 "이런 세심한 규제가 식품 산업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도를 제고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최근 이러한 영상이 온라인에서 유독 뜨거운 반응을 일으킨 이유를 묻자 이 교수는 "최근 이어진 고물가로 인해 국내 소비자들이 시장에서 슈링크플레이션(가격은 그대로 유지한 채 제품 용량을 줄이는 현상) 등 부정적인 소비 경험을 했다"며 "이에 대한 반발심이 해외 식품 광고 기준을 공유하고 국내와 비교하는 현상으로 발현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