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동 칼럼] 이토록 허술한 상속세 개편 논의
2020년 총선에서 절반을 훌쩍 넘긴 더불어민주당이 2022년 대선에서 패배한 데는 부동산 실정(失政) 영향이 컸다. 문재인 정부 5년간 서울 아파트값이 2배 오르는 등 집값이 뛰자 곳곳에서 불만이 쏟아졌다. 집 없는 사람은 내 집 마련이 힘들어서, 집 가진 사람은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가 급증했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종부세 부담을 낮추는 개정안이 윤석열 정부 첫해 여야 합의로 바로 통과된 것은 이 때문이다.

집값 급등의 여파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아파트 한 채를 갖고 있을 뿐인데 상속세를 물게 되자 울화통을 터트리는 중산층이 늘기 시작했다. 현행 상속세는 일괄공제(5억원)와 배우자공제(5억~30억원)를 제한 후 부과되는데,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이 12억4000만원(9월 기준)에 이르러 아파트를 소유한 두 집 중 한 집이 상속세 대상이 됐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공제 한도는 1997년 이후, 과표와 세율은 1999년 이후 그대로인 여파다.

정부와 여당은 올 들어 중산층 부담을 낮추고 대주주의 경우 할증 포함 세율이 60%에 이르는 가혹한 상황을 개선하고자 지난 7월 세법 개정안을 내놓았고 민주당도 곧이어 나름의 안을 제시했다. 정부안의 골자는 자녀 1인당 공제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상향, 최고 세율 50%에서 40%로 인하, 대주주 20% 할증 폐지 등이다. 민주당의 임광현 의원안은 일괄공제 8억원·배우자공제 10억원 상향, 최고 세율 및 할증 과세 유지가 핵심이다.

정부안이나 야당안이나 상속세 부담을 낮추는 쪽이어서 반갑지만 상속세 철학이나 원칙을 깊이 고민했는지는 의문이다. 우선 배우자에게 상속세를 물리는 게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 제기에 답이 없다. 외국을 보자. 미국 상속제도엔 ‘무제한 배우자 공제’(unlimited marital deduction) 조항이 있다. 배우자는 상속세를 한 푼도 안 내도 된다는 의미다. 증여 때도 마찬가지다. 부부 재산은 공동 재산이며 상속세는 재산이 부모 세대에서 자녀 세대로 넘어갈 때 매기는 세금이란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모두 마찬가지다. 일본도 법정 상속분까지 전액 공제한다.

배우자에게 상속세를 과세하는 것은 이혼으로 재산을 분할할 때 세금을 내지 않는 것과도 배치된다. 이와 관련한 2016년 대법원 판결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30년 넘게 결혼생활을 유지하다가 합의 이혼하면서 재산을 50억원 받았는데 7개월 뒤 배우자가 사망하자 세무당국은 증여세(사후엔 상속세)를 회피하기 위한 위장 이혼이라고 보고 과세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합의 이혼 자체를 중시해 과세 무효 판결을 내렸다. 고령자에게 이혼이 경제적 측면에서 유리하니 고민해 보라고 하는 게 지금 우리 사회다.

민주당이 대주주 20% 할증 폐지를 개정안에 담지 않은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상속세는 그 자체가 이미 누진세 구조인데, 여기에 대주주 할증까지 더한 것은 징벌 외 다른 의미를 찾기 힘들다. 다른 나라엔 없는 징벌이다. 한국에선 상속을 두 번만 하면 지분율이 100%에서 16%로 떨어진다. 정부가 물납받은 주식을 못 팔면 대주주가 된다. 대주주 할증을 폐지하는 것은 이 같은 비정상을 바로 잡는 것일 뿐이다. 야당이 부자 감세라고 모는 것은 왜곡이다.

정부가 유산세 체계를 유산취득세 체계로 전환해 부담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도 아무 방안을 제시하지 않은 것도 아쉽다. 내년 이후 한다지만 가 봐야 안다. 세법은 고치기가 쉽지 않다. 그 때문에 한 번 고칠 때 제대로 바꿔야 한다. 국회는 지금부터라도 치밀한 논의를 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