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병역 면제 나이 상향 '유감'
한국이 해외 체류자의 병역 제도를 강화한 건 1990년대다. 세계화 열풍 속에 기업의 해외 진출이 급증하던 시기다. 이때부터 출국 후 귀국을 미루는 입영 대상자가 늘자 정부는 1999년 해외 체류자의 병역 면제 연령을 31세에서 36세로 높였다.

3년 후 병역 관련 규정을 뒤바꾼 사건이 일어났다. 2002년 1월 “꼭 군대에 가겠다”던 가수 유승준 씨가 기습적으로 도미해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며 한국 국적을 포기한 것이다. ‘고의적 병역기피’라는 비판이 들끓자 이른바 ‘유승준 방지법’이 생겼다. 2004년 해외 영주권자의 병역 면제 혜택을 없앤 데 이어 이듬해엔 당시 국회의원이던 홍준표 대구시장 주도로 국적법과 재외동포법 등을 개정해 한국 국적을 포기한 병역기피자의 국내 체류 자격을 박탈했다. 이어 2011년 홍 시장은 악의적 해외 거주자를 비롯한 병역기피자의 입영 면제 연령을 36세에서 38세로 올리는 병역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 통과를 이끌었다.

그럼에도 10년 넘게 해외 체류형 병역기피가 줄지 않자 다시 연령 상향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 15일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이 해외 체류자의 입영의무 면제 나이를 38세에서 43세로 올리는 법안을 발의했다. 병역 면제를 어렵게 하자는 취지지만 연령 상한이 능사는 아니다. 30세 이후 입대하면 정상적 군 생활을 하기 힘든 상황에서 자꾸 면제 연령을 늦춘다고 한들 병역기피자가 확 줄어들 가능성이 크지 않아서다. 오히려 처벌 강화가 효율적이란 지적이 나온다.

병무청에 따르면 2019년부터 올 8월까지 해외 거주 사유로 입대를 거부한 병역 대상자가 1037명에 달했다. 이 중 86%가 해외 체류 이유로 기소중지(수사 중단)됐고 6%만 형사처벌을 받았다. 현행 병역법상 병역기피 목적으로 귀국하지 않으면 1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지만 최근 6년간 징역형을 받은 비율은 0.5%에 그친다. 2022년 이후엔 징역형 처벌이 단 한 건도 없다. 사법당국의 안일한 대처와 솜방망이 처벌이 헌법에 명시된 ‘국민 개병주의’ 원칙을 훼손한다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정인설 논설위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