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이 맘 먹고 보여주는 '한국 도자공예 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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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과천
'한국 현대 도자공예: 영원의 지금에서 늘 새로운'
2025년 5월 6일까지
'한국 현대 도자공예: 영원의 지금에서 늘 새로운'
2025년 5월 6일까지
1955년,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 뒷마당에는 큰 '가마'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 가마는 감상용 설치 작품이나 조각품이 아니다. 실제 도자기를 구워내는 데 쓰였다. '성북동 가마'로 이름이 붙은 이 가마는 국립박물관 부설 연구소로 문을 연 한국조형문화연구소가 세운 것이다. 1962년까지 불이 꺼지지 않던 성북동 가마에서는 수많은 조선백자들이 탄생했다. 흰 백자 위에 푸른 글씨로 '북단산장(北壇山莊)'이라는 글자를 새겨넣은 작품도 남았다.
흔히 백자, 청자 혹은 작은 집기류로만 여겨지던 도자기에는 이처럼 많은 역사적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한국 도자 공예의 맥을 잇기 위해 서울 성북동과 대방동 한복판에 가마를 세운 사실을 남겨진 도자 작품들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1950년대에 만들어진 도자기 커피잔 세트를 통해 생활 식기가 현대화된 시점도 추정할 수 있다.
한국 도자 공예의 시작점으로 여겨지는 1950년대부터 전후 복구시대, 현대까지 '한국 도자'를 아우르는 전시가 열렸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개막한 '한국 현대 도자공예: 영원의 지금에서 늘 새로운'이다. 사회와 문화가 발전하고 변화함에 따라 함께 변한 도자 공예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4가지 섹션으로 나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달라진 도자기의 특징들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성북동과 대방동 가마를 중심으로 도자를 만들었던 1950년대 전시장을 지나면 1960~1970년대 작업들이 전시된다. 한국 도자공예가 본격적으로 현대성을 갖추게 된 시기다. 특히 이 시기엔 도자와 회화가 결합된 '도화'가 유행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그 중에서도 가장 탁월한 작품 12점이 전시됐다. 모두 이건희컬렉션 작품으로, 그가 가진 20점의 도화 작품 중 12점이 이번 전시에서 공개된다. 모두 대중에게 처음으로 선보이는 작품들이다. 12점의 도화 작품은 모두 도예가 안동오의 작업이다. 그 위에는 다양한 작가들이 흰 백자를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렸다. 같은 백자임에도 작품마다 각기 다른 회화적 패턴이 드러나는 이유다.
도화가 더욱 도자 공예에서 중요한 작업으로 여겨지는 까닭은 색감의 농담 조절이 어렵기 때문이다. 도자기는 무조건 초벌 과정을 거쳐야만 색감을 입힐 수 있는데, 이 때 표면이 매우 뻑뻑하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기 쉽지 않다. 게다가 모든 작가들은 이 도자기를 다시 한 번 가마에 넣고 나서 그림이랑 색이 바뀔 것을 예상하고 그림을 그려야 하기 때문에 만족스러운 작품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이건희컬렉션 중 하나인 지순탁의 검은 다완도 공개됐다. 이 작업은 지순탁이 다도 문화가 활발했던 일본에 수출하기 위해 만든 도자기다. 말차를 마신 뒤 가루가 까만 도자에 붙게 되는데, 녹색과 검은 색감의 조화를 고려해 제작한 작품이다. 한쪽 방에는 높게 쌓인 황토 빛깔의 도자 작품이 가득 채웠다. 도예가 오향종의 작품이다. 그는 전라도에서 계승되어 오던 옹기 제작 기법과 도예를 결합한 작업을 펼쳤다. 옹기토를 사용해 틀을 만들고 안쪽에 판을 넣은 뒤 끊임없이 두드려 성형한다. 제작 방식 때문에 작품의 두께는 1cm를 넘지 않을 정도로 얇다. 하지만 유약하지는 않다. 두드림의 시간 덕에 작품의 벽면은 매우 단단하다. 옹기 제작 방식으로 만든 작품은 해외에서 더욱 각광을 받았다. 2부 ‘예술로서의 도자’는 1980년대 이후 ‘88서울올림픽‘을 통해 들어온 국제 예술 양식을 수용한 도자공예를 소개한다. 도자 조형이 오브제와 설치작업처럼 변한 시기이기도 하다.
도자 조형 작품은 무거운데다 다루기도 힘들어서 당시 갤러리들이 외면했던 장르다. 컬렉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 인기가 시들었다. 도자 조형을 두고 “1990년대가 전성기”라는 평가가 나온 이유다.
이 시기는 개인들이 공방을 운영하고 자신의 가마를 쓰면서 좀 더 자유로운 표현이 나타난 시기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 이세용의 다완 시리즈다. 이번 전시에도 그가 만든 다양한 형태와 색깔의 수많은 다완들이 놓였다. 그는 다완 안에 해학적 그림들을 그린 작가다. 단순 물감뿐만 아니라 은이나 금으로 그림을 그리는 등 고난도 기술이 필요한 작업을 펼쳐왔다. 특히 은은 매우 예민한 재료이기에 도자를 오직 낮은 온도에서만 구워야 한다. 얇게 칠하면 가마에 굽고 나서 색과 그림이 모두 사라지기도 한다.
3부 ‘움직이는 전통’은 21세기 이후 현대 도자들을 조명한다. 도자를 공간 설치작으로 새롭게 해석한 작업이 주로 나왔다. 김진은 전시장의 한쪽 공간을 모두 민트색으로 칠했다. 뜨개질 모임을 하며 이웃 주민들과 함께 간식을 나눠먹는 행위에서 영감을 얻었다. 감자와 고구마를 함께 삶아 먹으며 나눴던 이야기들을 도자 작품으로 표현했다. 민트색은 식재료와의 이질감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했다. 3부의 하이라이트는 김진명의 작품 ‘가로로 쓰여진 역사’다. 왕실용으로만 쓰였던 고귀한 백자대호를 가로로 붙여놓은 작업이다. 연결된 듯 붙어 있는 백자들엔 모두 이음새가 보인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도자에만 나타나는 특징이다. 그는 일부러 이 이음새를 보여주며 전통 도자에 현대적 유머를 더했다. 중간에 가마에서 나오며 터지거나 금이 간 부분은 질소 과자봉지를 구겨서 집어넣으며 메웠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가지고 있던 도자 소장품들을 대거 꺼내왔다. 좋은 도자 작품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전시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대형 작품은 다루거나 옮기기 어렵기에 더욱 만나보기 어렵다. 이번 전시가 한국 도자의 진면모를 볼 좋은 기회인 이유다. 전시는 내년 5월 6일까지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
한국 도자 공예의 시작점으로 여겨지는 1950년대부터 전후 복구시대, 현대까지 '한국 도자'를 아우르는 전시가 열렸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개막한 '한국 현대 도자공예: 영원의 지금에서 늘 새로운'이다. 사회와 문화가 발전하고 변화함에 따라 함께 변한 도자 공예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4가지 섹션으로 나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달라진 도자기의 특징들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성북동과 대방동 가마를 중심으로 도자를 만들었던 1950년대 전시장을 지나면 1960~1970년대 작업들이 전시된다. 한국 도자공예가 본격적으로 현대성을 갖추게 된 시기다. 특히 이 시기엔 도자와 회화가 결합된 '도화'가 유행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그 중에서도 가장 탁월한 작품 12점이 전시됐다. 모두 이건희컬렉션 작품으로, 그가 가진 20점의 도화 작품 중 12점이 이번 전시에서 공개된다. 모두 대중에게 처음으로 선보이는 작품들이다. 12점의 도화 작품은 모두 도예가 안동오의 작업이다. 그 위에는 다양한 작가들이 흰 백자를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렸다. 같은 백자임에도 작품마다 각기 다른 회화적 패턴이 드러나는 이유다.
도화가 더욱 도자 공예에서 중요한 작업으로 여겨지는 까닭은 색감의 농담 조절이 어렵기 때문이다. 도자기는 무조건 초벌 과정을 거쳐야만 색감을 입힐 수 있는데, 이 때 표면이 매우 뻑뻑하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기 쉽지 않다. 게다가 모든 작가들은 이 도자기를 다시 한 번 가마에 넣고 나서 그림이랑 색이 바뀔 것을 예상하고 그림을 그려야 하기 때문에 만족스러운 작품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이건희컬렉션 중 하나인 지순탁의 검은 다완도 공개됐다. 이 작업은 지순탁이 다도 문화가 활발했던 일본에 수출하기 위해 만든 도자기다. 말차를 마신 뒤 가루가 까만 도자에 붙게 되는데, 녹색과 검은 색감의 조화를 고려해 제작한 작품이다. 한쪽 방에는 높게 쌓인 황토 빛깔의 도자 작품이 가득 채웠다. 도예가 오향종의 작품이다. 그는 전라도에서 계승되어 오던 옹기 제작 기법과 도예를 결합한 작업을 펼쳤다. 옹기토를 사용해 틀을 만들고 안쪽에 판을 넣은 뒤 끊임없이 두드려 성형한다. 제작 방식 때문에 작품의 두께는 1cm를 넘지 않을 정도로 얇다. 하지만 유약하지는 않다. 두드림의 시간 덕에 작품의 벽면은 매우 단단하다. 옹기 제작 방식으로 만든 작품은 해외에서 더욱 각광을 받았다. 2부 ‘예술로서의 도자’는 1980년대 이후 ‘88서울올림픽‘을 통해 들어온 국제 예술 양식을 수용한 도자공예를 소개한다. 도자 조형이 오브제와 설치작업처럼 변한 시기이기도 하다.
도자 조형 작품은 무거운데다 다루기도 힘들어서 당시 갤러리들이 외면했던 장르다. 컬렉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 인기가 시들었다. 도자 조형을 두고 “1990년대가 전성기”라는 평가가 나온 이유다.
이 시기는 개인들이 공방을 운영하고 자신의 가마를 쓰면서 좀 더 자유로운 표현이 나타난 시기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 이세용의 다완 시리즈다. 이번 전시에도 그가 만든 다양한 형태와 색깔의 수많은 다완들이 놓였다. 그는 다완 안에 해학적 그림들을 그린 작가다. 단순 물감뿐만 아니라 은이나 금으로 그림을 그리는 등 고난도 기술이 필요한 작업을 펼쳐왔다. 특히 은은 매우 예민한 재료이기에 도자를 오직 낮은 온도에서만 구워야 한다. 얇게 칠하면 가마에 굽고 나서 색과 그림이 모두 사라지기도 한다.
3부 ‘움직이는 전통’은 21세기 이후 현대 도자들을 조명한다. 도자를 공간 설치작으로 새롭게 해석한 작업이 주로 나왔다. 김진은 전시장의 한쪽 공간을 모두 민트색으로 칠했다. 뜨개질 모임을 하며 이웃 주민들과 함께 간식을 나눠먹는 행위에서 영감을 얻었다. 감자와 고구마를 함께 삶아 먹으며 나눴던 이야기들을 도자 작품으로 표현했다. 민트색은 식재료와의 이질감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했다. 3부의 하이라이트는 김진명의 작품 ‘가로로 쓰여진 역사’다. 왕실용으로만 쓰였던 고귀한 백자대호를 가로로 붙여놓은 작업이다. 연결된 듯 붙어 있는 백자들엔 모두 이음새가 보인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도자에만 나타나는 특징이다. 그는 일부러 이 이음새를 보여주며 전통 도자에 현대적 유머를 더했다. 중간에 가마에서 나오며 터지거나 금이 간 부분은 질소 과자봉지를 구겨서 집어넣으며 메웠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가지고 있던 도자 소장품들을 대거 꺼내왔다. 좋은 도자 작품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전시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대형 작품은 다루거나 옮기기 어렵기에 더욱 만나보기 어렵다. 이번 전시가 한국 도자의 진면모를 볼 좋은 기회인 이유다. 전시는 내년 5월 6일까지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