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음극재' 인조 흑연, 脫중국 가속화 [원자재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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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나스닥 상장기업 말레이시아 그래프젯 테크놀러지가 새로운 방식의 흑연 생산시설을 개장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서방 주요국들이 중국이 지배하는 배터리용 인조 흑연 공급망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그래프젯은 야자 껍질을 가공하는 새로운 친환경 흑연 생산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다만 그래프젯의 최고경영자(CEO) 에이든 리는 리핑웨이라는 이름의 중국계 기업인이다. 회사의 주요 이사진도 중국계이나, 이 회사는 중국 정부의 직접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프젯의 말레이시아 공장 생산량은 연간 3000톤(t)이 목표다. 이는 150만t에 달하는 중국의 생산 능력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그래프젯은 미국 네바다주 리노 외곽에 생산 시설을 건설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5년 이내에 연간 10만t의 생산량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에이든 리 CEO는 FT에 "그래프젯은 새로운 생산 방식 덕분에 전통적인 코크스 원자재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 위험에 덜 노출돼 있다"고 말했다. 리튬과 같은 양극재와 달리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음극재 흑연에 관심이 높아진 것은 작년 10월 중국의 수출 통제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미국의 중국 기업에 대한 첨단기술 제품 판매 제한 조치에 대응해 몇몇 종류의 흑연 수출을 할 때 정부 허가를 받도록 했다. 고순도(99.9% 초과), 고강도(30Mpa 초과), 고밀도(1.73g/㎤ 초과) 천연인상 흑연 및 인조흑연 제품(구상흑연·팽창흑연 등) 등이 대상이다. 영국의 광물정보 기업 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중국은 2022년에 천연 흑연의 대부분과 전 세계 합성 흑연의 약 70%를 생산했다.
흑연은 매장량이 많고 싼 광물이지만 자동차 배터리에 쓰려면 가공비가 많이 들고 쓰는 양도 적지 않아 배터리값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제법 높다. 천연 흑연을 2차전지 음극재 제조에 직접 쓰기도 하지만, 입자를 구형으로 재가공한 구상흑연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가공 과정에 위험성이 매우 높은 유독 물질인 불산(HF)이 대량으로 사용된다. 이 때문에 인건비가 저렴하고 환경에 대한 인식이 비교적 미흡한 중국에서 흑연 생산이 활발하다. 국내 유일의 흑연 음극재 생산 기업인 포스코퓨처엠은 생산량 기준 세계 10위권에 유일한 비중국 기업이지만 최근 저가 공세를 펴고 있는 중국 기업들에 밀려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 정부 역시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향후 몇 년 동안 자국 제조업체들이 중국으로부터의 원자재 구매를 중단하도록 강제하는 새로운 규정을 시행했다. FT의 마일즈 맥코믹 휴스턴 특파원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인센티브를 폐지하면 공급망 중국 의존을 탈피하는 데 차질이 생길 수 있다"면서도 "중국에 대한 적대감이 높은 트럼프 당선인은 배터리 소재에 대한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기업들을 도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