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복처럼 인생을 살것인가? [이윤학의 일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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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머니이스트
열 두 번째 이야기
열 두 번째 이야기
아프리카에는 ‘스프링복’(Springbok)이라고 부르는 영양이 있습니다. TV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에서 자주 보던, 달리기를 잘하는 바로 그 영양입니다. 스프링복은 성격이 온순하고 조심성이 많은 초식 동물로 군집 생활을 하지요. 사자나 표범 같은 천적들이 공격하면 서로에게 경고음을 울려 생존해 갑니다.
평상시에는 서로 의지하며 평화롭게 살아가지만, 무리가 점점 커지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수천 마리가 떼 지어 다니기 때문에 무리 후미에 있는 영양들은 신선한 풀을 먹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후미에 있는 스프링복들은 신선한 풀을 먹기 위해 앞으로 좀 더 빨리 이동하기 때문에 선두 영양들이 걷는 속도도 점차 빨라지기 시작합니다. 결국 무리의 전체 이동에 가속이 붙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영양들이 뛰기 시작해, 무리 전체가 미친 듯이 달립니다.
이 광란의 질주는 절벽이 나타나서야 끝이 납니다. 이땐 이미 멈출 수도, 되돌아갈 수도 없지요. 결국 수많은 영양이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어야 끝나는 '스프링복의 비극'이 발생합니다. 스프링복이 이동하는 이유는 신선한 풀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본래의 목적, 지향점을 잊고 남들과 똑같이 행동한 결과 무리 전체가 광란의 질주로 치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스프링복처럼 살고 있지는 않나요? 아무 생각 없이 벼랑 끝까지 달리지는 않아도, 지향점 없이 남들과 똑같은 커리어 패스에 똑같은 생각, 똑같은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나요? 외국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면 여의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검은 승용차에 짙은 색 양복, 하얀 셔츠, 까만 구두까지 비슷한 옷차림으로 도대체 누가 누군지 알아볼 수 없어 당황할 때가 많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모난 돌이 정 맞는다’ ‘튀지 말라’ 등 왠지 모르게 남들과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터부시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개성 있고 다양성을 추구하기보다는 획일적이고 평균적인 삶을 당연시하는 사회였던 같아요. 직업 선택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나와 누구나 가고 싶은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이 일 순위였고, 아주 특출하거나 혹은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전문적인 일을 하는 것으로 여겼지요. 그러니 앞서 말한 거창고등학교의 직업 선택 십계명은 파격 중의 파격입니다.
평균적인 삶이 평균적인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습니다. 평균이란 무엇인가요? 여러 정의가 있지만 대체로 ‘중간’을 말합니다. 내 삶의 여러 부분이 이것도 중간, 저것도 중간이 되면 삶 자체가 중간이 되겠지만, 실제로는 모든 부분이 중간이어서 평균적인 삶을 살진 않습니다. 어느 것은 평균 이상, 어느 것은 평균 이하가 합해져서 평균이 되는 경우가 많지요.
인생은 공평하다고 그러잖아요. 부자인데 중병이 있다거나 가방끈은 짧아도 지혜롭다거나, 외모가 특출나지 않아도 착하고 멋진 배우자를 만난다거나 등등 들쭉날쭉한 삶의 부분 부분들이 모여서 평균에 수렴합니다. 내 삶의 모든 부분이 평균이어서 평균적으로 살지는 않는 거지요. 그래서 평균적인 삶이 목표이더라도 나만의 필살기, 누구도 넘보지 못하고 완전히 평균을 넘어서는 그 무엇을 가져야 합니다. 그게 있어야 평균 이하의 다른 부분을 메워 평균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게 경제력일 수도 학벌일 수도 있지만, ‘자상하고 따뜻한 마음씨’같이 완전히 비계량적인 것이 우리 삶을 평균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도 있어요. 혹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나 잘하는 것을 남들보다 더 많은 땀과 시간을 투입해 평균 이상으로 키워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직장의 시대는 끝나고 직업의 시대가 온다’라고 늘 말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직장의 시대는 끝난 지 오래고, 직업의 시대는 이미 훅 들어와 버렸습니다. ‘조용한 퇴직’의 시대에 직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정규직으로 입사하여 60세에 정년퇴직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시절은 그야말로 쌍팔년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나라 정규직 비율은 점점 줄어들어 60%가 채 안 됩니다. 이제 종신 고용, 평생, 직장이란 말을 버려야 할 때입니다. 적어도 공무원이 아니라면 각자도생을 꿈꿔야 합니다. 회사에 강력한 노조가 있더라도 임금피크제 등으로 사실상 과거처럼 정년 보장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인만의 스페셜티(Specialty)가 필요합니다.
하늘다람쥐를 아시나요? 하늘을 날아다니는 날다람쥐 종으로 우리나라 천연기념물이지요. 이런 날다람쥐를 두고 ‘오서오능’(鼯鼠五能)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당나라 유학자 공영달(孔穎達)은 "날 줄 알지만, 지붕은 못 넘고, 나무를 올라도 타고 넘지는 못한다. 수영은 해도 골짜기는 못 건너고, 굴을 파지만 제 몸은 못 감춘다. 달릴 줄 알아도 사람을 앞지를 수는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날다람쥐의 다섯 가지 재주는 이것저것을 해도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는 겁니다. 여러 가지를 조금씩 잘하는 것은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것보다 못하다는 말입니다. 팔방미인(八方美人)과 비슷한 말입니다. 그런데 팔방미인, 말이야 멋지지만 사실 어렵습니다. 불가능에 가깝지요. 오타니 정도는 되어야 야구계의 팔방미인이라고 부를 만하지요.
그래서 저는 ‘직업의 시대’에는 본인만의 스페셜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직업의 시대에는 생존 공식입니다. 이제는 날다람쥐처럼 살 수 없는 거지요.
<한경닷컴 The Moneyist> 이윤학 전 BNK 자산운용 대표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평상시에는 서로 의지하며 평화롭게 살아가지만, 무리가 점점 커지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수천 마리가 떼 지어 다니기 때문에 무리 후미에 있는 영양들은 신선한 풀을 먹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후미에 있는 스프링복들은 신선한 풀을 먹기 위해 앞으로 좀 더 빨리 이동하기 때문에 선두 영양들이 걷는 속도도 점차 빨라지기 시작합니다. 결국 무리의 전체 이동에 가속이 붙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영양들이 뛰기 시작해, 무리 전체가 미친 듯이 달립니다.
이 광란의 질주는 절벽이 나타나서야 끝이 납니다. 이땐 이미 멈출 수도, 되돌아갈 수도 없지요. 결국 수많은 영양이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어야 끝나는 '스프링복의 비극'이 발생합니다. 스프링복이 이동하는 이유는 신선한 풀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본래의 목적, 지향점을 잊고 남들과 똑같이 행동한 결과 무리 전체가 광란의 질주로 치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스프링복처럼 살고 있지는 않나요? 아무 생각 없이 벼랑 끝까지 달리지는 않아도, 지향점 없이 남들과 똑같은 커리어 패스에 똑같은 생각, 똑같은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나요? 외국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면 여의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검은 승용차에 짙은 색 양복, 하얀 셔츠, 까만 구두까지 비슷한 옷차림으로 도대체 누가 누군지 알아볼 수 없어 당황할 때가 많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모난 돌이 정 맞는다’ ‘튀지 말라’ 등 왠지 모르게 남들과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터부시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개성 있고 다양성을 추구하기보다는 획일적이고 평균적인 삶을 당연시하는 사회였던 같아요. 직업 선택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나와 누구나 가고 싶은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이 일 순위였고, 아주 특출하거나 혹은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전문적인 일을 하는 것으로 여겼지요. 그러니 앞서 말한 거창고등학교의 직업 선택 십계명은 파격 중의 파격입니다.
평균적인 삶이 평균적인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습니다. 평균이란 무엇인가요? 여러 정의가 있지만 대체로 ‘중간’을 말합니다. 내 삶의 여러 부분이 이것도 중간, 저것도 중간이 되면 삶 자체가 중간이 되겠지만, 실제로는 모든 부분이 중간이어서 평균적인 삶을 살진 않습니다. 어느 것은 평균 이상, 어느 것은 평균 이하가 합해져서 평균이 되는 경우가 많지요.
인생은 공평하다고 그러잖아요. 부자인데 중병이 있다거나 가방끈은 짧아도 지혜롭다거나, 외모가 특출나지 않아도 착하고 멋진 배우자를 만난다거나 등등 들쭉날쭉한 삶의 부분 부분들이 모여서 평균에 수렴합니다. 내 삶의 모든 부분이 평균이어서 평균적으로 살지는 않는 거지요. 그래서 평균적인 삶이 목표이더라도 나만의 필살기, 누구도 넘보지 못하고 완전히 평균을 넘어서는 그 무엇을 가져야 합니다. 그게 있어야 평균 이하의 다른 부분을 메워 평균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게 경제력일 수도 학벌일 수도 있지만, ‘자상하고 따뜻한 마음씨’같이 완전히 비계량적인 것이 우리 삶을 평균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도 있어요. 혹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나 잘하는 것을 남들보다 더 많은 땀과 시간을 투입해 평균 이상으로 키워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직장의 시대는 끝나고 직업의 시대가 온다’라고 늘 말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직장의 시대는 끝난 지 오래고, 직업의 시대는 이미 훅 들어와 버렸습니다. ‘조용한 퇴직’의 시대에 직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정규직으로 입사하여 60세에 정년퇴직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시절은 그야말로 쌍팔년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나라 정규직 비율은 점점 줄어들어 60%가 채 안 됩니다. 이제 종신 고용, 평생, 직장이란 말을 버려야 할 때입니다. 적어도 공무원이 아니라면 각자도생을 꿈꿔야 합니다. 회사에 강력한 노조가 있더라도 임금피크제 등으로 사실상 과거처럼 정년 보장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인만의 스페셜티(Specialty)가 필요합니다.
하늘다람쥐를 아시나요? 하늘을 날아다니는 날다람쥐 종으로 우리나라 천연기념물이지요. 이런 날다람쥐를 두고 ‘오서오능’(鼯鼠五能)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당나라 유학자 공영달(孔穎達)은 "날 줄 알지만, 지붕은 못 넘고, 나무를 올라도 타고 넘지는 못한다. 수영은 해도 골짜기는 못 건너고, 굴을 파지만 제 몸은 못 감춘다. 달릴 줄 알아도 사람을 앞지를 수는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날다람쥐의 다섯 가지 재주는 이것저것을 해도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는 겁니다. 여러 가지를 조금씩 잘하는 것은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것보다 못하다는 말입니다. 팔방미인(八方美人)과 비슷한 말입니다. 그런데 팔방미인, 말이야 멋지지만 사실 어렵습니다. 불가능에 가깝지요. 오타니 정도는 되어야 야구계의 팔방미인이라고 부를 만하지요.
그래서 저는 ‘직업의 시대’에는 본인만의 스페셜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직업의 시대에는 생존 공식입니다. 이제는 날다람쥐처럼 살 수 없는 거지요.
<한경닷컴 The Moneyist> 이윤학 전 BNK 자산운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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