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첼리스트 최하영이 한경 아르떼필하모닉과 루토스와프스키 첼로협주곡을 협연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지난 19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첼리스트 최하영이 한경 아르떼필하모닉과 루토스와프스키 첼로협주곡을 협연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이병욱이 지휘하는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은 지난 19일 찰스 아이브스의 ‘대답 없는 질문’으로 공연의 문을 열었다.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 오른쪽 상단 오르간 옆에 있는 트럼펫과 무대 위 오케스트라의 플루트 4대, 현악기들이 어우러진 이 곡은 이날 모든 프로그램에 드리운 ‘소통의 단절과 불안’이라는 키워드를 짧지만 뚜렷하게 관객에게 제시했다.

최하영이 첼로를 들고 등장했다. 모호한 분위기가 감돌던 무대가 화사해졌다. 그의 장기인 루토스와프스키 첼로협주곡은 2022년 퀸엘리자베스콩쿠르 결선에서 기립박수와 우승을 가져다준 곡이다. 최하영은 이 곡을 연주한 경험을 회상하며 “원맨쇼 하는 배우가 돼야 했다. 마디마디 캐릭터가 계속 바뀌기에 표현의 디테일도 중요하지만 큰 그림을 연주해야 한다. 곡 속의 억압, 분쟁, 투쟁, 대화 등을 상상하고 첼로로 전달하려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말처럼 곡은 모노드라마 같은 첼로의 독백으로 시작했다. 단속적인 운궁 뒤에 피에로 같은 다양한 표정으로 부드러움과 강렬함을 대비시켰다. 첼로는 삐친 듯 뾰로통함과 열정, 히스테리와 탄식, 투쟁과 체념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규칙적으로 신경질적인 운궁에 이어 드디어 오케스트라 금관군이 합세했다. 첼로에 드리운 그림자만큼 트럼펫이 채우는 듯했다. 첼로와 오케스트라의 문답이 계속되며 아이브스 작품과의 연속성이 느껴졌다.

무녀를 연상시키는 신들린 연주였다. 트롬본이 울부짖고 무궁동적인 첼로의 속주에 이어 잠자리의 날갯짓 같은 규칙적이고 열띤 연주가 이어졌다. 스산한 바람이 부는 듯한 현악군 연주 사이에 홀로 선 첼로가 몸부림쳤다. 점점 빨라지는 첼로와 현악에 이어 관악군이 끔찍한 전장의 한가운데 같은 풍경을 그렸다. 첼로와 관현악의 문답이 이어질 때 서슬 퍼런 날카로운 긴장감이 감돌았다. 피날레에서 첫 독백 부분을 단말마처럼 외치며 곡이 끝나자 관객이 보낸 따스한 박수는 ‘익숙한 현실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으로 이어졌다.

지휘자 이병욱의 카리스마는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에서 본격적으로 발휘됐다. 청중은 첼로와 더블베이스 저음의 질문과 바이올린 고음의 응답이 자아내는 불안 속으로 곧장 빨려들어갔다. 바이올린군이 차갑게 불어넣는 냉기 위에 목관과 금관이 열띤 상황으로 고조시켰다. 바이올린군의 정연함과 첼로의 중후함이 맞서고 피아노와 음울한 금관군이 플루트에서 점화되며 느긋하던 정조를 잰걸음으로 팽팽하게 각성시켰다. 관과 현의 날이 서고 폭발하며 최고 음량으로 부풀어 올랐다. 다만 호른과 플루트의 선율이 나오는 곳에서 호른의 음색이 어색했다. 악장의 바이올린 솔로 부분은 더 신랄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3악장은 처절한 비애감을 잘 표현했다. 플루트와 하프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인 분위기와 그로 인한 불안감을 잘 표현했다. 슬픔의 한 줄기 개울은 강이 되고, 범람해 바다로 갔다. 이병욱은 진득하게 감정의 진창 같은 공간을 만들었다. 실로폰과 현의 트레몰로 연주는 불안감을 최고조로 이끌었고 첼로군은 회한을 풀어냈다. 현악과 하프는 수그린 채 엎드려 울먹이는 듯했다.

4악장은 무자비할 정도의 큰 음량으로 다가왔다. 정신을 못 차릴 정도의 질주는 러시아적인 묵직함과 일사불란함을 띠고 있었다. 깨질 듯한 실로폰과 터질듯한 금관에 이어 심벌즈와 팀파니, 스네어드럼, 큰 북이 화려하게 곡을 마칠 때 청중의 환호도 우렁찼다. 성공적인 연주일수록 뒷맛은 씁쓸한 곡이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작품으로 소련 당국에 잘 보이는 데 성공했지만, 거기엔 억압된 춤과 자유가 일그러진 표정을 하고 있다.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