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항암 신약 ‘렉라자’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아 세계 시장에 출시되면서 그 뒤를 이을 국산 항암제 개발에 탄력이 붙었다. 렉라자 등 기존 표적항암제의 내성을 잡을 수 있는 차세대 항암제 시장 선점을 위해서다. 개발 속도에선 국내 바이오기업이 글로벌 선두권으로 평가받는다. 제이인츠바이오의 임상 개발 속도가 가장 빠르고 그 뒤를 테라펙스와 보로노이 등이 바짝 뒤쫓고 있다.
차세대 폐암약 경쟁…K바이오, 한발 앞섰다

○임상 속도 빠른 K바이오

20일 업계에 따르면 제이인츠바이오와 테라펙스, 보로노이는 폐암 치료제 시장 강자인 타그리소(성분명 오시머티닙)의 내성을 극복하기 위한 차세대 신약 임상 개발이 한창이다. 타그리소는 특정 유전자(EGFR) 돌연변이가 있는 환자에게 가장 먼저 쓰는 1차 치료제로 지난해 8조689억원 매출을 낸 블록버스터 의약품이다. 하지만 치료받은 환자 중 15%에서 내성이 생겨 더 이상 약이 듣지 않는 한계점이 드러났다.

조병철 연세암병원 폐암센터장은 “과거엔 국내 기업보다 더 빨리 차세대 신약을 개발하려는 해외 업체가 있었다”면서도 “타그리소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해 개발 방향을 잘못 설정한 기업들이 먼저 우후죽순처럼 떨어져나갔다”고 말했다.

개발 속도가 가장 빠른 제이인츠바이오는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 진행 중인 임상 1a상을 연내 마친다는 계획이다.

이 회사가 임상 개발에서 선두에 설 수 있었던 이유는 타그리소의 경쟁약 렉라자의 임상을 주도했던 조 센터장이 과학고문으로 참여해 임상 전략을 짜고 환자를 모으는 데 힘을 썼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조 센터장은 “제이인츠의 후보물질은 타그리소에 비해 더 적은 용량으로 암세포를 거의 다(90%) 죽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제이인츠바이오는 연내로 임상 1a상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그래디언트의 신약 개발 자회사인 테라펙스도 임상 1a상이 6부 능선을 넘었다. 저용량 투약을 마치고 고용량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임상 예상 종료 시점은 내년 말이다.

보로노이는 개발 중인 신약 후보물질이 뇌에 잘 전달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폐암 환자의 40%에서 뇌전이가 관찰된다. 하지만 저용량 투약만 마쳐 임상 속도는 상대적으로 뒤처졌다.

○보로노이 속도전 위해 초강수

이 때문에 보로노이는 최근 임상 속도를 높이기 위해 ‘강수’를 뒀다. 지난 7월 미국 임상 1상을 포기한 데 이어 최근엔 국내와 대만에서 진행하는 임상 1a상 참여 암 환자를 21명에서 50명으로 두 배 이상으로 늘렸다. FDA가 용량 증량을 촘촘히 할 것을 권고하자 임상 개발 속도가 더뎌질 것을 염려한 보로노이는 미국 임상을 자진 취하했다. 보로노이 관계자는 “안전성에 이미 자신이 있는 데다 최대한 많은 환자에게서 의미 있는 효능 데이터를 확보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보로노이가 둔 강수에 업계도 술렁이고 있다. 미국 임상을 자진 취하한 만큼 미국 임상 2상에 진입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지 않겠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과 대만에서 임상을 수행해 아시아인 이외 인종에 대한 데이터가 부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쟁사인 제이인츠바이오와 테라펙스는 모두 미국에서 임상 1상을 하고 있다.

미국 기업 중엔 블랙다이아몬드 테라퓨틱스가 임상 1상 중간결과를 공개하며 차세대 표적항암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환자 수가 40명으로 비교적 적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