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리뷰] 밤도, 아침도 아니지만 해는 떠올라…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새벽의 모든'

환자는 외롭다. 통증이 온몸을 범람할 때, 그래서 육체에 대한 통제력을 완전히 잃었다고 느낄 때, 사실 내 인생도 이제는 더 이상 내 것이라고 부를 수 없는 무엇이 된 게 아닌가 생각이 삐뚤어진 방향으로만 흐를 때. 주변의 다정한 위로는 귀에 들리지 않고 마음은 한없이 작아진다.
영화 '새벽의 모든'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새벽의 모든'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불편한 것은 또 있다. 온전히 주관적이고 절대적인 고통을 타인에게 언어로 설명해야 한다는 것. 예시로 나열되는 통증의 묘사는 대부분의 사람이 실제로 겪어봤을 리 만무한 것들이다. 칼로 찌르는 듯, 저미는 듯, 끊어진 듯…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통증의 언어적 분류 앞에서 환자는 또 고독해진다. 차라리 뚜렷한 병명과 치료법이 있으면 상대적으로 순조로운 설명이 이어질 수도 있겠다. 문제는 심인성 질병(환경·심리적 요인에 의해서 생기는 정신장애 및 신체장애). 아프다고 말하는 순간에도 전부 거짓말 같고 변명 같다. 고통은 이렇게 또렷하고 선명한데.
영화 '새벽의 모든'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새벽의 모든'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그 남자와 그 여자, 아프다”

여자는 매달 PMS에 시달린다. 월경 증후군의 곤란한 지점은 이것이 지극히 내밀한 사생활의 주기적 변화라는 것. 타인에게 그 통증과 미친 듯 널뛰는 감정에 대해 설명해 봤자 소용없다. 타자의 고통과 불안은 언제나 상상력의 범위 밖에 있다. 남자는 공황장애에 시달린다. 그의 통제 불가능한 불안과 공포 역시 온전히 그 자신만의 것이다.

일찌감치 자의 병명과 증상을 설명하기를, 누군가에게 이해받기를 포기한 이들은 대신 독을 피우며 혼자 각자의 시간을 견딘다. 그런데 이들이 한 회사에서 만난다. 예상되는 전개가 있다. 결핍을 가진 두 사람이 서로 의지하며 미운 정 고운 정 골고루 다 든 다음 해피엔딩으로 돌진하는 로맨스. 그러나 미야케 쇼는 뻔한 길을 가지 않는다.
영화 '새벽의 모든'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새벽의 모든'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세오 마이코가 쓴 동명의 원작 소설은 20대 여자와 남자의 1인칭 시점을 번갈아 오간다. 비밀로 삼았던 자신의 질병을 밝히고, 증상을 감별하고, 위기에 대처하고, 필요한 순간에 서로에게 배려가 되어주면서 쌓이는 친밀감과 연대 의식. 그러나 두 사람은 이것을 애정과 헛갈리지 않는다. 내심 우정과도 다른 것이라고 각자 정확한 선을 긋는다. 미야케 쇼의 전작들과 나란히 놓을 수 있는 지점이다.

베를린영화제에 연달아 초청된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2020),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2023)에서도 미야케 쇼의 16mm 카메라는 자연광 아래 펼쳐지는 젊은이들의 고민과 방황을 따라가면서도 허겁지겁 모든 것을 로맨스로 봉합하러 들지 않았다. 대신 찬찬히 감정을 헤아리고, 진심을 가늠하고, 변화를 다짐하는 이들의 계절을 조용히 뒤밟는다. 미야케 쇼의 세상은 고통과 갈등의 해답을 사랑으로 얼버무리지 않는다.
영화 '새벽의 모든'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새벽의 모든'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새벽의 모든>에 등장하는 사람들이다. 모임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회사의 동료들도 모두 너나없이 너그럽다. 가까운 이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경험한 적 있는 이들은 타인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는 법을 안다.

변덕과 불안, 충동과 분노가 어떤 징후는 아닐지, 무심히 지나쳐버렸던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그들은 후지사와와 야마조에를 꼼꼼히 챙기고, 실수를 너그럽게 넘기고, 조심스러운 얼굴로 뒷모습을 오래 지켜본다. 그저 밝고 건강한 서로의 안녕을 몰래 기원할 뿐이다. 원작 소설에는 없었던 미야케 쇼의 따뜻함과 다정함이다.

원작 소설에는 없었던 것이 또 있다. 두 사람의 직장인 ‘쿠리타 과학’이다. 미야케 쇼는 망해가는 장난감 회사를 통해 서사에 우주를 품는다. 우주를 상상하는 일은 도움이 된다. 별을 바라보고 우주를 가늠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본 적 없는 거대한 시간을 상상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삶이 얼마나 찰나인지 깨닫는 일이다. 지구가 움직이는 한, 모든 것은 변한다. 그러니 고통에 압도되는 순간에는 우주를 떠올리자. 우주를 떠올리는 일은 어렵지 않다. 해가 지고 밤이 되는 일, 계절이 바뀌는 일, 우리의 하루, 모든 것이 우주다. 다 우주다.

['새벽의 모든' 메인 예고편]


옥미나 영화평론가
영화 '새벽의 모든' 포스터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새벽의 모든' 포스터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 '새벽의 모든'은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국내에서 소개된 바 있다.
▶ 2016년 일본 서점 대상을 받은 세오 마이코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 9월 18일 개봉해 CGV 아트하우스를 비롯한 전국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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