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PRO] 개미들 뒤통수 치는 상장사들…주주환원책 뒤에 숨은 '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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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L홀딩스, 주주가치 내세웠지만…
알고 보니 경영권 강화

주주 반발에 5년간 의결권 행사 안 해
"재단 무상 증여 철회해라"
거래소 공시 위반 아니라고 판단

이수페타시스 사태, 올빼미 공시도 기승
밸류업 정책에 찬물 끼얹는단 지적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애당초 주주가치 제고라는 취득 목적과 달리 자사주를 경영권 강화에 활용하는 등 일부 상장사의 행태가 국내 증시 투자 매력을 떨어뜨리고 있단 지적이 나온다.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HL홀딩스는 지난 11일 이사회를 열고 주주제고 가치 목적으로 취득한 자사주 중 86%를 재단법인에 무상 증여하기로 결의했다. 이는 전날 종가 기준 약 161억원 규모로, 총발행주식수의 4.76%에 해당한다. HL홀딩스는 자사주 취득 당시 주주가치를 내세웠지만 자사주 소각은 16%에 불과했다.

자사주 취득 목적과 다르게 활용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재단법인으로 넘기면 의결권이 되살아난다. 현재 HL홀딩스의 최대주주인 정몽원 회장의 지분율은 특수관계인 포함 31.58%다. 이번 무상 증여 결정으로 정 회장 측은 추가적인 우호 지분을 확보하게 된다.

2대주주인 VIP자산운용(10.41%)을 비롯해 베어링자산운용(보유지분 6.59%) 등 기관투자자들, 그리고 개인투자자들은 이 결정에 반발하고 나섰다.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결정이란 이유에서다. 나아가 자사주 취득 당시 주주가치 제고 목적과도 다르다고 지적하고 있다. 반발이 거세지자 HL홀딩스는 5년간 의결권을 행하지 않겠다며 주주 달래기에 나섰다.

VIP자산운용은 재단의 의결권 행사 여부와 관계없이 자사주 무상 출연은 철회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는 "무상 증여는 당연히 철회돼야 한다"면서 "2대주주로서 우려되는 바를 담아 사측에 송부했고 답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올빼미 공시도 여전

이번 HL홀딩스 사례 외에도 휴일을 앞두거나 늦은 밤 슬그머니 악재성 공시를 내놓는 이른바 '올빼미 공시'도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이수페타시스는 지난 8일 정규장 마감이 한참 지난 오후 5시47분부터 6시49분까지 5500억원 규모 유상증자 등 악재성 공시를 쏟아냈다. 이미 당일 오전에 결정된 사안이었지만 악재성 공시를 뒤늦게 공개한 것이다. 이수페타시스 주가는 올빼미 공시 직후 전날까지 32% 넘게 하락했다.

주식 투자자들 사이에서 ’기업 공시를 믿지 못하겠다‘는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올빼미 공시는 한국거래소가 명단을 공개하는 것 이외에 제재 수단이 없어 투자자들이 주의 깊게 살피는 수밖에 없다. HL홀딩스 자사주 사례와 관련해선 자사주 일부(14%)를 소각한 만큼 공시 위반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만약 자사주 전량을 취득 목적과 다르게 재단에 무상 증여하게 되면 공시 위반에 해당될 수 있으나 HL홀딩스가 자사주 일부를 소각한 만큼 공시 위반까진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밸류업 노력에 찬물

최근 정부가 저평가 해소를 위한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정책을 추진하고는 있지만 공시 제도를 악용하는 일부 상장사로 인해 투자자의 신뢰도는 갈수록 추락하고 있단 지적이 나온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HL홀딩스나 이수페타시스 같은 행태가 지속되면 국내 주식시장의 매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의 밸류업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류은혁 기자 ehry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