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취업사기 피해자 서모 씨(29)가 캄보디아 프놈펜에 입국했을 당시 그를 인도한 조직원(좌), 서 씨가 실제로 감금돼 일하던 사무실의 모습(우). /사진=독자 제공
캄보디아 취업사기 피해자 서모 씨(29)가 캄보디아 프놈펜에 입국했을 당시 그를 인도한 조직원(좌), 서 씨가 실제로 감금돼 일하던 사무실의 모습(우). /사진=독자 제공
"일하러 간 타지에서 26일 동안 수갑을 찬 채 침대에 묶여 전기 고문과 폭행을 당했습니다."

캄보디아 취업 사기 피해자 서모 씨(29)는 "날 죽음의 문턱까지 몰아넣은 사람들이 꼭 법의 심판을 받았으면 좋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캄보디아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취업 사기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취업사이트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특별한 기술이나 자격증이 없어도 고소득을 보장한다'며 한국인들을 유인한 뒤, 강제로 주식 리딩방이나 보이스피싱 등 불법적인 일을 시키는 방식이다. 이들 조직이 관리하는 범죄단지에 감금돼 고문까지 당하는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대사관에 접수된 한국인 취업 사기 피해자는 100여명 수준이다. 대사관 관계자는 "여권을 빼앗기고 건물 출입을 저지당하는 등 사실상 감금 상태에서 폭행당하고 납치되는 사례도 발생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감금돼 전기 고문…대사관 "경찰한테 도움 요청해라"

서 씨의 악몽은 지난해 10월, 오랜 친구로부터 "텔레마케팅 업체에서 번역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제안을 들었던 순간에서 시작됐다. 월급 5000달러, 자유로운 생활, 독신 숙소라는 조건이 매력적이었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꾼 서 씨는 10월 27일 캄보디아 프놈펜행 비행기에 올랐다.

서 씨는 프놈펜에서 남쪽으로 약 90㎞ 떨어진 베트남 국경 근처의 작은 마을 차이톰(Chrey Thum)에 도착했다. 높은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건물이었다. 처음부터 이상한 낌새가 들었다. 독신 숙소가 아닌 합숙 생활, 총기를 소지한 직원들, 삼엄한 경비. 맡은 업무는 한국인에게 전화를 걸어 주식 리딩방에 가입시키고 고객에게 카카오톡 기프티콘을 보내는 일이었다. 찜찜함이 남았지만 "불법적인 일이 아니고 위험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친구의 말에 의심을 거뒀다.

한 달 정도 일을 하던 중, 친구가 고객에게서 받은 금액을 속이려다 발각되는 일이 생겼다. 중국인 조직원들은 서 씨와 친구를 끌고 가 전기 충격기와 총구를 들이밀며 "감히 돈을 빼돌릴 생각을 하느냐"고 다그쳤다. '죄송하다'며 빌었던 덕에 그날은 넘어갔지만, 서 씨는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지만, 조직원들은 기다리라는 말만 하며 그를 보내주지 않았다.

결국 서 씨는 11월 15일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차이톰은 프놈펜에서 멀고 중국 사람들도 많아서 대사관 직원들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며 "프놈펜까지 직접 와야 도와줄 수 있다"는 말뿐이었다. 그러던 중 서 씨의 탈출 계획이 조직원들에게 발각됐고, 12월 2일부터 감금이 시작됐다.
서 씨가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 관계자와 나눈 대화 내용(좌), 한인회 관계자랑 나눈 대화 내용(우) / 사진=독자 제공
서 씨가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 관계자와 나눈 대화 내용(좌), 한인회 관계자랑 나눈 대화 내용(우) / 사진=독자 제공
감금 첫날부터 입이 테이프로 막히고 수갑이 채워진 채 전기 충격기로 고문을 당했다. 기절했다 깨어나 보니 수갑으로 철제 침대에 결박돼 있었다. 휴대전화를 빼앗겨 도움을 청할 방법도 없었다. '제발 살려달라'고 울며 빌어도 소용없었다. 중국인 조직의 '따거(사장)'는 "윤석열 대통령이 와도 널 못 꺼내 준다"며 "여기서 조용히 일하지 않으면 마약을 먹이고 죽여서 앞에 있는 강에 던져주겠다"며 협박했다. 매일 구타당해 다리는 온통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같은 곳에서 일하던 한국인 조직원들도 고문에 가담했다. 서 씨는 "그때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며 "같은 한국인 내게 주먹을 휘두르고 전기고문을 하는 현실이 너무 참담했다"며 당시의 공포를 떠올렸다. 서 씨의 법률대리인 주영글 법무법인 강남 변호사에 따르면 서 씨의 고문에 가담한 한국인 조직원은 광주 충장OB파 소속 차모 씨, 정모 씨, 이모 씨 등 총 15명으로 파악됐다.

서 씨는 친구가 한 중국인 조직원에게 돈을 몰래 건네준 덕분에 풀려날 수 있었다. 감금된 지 26일 만이었다. 옷 한 벌도 챙기지 못한 그는 한밤중 택시를 불러 한인회 관계자가 있는 시아누크빌로 도망쳤다. 이틀 동안 한 한인교회에 몸을 숨겼고, 캄보디아 한인회장의 도움으로 올해 1월 4일 겨우 캄보디아를 떠날 수 있었다.

○폭증하는 캄보디아 납치·감금 피해자

캄보디아에서의 납치·감금 사건은 서 씨만의 일이 아니다. 김건 국민의힘 의원이 외교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1건이었던 한국인 납치·감금 사건은 2023년 21건, 올해 상반기에는 76건으로 폭증했다. 캄보디아 현지 교민들은 "신고조차 하지 못한 사람들을 포함하면 피해자는 수백 명에 달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모 씨(36) 역시 네이버 밴드에서 일용직 노동자 모집 공고를 보고 캄보디아로 떠났다가 감금된 사례다. 1년 내내 날씨가 온화하고 한국인 노동자에 대한 대우가 좋다는 말에 떠났지만, 도착한 곳은 조직적으로 로맨스스캠 사기를 벌이는 범죄 단지였다. 도착하자마자 휴대전화를 포함한 모든 짐을 빼앗겼고, 그의 통장은 범죄 피해금을 송금받는 용도로 사용됐다.

이같이 캄보디아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취업 사기가 횡행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분석된다. 현지 범죄 단지에서 보이스피싱 등 사기를 칠 인력과 자금을 세탁할 대포통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범죄조직과 수사기관 간 유착이 심해 많은 사기조직이 모여들고 있는 곳"이라며 "이들이 한국을 범행 타깃으로 노리기 때문에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과 입출금이 가능한 한국인 명의 통장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결백 입증 어려워 귀국 망설이기까지

피해자들이 범죄에 연루된 정황 때문에 처벌이 두려워 신고를 주저하거나 귀국을 망설인다는 문제도 있다. 감금 일주일 만에 풀려나 지난 12일 한국으로 돌아온 김 씨는 "중국인 조직원들이 내 휴대전화를 초기화시키는 바람에 아무 증거가 남지 않았다"며 "내가 로맨스스캠 가담자가 아니라는 걸 어떻게 증명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피해자인 30대 양모 씨도 비슷한 상황이다. 그는 '법인 사업자등록증만 있으면 투자와 생활용품 수출 사업을 도와주겠다'는 취업 알선자의 말에 지난 9월 캄보디아에 입국했지만, 도착하자마자 통장을 넘기라는 강요를 받았다. 거부하니 중국인 조직원이 머리에 총을 겨누며 협박했고, 결국 양 씨는 살아남기 위해 조직원들의 요구에 협조할 수밖에 없었다. 양 씨는 자신 명의의 계좌가 막히고 나서 풀려났지만, 한국에 돌아가면 감옥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여전히 캄보디아에 머물고 있다.

피해자의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PTSD) 문제도 심각하다. 서 씨는 현재까지도 캄보디아에서 만난 한국인 조직원들로부터 '찾아서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받고 있다. 매일 공황장애, 우울증 등 17종의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다. 그는 "보복이 두렵지만 나의 억울함을 알리고 싶어서 용기를 냈다"며 "다시는 나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캄보디아 정부와의 국제 공조 체계를 강화해 한국인을 범행 대상으로 삼는 현지 범죄조직 단속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캄보디아 정부와의 외교적 협력을 강화해 현지 범죄조직 검거와 피해자 구조를 위한 실질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피해자가 형사 처벌의 두려움 없이 신고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법적 보호 장치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다빈 기자 davin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