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인문학이 경영자가 갖춰야 할 필수 덕목으로 꼽힌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리버럴 아트’(liberal arts)의 쓸모를 강조한 이후 성공한 기업인을 위한 단순한 장식품이나 지적 허영의 대상에서 벗어난 모습이다. 하지만 한 꺼풀 벗겨내면 여전히 인문학으로 대표되는 지식인과 경영자 사이에는 깊이 팬 해묵은 인식단절의 골이 여전하다.
인문학은 어떻게 'AI 시대의 경영 길잡이'가 되나 [서평]
<AI 앞에선 경영자의 선택 리버럴 아트>는 흔히 문학, 역사, 철학을 통칭하는 인문학, 리버럴 아트를 몸에 배게 익히는 것이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훌륭한 경영자의 필수 덕목으로 우뚝 섰음을 선언하는 책이다. 그동안 지식인(인문학)과 경영자(실업)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탓에 때로는 상대를 과대평가하고, 때로는 멸시하고 폄하해 왔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저자는 경영 현장을 인문학 이상을 실현할 공간으로 보고 자유, 진리, 존재, 정의, 예술과 같은 키워드로 경영 난제를 풀어나가고자 한다.

인문학적 지식과 시각은 쓸모없는 장식품이 아니다. 비즈니스맨은 바쁘다는 뜻의 영어 단어 ‘비지(busy)’에서 파생된 명칭이지만 경영자가 바쁘다는 핑계로 사색과 성찰의 끈을 놓치는 순간, 사업은 방향을 잃고 성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일갈한다,

책은 특히 기업경영에 격변을 초래하고 있는 AI의 본질이 무엇인지 밝히는 데 천착한다. 그리고 AI의 산출물이 아무리 완성된 것으로 보여도, 그 본질은 제조업의 원재료와 다를 바 없다고 지적한다. 또 경영자는 AI가 내놓은 산출물에 속지 않아야 하며 판단은 어디까지나 경영자의 몫이라고 단언한다.

AI의 본질을 탐구하는 과정은 일종의 철학이다. 모든 지식은 생멸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태생적으로 오류를 지니고 있다. 그런 과거 지식에 기반한 데이터는 그 자체로는 ‘죽어있는 지식’이다. 하지만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던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처럼 지식의 근본 원리를 이해하고 성찰하는 경영자라면 ‘죽은 데이터’의 굴레에서 벗어나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성과를 낼 수 있다. AI가 내뱉은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방대한 결과물 앞에 길잃은 수많은 이들에게 정신이 번쩍 드는 일침이 아닐 수 없다.
인문학은 어떻게 'AI 시대의 경영 길잡이'가 되나 [서평]
증권 신용 평가·경영 컨설팅 등의 일을 하다가 경영·경제·재무와 인문학 간 융합을 시도해온 저자는 AI에 예속되지 않기 위해서는 AI를 다루는 사람의 지식을 ‘더 높은 차원’으로 향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행히 저자가 제시한 방도가 ‘쉬운 길’은 아니지만 끝내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할 만큼 험로로도 보이지 않는다.

김동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