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희 미래변호사 회장이 20일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한중 사무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형택 기자
안병희 미래변호사 회장이 20일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한중 사무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형택 기자
“저성장 경제로 접어들면서 송무나 자문 시장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인공지능(AI) 기술이 도입된 새로운 법률서비스 등에 징계의 칼날만 들이댈 것이 아니라 이를 활용한 시장 확대 방안을 고민해야 합니다. 독일과 같이 법률보험을 활성화해 적극적으로 시장을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2년 만에 대한변호사협회(변협) 회장 선거에 재도전하는 안병희 변호사(62·군법무관 7회·한국미래변호사회장)는 20일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한중 사무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이런 각오를 밝혔다. 작년 1월 치러진 52대 회장 선거에서 135표 차로 현 김영훈 회장(사법연수원 27기)에 석패한 안 변호사는 53대 회장 선거에 연이어 출마를 선언했다.

현 집행부는 온라인 법률 플랫폼 ‘로톡’, 법무법인 대륙아주가 출시한 법률상담 챗봇 ‘AI대륙아주’ 등 신기술이 적용된 서비스가 변호사의 직역을 침해한다는 판단하에 징계 등으로 대응해 왔다. 안 변호사는 이에 대해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조치로 변협 회원 간 갈등과 분열만을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법원, 검찰, 대형 로펌 할 것 없이 AI를 도입해 업무 혁신을 도모하고 있는 상황에 변협만 ‘쇄국’에 가까운 기조를 유지해 왔다”며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규제 일변도로는 외국 리걸테크 기업에 (우리 법조 시장이) 잠식돼버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병희 미래변호사 회장이 20일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한중 사무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형택 기자
안병희 미래변호사 회장이 20일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한중 사무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형택 기자
안 변호사는 “현재 변호사들 사이에선 생성형 AI가 변호사 업무에 어떤 변화를 줄지 배우고자 하는 니즈(needs)가 정말 큰데, 기회가 전무한 상황”이라며 “변호사들이 신기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면 언제 (변협) 징계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살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30여 년 전 개인용컴퓨터(PC)가 보급됐을 때 컴퓨터를 배웠다면, 이젠 AI를 배워야 하는 시대다. 변호사부터 AI를 ‘위기이자 기회’로 여기고 배워야 진정한 직역 수호의 길도 고민할 수 있다”며 “(회장으로 당선된다면) 회원 전원을 대상으로 AI 법률서비스에 대한 무상 교육을 시행하고 변호사 광고 규정을 완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로스쿨 제도 도입 이후 매년 신규 변호사가 1770명씩 배출되고 있는 가운데 법률시장은 정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안 변호사의 문제의식이다. 그는 “회원 수는 늘어나는데 송무·자문 시장은 제자리걸음이어서 변호사들의 사정이 너무 어렵다. ‘배고픈 변호사는 굶주린 사자보다 무섭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했다.

안 변호사는 “독일(40조원), 프랑스(70조원)에 버금가도록 파이 자체를 키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법률시장 규모는 8조원가량으로 추정된다. 독일 법률시장을 키운 ‘법률보험’이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자동차보험이나 상해보험 등 기존 보험 상품에 민사소송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법률 비용까지 보장해주는 서비스를 포함시키는 방식이다. 안 변호사는 “1심 본안 사건에서 ‘나홀로 소송’이 차지하는 비율이 절반가량인 점을 볼 때 한국에서도 법률보험에 대한 수요는 충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 변호사는 이밖에 △외감법인에 대한 법무 감사 △변호인과 의뢰인 간 비밀유지권(ACP) 보장 △법률구조·국선변호 기능 강화를 위한 사법지원센터 출범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특히 사법지원 관련, 그는 “변호사 수가 적을 때 사회경제적 약자의 법률서비스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대한법률구조공단이 만들어졌는데, 변호사 수가 늘어난 현재에는 공단의 존립 의미가 사라진 셈”이라며 “‘법테라스’라는 독립된 조직에서 국선변호인을 선정하는 일본처럼 국선변호도 변협이 주축이 돼 운영해야 변호사와 국민 모두의 권익을 높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병희 미래변호사 회장이 20일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한중 사무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형택 기자
안병희 미래변호사 회장이 20일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한중 사무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형택 기자
로스쿨 교육 정상화 역시 안 변호사가 중대 과제로 꼽고 있는 사안이다. 그는 “의대 정원 문제로 온 나라가 홍역을 치르고 있는 가운데, 법조 인력 문제도 나라 장래가 달린 중요한 문제”라며 “현재 로스쿨은 원래 설립 목적과 달리 ‘변시(변호사 시험) 학원’처럼 돼 버렸다. 일부 로스쿨을 통폐합하고 결원보충제를 폐지해 변호사 수를 단계적으로 줄여나가는 노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법조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는 이른바 ‘네트워크 로펌’과 관련, 안 변호사는 “현 집행부는 로톡에 100만~200만원 지불하고 광고하는 것은 단속하면서 일 년에 100억~200억원을 광고비로 쓰는 네트워크 로펌은 무방비로 방치했고, 법률시장이 거대 자본에 종속될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며 “매출액 대비 광고비 상한제를 도입하고, 허위·과장 광고에 대한 심사를 대폭 강화해 광고 시장의 질서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 변호사는 “지금껏 변협은 인권 옹호와 사회 정의 실현이라는 기본적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변호사들의 자존감과 품격을 떨어트리기만 했다”며 “변협의 추락한 위상을 반드시 되찾고 미래 먹거리 창출에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53대 변협 회장 선거는 내년 1월 20일 치러진다. 후보 등록 기간은 12월 16~20일이다. 구도는 안 변호사와 금태섭 전 의원, 김정욱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의 삼파전으로 좁혀지고 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