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오른쪽)와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 지난 3월 한국은행 세미나를 듣고 있다. 한은과 KDI는 이후 금리 인하 실기론을 두고 의견 대립을 하고 있다. 이솔 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오른쪽)와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 지난 3월 한국은행 세미나를 듣고 있다. 한은과 KDI는 이후 금리 인하 실기론을 두고 의견 대립을 하고 있다. 이솔 기자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 21일 "한국의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낮은 상황은 일상적인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면서 중립적인 금리 수준이 미국보다 낮게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조 원장은 이날 세계경제연구원과 KB국민그룹이 공동 주최한 지속가능성 글로벌 서밋에서 기조발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조 원장은 한국의 잠재력이 낮아지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 그는 "한국은 성장 잠재력 하락으로 중립금리가 내려갈 수 있는 반면 미국에선 혁신이 계속 이뤄지고 있다"며 "앞으로는 한국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높아지는 상황이 뉴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로 인해 한미 금리차가 계속되는 현상이 큰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조 원장은 조 원장은 "변동환율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환율에 미치는 영향은 크겠지만 금리 차이가 난다고 해서 과거 외환위기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외환위기 이후 경상수지가 매년 흑자를 나타내고 있고 순대외자산국이 됐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조 원장은 한국의 향후 과제로 성장 회복을 위해 총요소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10년대 이후 성장률이 크게 낮아진 것은 생산성 저하 때문"이라며 "최근 10~20년간 한국에 굵직한 개혁이 없었다는 점이 문제"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지난 광우병 사태 이후 정부가 과감한 개혁을 추진하는 데 주저하게 된 측면이 있다. 그런 것이 쌓이면서 우리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장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그는 "빠른 성장이 꼭 필요하느냐는 의견을 가진 사람도 있지만 소득여건이 증가하지 않으면 복지 재원도 늘지 않는 것"이라며 "모든 측면에서 어려움을 가중시킨다"고 말했다.

이날 조 원장은 최근 KDI가 한은의 통화정책에 대해 지적하는 것과 관련한 한은 반발을 의식한듯 세션 좌장으로 사회를 보던 신성환 한은 금융통화위원에게 "KDI가 최근에 금리정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를 하는 것에 대해 우리 금통위원님이 좀 못마땅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조 원장은 지난 2016~2020년 한은 금통위원 출신으로, 2022년 KDI 원장에 취임했다.

최근 KDI와 한은은 '금리 인하 실기론'을 두고 여러차례 충돌하고 있다. 지난 8월 KDI가 금리 인하가 늦었다며 '실기론'을 주장한 데 대해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금통위 기자간담회에서 "금융안정 측면에 무게를 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총재는 10월에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KDI가 이야기한 것보다 금리를 늦게 내리는 이유는 금융안정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KDI는 지난 12일 하반기 경제전망을 발표하면서 이같은 이 총재 주장에 재반박했다. KDI는 "통화정책의 1차 목표는 물가 안정"이라며 "금융 안정은 거시건전성 정책으로 역할 분담을 해야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은과 의견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며 "기준금리를 점진적으로 인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같은 KDI의 금리 인하 요구에 대해 한은 안팎에서는 국책 연구기관인 KDI가 금리 인하를 통한 내수 진작을 요구하는 정부의 의견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10월 한은이 연 3.50%인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려 연 3.25%로 결정한 후에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타나고 있는 것은 11월에 금리를 연속으로 내려야한다는 메시지로 읽힌다는 시각도 있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회의는 오는 28일 열린다. 올해 마지막 회의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