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과 바이든의 '원자력 밀당'…中 시진핑이 대안?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전 세계적으로 원자력발전이 부흥하고 있지만, 미국과 러시아 간 갈등으로 인해 핵연료인 농축 우라늄의 '공급망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산 농축 우라늄에 대해 전면적인 금수(수입 금지) 조치를 내리고 싶으면서도 프랑스 등 다른 국가들의 '동참'이 보장되지 않은 탓에 애매한 제재를 이어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 15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농축 우라늄의 대미 수출을 일시 제한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결정은 지난 5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러시아산 우라늄 수입을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한 것에 대한 맞대응 조치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9월 정부 회의에서 "그들(서방)은 우리에게 많은 상품 공급을 제한하고 있다"며 "우라늄, 티타늄, 니켈 등 전략 원자재 수출을 제한하는 방안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농축 우라늄 수입-수출 관련 '예외 조항'을 두며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미국의 러시아산 농축 우라늄 금수 조치 법안에는 다른 곳에서 공급을 확보할 수 없을 경우 특별 허가를 신청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놨다. 러시아의 수출 제한 조치에도 "러시아 연방 기술·수출 통제국에서 발행한 일시적 라이선스가 있는 경우에는 미국에 농축 우라늄을 수출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원자력 산업 전문 컨설팅 업체 UxC의 조나단 힌지 대표는 "양국 모두 완전히 절연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은 당장 러시아산 농축 우라늄에서 손을 떼면 자국 원전 업계의 연료가 부족해지는 문제를 겪을 수밖에 없다. 미 에너지부에 따르면 러시아는 전 세계 우라늄 농축 능력의 약 44%를 차지하고 미국 핵연료 수입의 약 35%를 공급하고 있다. 또한 미국이 핵연료 공급망에서 러시아 의존도를 줄이려 해도 다른 국가들로 인해 러시아 수출에 타격을 입히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왕립연합군사연구소(RUSI)의 다랴 돌지코바 연구원은 "2022년 프랑스의 러시아산 농축 우라늄 수입 가치와 물량이 크게 증가했으며, 2023년에도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고 말했다. 단순히 미국 내부뿐만 아니라 글로벌 차원에서의 공급망 재조정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반대로 러시아로서는 농축 우라늄 수출이 정부 재정의 주요 재원이다. 해외 판매량을 유지해야 푸틴 대통령의 통치력이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
UxC 데이터에 따르면 농축 우라늄 현물 가격은 최근 파운드당 80달러 가량을 기록했다. 작년 초 미국의 제재 도입 가능성으로 106달러까지 급등했던 것에 비해 안정화됐다. 러시아의 수출 제한 발표에도 농축 우라늄 가격이 변동성을 보이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미국 유틸리티 기업들이 이미 갖고 있는 재고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팬뮤어 리베룸의 톰 프라이스 분석가는 "농축 우라늄 시장만큼 전체 공급이 재고에 의존하는 시장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미국 유틸리티 업계가 보유한 재고가 이미 교체 연료 조립체를 공급하는 데 사용되고 있어 미국은 유럽 농축업체로부터 수입을 대폭 늘릴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전 세계적으로 농축 우라늄 비용 상승을 초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인공지능(AI) 열풍에 의한 전력 수요 급증으로 인해 핵에너지 수요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힌지 대표는 "AI와 소형모듈원자로(SMR) 관련 기술이 확산된다면 현재 연료 시장은 이 새로운 수요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스프롯 자산운용의 존 참팔리아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유틸리티 업체들이 예상보다 농축 우라늄 재고 비축에 빨리 대응하지 않는 게 신기하다"며 "그들은 가격 하락세를 예상하는 것 같지만, 우리의 전망은 이 산업이 구조적인 공급 부족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우라늄 광산이 수명을 다할수록 (공급 경색은) 점점 악화될 것"이라며 "이 격차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더 높은 인센티브 가격을 통해 신규 광산 건설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과 러시아는 1993년 핵무기 해체 및 평화적 에너지 전환 프로그램 '메가톤스 포 메가와트(Megatons for Megawatts)'를 시작했다.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의 핵군축 대결을 청산하고, 이를 평화적으로 상업적인 원전 연료로 전환한다는 구상에서다. 이는 2013년까지 30년간 이어져오며 수백 톤의 러시아산 핵무기급 고농축 우라늄을 미국으로 이전하고 양국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다시 촉발된 양국 간 긴장은 농축 우라늄의 글로벌 공급망에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의 러시아 의존도를 줄이려는 결정은 전 세계 농축 우라늄의 무역 흐름을 큰 폭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이 첨단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과 농축 우라늄 공급망에서는 오히려 손을 잡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돌지코바 연구원은 "중국이 2022년 이후 러시아로부터 농축 우라늄 수입을 늘렸으며, 이는 미국으로의 수출 증가를 동반했다"면서도 "현재까지 공개된 데이터만으로 이러한 공급망 대체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지 단정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친(親)푸틴'으로 통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귀환이 양국 간 긴장을 줄이고 핵연료 협상에서 출구를 모색할 수 있게 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러시아 정부는 지난 15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농축 우라늄의 대미 수출을 일시 제한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결정은 지난 5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러시아산 우라늄 수입을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한 것에 대한 맞대응 조치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9월 정부 회의에서 "그들(서방)은 우리에게 많은 상품 공급을 제한하고 있다"며 "우라늄, 티타늄, 니켈 등 전략 원자재 수출을 제한하는 방안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농축 우라늄 수입-수출 관련 '예외 조항'을 두며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미국의 러시아산 농축 우라늄 금수 조치 법안에는 다른 곳에서 공급을 확보할 수 없을 경우 특별 허가를 신청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놨다. 러시아의 수출 제한 조치에도 "러시아 연방 기술·수출 통제국에서 발행한 일시적 라이선스가 있는 경우에는 미국에 농축 우라늄을 수출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원자력 산업 전문 컨설팅 업체 UxC의 조나단 힌지 대표는 "양국 모두 완전히 절연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은 당장 러시아산 농축 우라늄에서 손을 떼면 자국 원전 업계의 연료가 부족해지는 문제를 겪을 수밖에 없다. 미 에너지부에 따르면 러시아는 전 세계 우라늄 농축 능력의 약 44%를 차지하고 미국 핵연료 수입의 약 35%를 공급하고 있다. 또한 미국이 핵연료 공급망에서 러시아 의존도를 줄이려 해도 다른 국가들로 인해 러시아 수출에 타격을 입히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왕립연합군사연구소(RUSI)의 다랴 돌지코바 연구원은 "2022년 프랑스의 러시아산 농축 우라늄 수입 가치와 물량이 크게 증가했으며, 2023년에도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고 말했다. 단순히 미국 내부뿐만 아니라 글로벌 차원에서의 공급망 재조정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반대로 러시아로서는 농축 우라늄 수출이 정부 재정의 주요 재원이다. 해외 판매량을 유지해야 푸틴 대통령의 통치력이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
UxC 데이터에 따르면 농축 우라늄 현물 가격은 최근 파운드당 80달러 가량을 기록했다. 작년 초 미국의 제재 도입 가능성으로 106달러까지 급등했던 것에 비해 안정화됐다. 러시아의 수출 제한 발표에도 농축 우라늄 가격이 변동성을 보이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미국 유틸리티 기업들이 이미 갖고 있는 재고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팬뮤어 리베룸의 톰 프라이스 분석가는 "농축 우라늄 시장만큼 전체 공급이 재고에 의존하는 시장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미국 유틸리티 업계가 보유한 재고가 이미 교체 연료 조립체를 공급하는 데 사용되고 있어 미국은 유럽 농축업체로부터 수입을 대폭 늘릴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전 세계적으로 농축 우라늄 비용 상승을 초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인공지능(AI) 열풍에 의한 전력 수요 급증으로 인해 핵에너지 수요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힌지 대표는 "AI와 소형모듈원자로(SMR) 관련 기술이 확산된다면 현재 연료 시장은 이 새로운 수요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스프롯 자산운용의 존 참팔리아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유틸리티 업체들이 예상보다 농축 우라늄 재고 비축에 빨리 대응하지 않는 게 신기하다"며 "그들은 가격 하락세를 예상하는 것 같지만, 우리의 전망은 이 산업이 구조적인 공급 부족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우라늄 광산이 수명을 다할수록 (공급 경색은) 점점 악화될 것"이라며 "이 격차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더 높은 인센티브 가격을 통해 신규 광산 건설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과 러시아는 1993년 핵무기 해체 및 평화적 에너지 전환 프로그램 '메가톤스 포 메가와트(Megatons for Megawatts)'를 시작했다.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의 핵군축 대결을 청산하고, 이를 평화적으로 상업적인 원전 연료로 전환한다는 구상에서다. 이는 2013년까지 30년간 이어져오며 수백 톤의 러시아산 핵무기급 고농축 우라늄을 미국으로 이전하고 양국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다시 촉발된 양국 간 긴장은 농축 우라늄의 글로벌 공급망에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의 러시아 의존도를 줄이려는 결정은 전 세계 농축 우라늄의 무역 흐름을 큰 폭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이 첨단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과 농축 우라늄 공급망에서는 오히려 손을 잡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돌지코바 연구원은 "중국이 2022년 이후 러시아로부터 농축 우라늄 수입을 늘렸으며, 이는 미국으로의 수출 증가를 동반했다"면서도 "현재까지 공개된 데이터만으로 이러한 공급망 대체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지 단정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친(親)푸틴'으로 통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귀환이 양국 간 긴장을 줄이고 핵연료 협상에서 출구를 모색할 수 있게 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