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와인의 새로운 격전지다. 항공사들이 프리미엄 서비스를 강화하면서 와인으로 승부를 내기 시작했다. 희귀 와인, 초고가 와인, 전용 와인까지 항공사마다 다양하다.
캐세이퍼시픽
캐세이퍼시픽
에미레이트항공 - 600만 병 최다 보유

가장 많은 와인을 보유한 항공사는 에미레이트항공이다. 프랑스 브루고뉴에 있는 전용 와인 창고에 600만 병의 와인이 저장돼 있다. 와인은 숙성할수록 맛이 깊어지는 시간의 술. 최상의 맛을 완성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숙성 기간을 거친다. 길게는 15년까지 보관한 뒤 서빙한다. 항공사 측이 밝힌 와인 투자 비용은 총 10억달러(약 1조3900억원). 대체 무슨 와인을 사면 이 금액이 나오냐고? 이런 의문은 퍼스트 클래스에 서빙하는 와인 리스트를 보면 금세 이해된다. 11월 14일 기준, ‘빈티지 컬렉션’을 제공하는 장거리 노선에서는 샤토 마고 2004, 샤토 무통 로칠드 2004를 제공한다. 두 와인 모두 와인 마니아라면 한 번쯤 맛보기를 바라는 꿈의 와인. 20년을 숙성한 2004년 빈티지라면 말할 것도 없다. 두 와인의 한국 판매가는 각각 300만원 안팎이다.

하늘 위 와인 대전…1만m 상공서 즐기는 天上의 맛
캐세이퍼시픽 - 럭셔리 샴페인 크루그

<캐세이퍼시픽 럭셔리 샴페인 크루그>캐세이퍼시픽은 와인 애호가들이 마일리지 항공권을 구입할 때 선호하는 곳이다. 럭셔리 샴페인의 대명사 크루그를 제공하기 때문. 퍼스트 클래스 승객이라면 자리에 앉자마자 웰컴 와인으로 즐길 수 있다. 샴페인과 함께 캐비어가 서빙된다. 퍼스트 클래스에는 리델의 소믈리에 등급 글래스를 쓴다. 캐세이퍼시픽은 주기적으로 와인 리스트를 업데이트하는데, 1만m 상공에서 최적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선정한다. 미각은 고도가 높아질수록 쓴맛을 강하게 느끼는 경향이 있어 타닌이 낮고 과일향이 풍부한 와인을 선별한다. 자체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항공기마다 와인 자격증 WSET를 취득한 승무원이 탑승하니, 와인의 스토리가 궁금하다면 마음껏 질문해도 좋다.

일본항공 - 희귀한 샴페인 살롱 2013

<일본항공 희귀한 샴페인 살롱 2013>땅에서도 마셔보기 힘든 와인을 하늘에서 마실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일본항공이 퍼스트 클래스에 서비스하는 ‘샴페인 살롱 2013’이 그렇다.

샴페인 살롱은 매해 포도의 품질이 최상급이라고 판단될 때만 연도를 명기한 빈티지 샴페인을 내놓는다. 최근 10년간은 빈티지 샴페인을 출시하지 않았을 정도로 선별 기준이 까다롭다. 소량으로 생산하기 때문에 가격도 높고 구하기도 어렵다. 2013년 빈티지는 8000병 정도를 생산했는데, 한 병에 200만원을 훌쩍 넘어간다. 그렇지만 농축된 깊은 맛과 산미, 긴 여운은 확실히 급이 다른 수준이다. 현재 비행기에서 서비스하는 샴페인 중 최고가로, 오직 이 와인을 마시기 위해 일본항공을 타는 승객도 있다. 일본에서 출발하는 장거리 노선에 한정한다.

터키항공 - 매력 넘치는 튀르키예 와인

<터키항공 매력 넘치는 튀르키예 와인> 와인은 튀르키예의 숨은 명물이다. 다만 국내에서 소비되는 비중이 높아 나라 밖에서는 맛보기 힘들다. 특히 산미가 풍부한 화이트 와인의 품질이 뛰어난데, 샤르도네·소비뇽 블랑 같은 대중적인 품종이 아니라 튀르키예 토착 품종을 사용한다. 터키항공을 이용하면 튀르키예로의 와인 여행이 시작된다. ‘꼬뜨 다바노스’는 튀르키예 와인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와인. 카파도키아의 화산 토양에서 자란 ‘나린스’라는 품종으로 만든다. 이 포도를 처음 와인으로 만들기 시작한 ‘카바클르데레’라는 와이너리 제품이라 완성도가 높다. 기내에서는 미각 세포 기능이 30% 정도 저하된다는데, 나린스 특유의 또렷한 상큼함은 무뎌진 혀도 깨운다. 이 밖에 ‘외쾨즈과지’ 품종으로 제조한 레드와인, ‘찰 카라스’ 품종으로 만든 로제와인을 서빙한다.

에어뉴질랜드 - 이코노미도 3종 서빙

<에어뉴질랜드 이코노미도 3종 서빙>기내 와인 서비스가 퍼스트·비즈니스만을 위한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신대륙 와인의 최강자’로 꼽히는 뉴질랜드에서는 다르다. 에어 뉴질랜드의 이코노미 클래스에서 와인을 주문하면 “어떤 품종을 원하시냐”는 질문이 돌아온다. 소비뇽 블랑·샤르도네, 피노 누아까지 3종의 와인을 서비스하기 때문. 뉴질랜드 와인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이 중에서 ‘손버리 소비뇽 블랑’을 선택해 보자. 라임과 레몬, 패션프루트, 파인애플 등 푸릇한 아로마가 입안을 상큼하게 만든다. ‘소비뇽 블랑의 수도’라고 불리는 뉴질랜드 말버러의 명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내년 3월부터는 에어 뉴질랜드 자체 와인 ‘1345 소비뇽 블랑’을 서비스한다. 기내식과 어울리는 와인을 만들기 위해 뉴질랜드의 대표 와인 브랜드 빌라 마리아와 협업했다.

김은아 한경매거진 기자 una.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