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프리즘] 예금자 보호한도 상향의 명암
예금자 보호 제도는 대공황 시기 미국에서 시작됐다. 1933년 취임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당시 ‘뱅크런’(예금 대량 인출)으로 극심한 혼란에 빠진 미국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전국 은행의 영업을 며칠간 정지한 뒤 은행에 맡긴 돈은 정부가 책임지고 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위해 의회를 압박해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출범시키고 예금자 보호제를 도입했다.

우리나라에선 1995년 예금보험공사가 설립되면서 예금자 보호 제도가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금융회사에서 예금보험료를 받아 기금을 쌓아두고, 예금 지급 불능 사태가 터지면 예보가 이 기금을 통해 대신 예금을 지급한다. 2001년 이전 보호한도는 은행 2000만원, 보험 5000만원, 금융투자 2000만원, 저축은행 2000만원이었다. 이후 금융사별 예금자 한 명당 원금과 이자를 합해 5000만원(세전)까지 보장하는 것으로 바뀌어 24년째 유지되고 있다.

그러다가 지난해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뱅크런으로 파산하고, 국내에서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로 일부 새마을금고에서 뱅크런이 벌어지자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예금 규모 등 경제적 상황 변화와 다른 나라들의 보호한도 수준을 고려할 때 현저히 낮다는 이유에서다. 은행을 기준으로 미국은 25만달러(약 3억4700만원), 영국 8만5000파운드(1억5000만원), 일본은 1000만엔(9000만원)이다. 이에 여야가 보호한도를 1억원으로 상향하는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에 합의했고, 이르면 오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할 예정이다.

한도가 올라가면 금융소비자 입장에선 안심하고 더 많은 돈을 맡길 수 있다. 여러 금융사에 분산 예치해야 할 필요가 줄어 편의성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 안정에도 일부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부작용도 적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선 보호한도를 두 배로 올린다고 해서 뱅크런을 피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해당 금융사가 부실화할 조짐이 보이면 보호한도가 아무리 높더라도 소비자들이 앞다퉈 예금 인출에 나서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보호한도 이상의 돈을 맡겨 피해를 본 예금자들의 원성이 빗발치면 결국 정부가 전액을 지급하겠다고 할 게 뻔하다. 작년 새마을금고 뱅크런 때도 정부는 예금 전액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해 사태를 진정시켰다.

금융회사가 한도 상향에 따른 예금보험료 인상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가능성도 있다. 예금금리를 낮추거나 대출금리를 올리는 식으로 대응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은행보다 예금금리가 높은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으로 급격한 자금 쏠림이 나타나 오히려 금융시장의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종 입법 과정에서 금융업권별로 ‘차등 상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은행의 보호한도는 올리되 저축은행과 상호금융의 한도는 유지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만하다. 보호한도 상향의 편익을 소수만 누릴 것이란 비판도 제기된다. 예보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금융회사 전체 예금(3675조3491억원) 중 보호받는 예금 비중은 82%에 이른다. 5000만원 이상 예금자는 10명 중 2명 남짓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정부와 정치권은 ‘선의’를 내세워 기회가 생길 때마다 금융시장에 개입해왔다. 예금자 보호한도 상향도 금융시장 안정과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선의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늘 그렇듯 시장은 이들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여야와 정부 모두 최종 입법 과정에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