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산업 구조조정을 논의하는 컨트롤 타워인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가 마지막으로 열린 것은 2022년 12월 16일이다. 한화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반짝 특수’를 누린 국내 석유화학산업이 장기 불황의 늪에 빠져 더 이상 구조조정을 미룰 수 없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발적 사업재편 초점”

 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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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금융위원회 등은 다음달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논의할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에 추진하는 석유화학산업 구조조정은 기존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인위적 구조조정이 아니라 자발적 사업재편을 유도해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본래 취지에 충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요 석유화학업체의 주채권은행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아니라 민간 은행이어서 정부 주도 구조조정이 어렵다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정부가 유력하게 검토하는 해법은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기업활력법)이다. 인수합병(M&A) 등 사업재편을 신속하게 할 수 있도록 관련 절차와 규제를 한 번에 풀어주는 ‘원샷법’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기업활력법상 지원 대상은 과잉 공급, 산업 위기, 신산업 진출, 탄소중립, 공급망 안정 등이다. 정부는 과잉 공급 여파로 잇따라 영업손실을 내며 위기에 빠진 석유화학업종을 지원 대상으로 추가하겠다는 계획이다. 석유화학업종이 기업활력법 대상이 되는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기업활력법이 시행된 첫해인 2016년 말에도 지정됐다.

○빅딜·합작법인 설립 이어지나

정부는 중국 기업들의 파상 공세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의 사업 구조를 기존 기초제품 중심에서 스페셜티(고부가가치) 제품 위주로 바꾸도록 유도하겠다는 계획이다. LG화학, 롯데케미칼, 금호석유화학, 한화솔루션 등 국내 4대 석유화학업체의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작년 4분기 390억원 손실에서 올 3분기 4450억원 손실로 적자 규모가 11배로 증가했다. 기초 제품인 에틸렌을 주력 생산하는 롯데케미칼이 3분기에만 4140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영향이 컸다. 롯데케미칼과 함께 국내 주력 에틸렌 생산 업체인 대한유화와 여천NCC도 분기 연속 적자를 냈다.

기업활력법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면 산업부 산하 사업재편계획 심의위원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 불가피한 고용 감축이 뒤따르는 사후 구조조정과 달리 공급 과잉 설비를 축소하고 신사업에 투자하는 선제적 사업재편을 통해 자발적 구조조정을 유도하겠다는 계획이다. 사업재편과 함께 대형 업체 간 ‘빅딜’뿐 아니라 합작법인(JV) 설립을 비롯한 합종연횡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나올 수 있다.

석유화학업계도 기업 간 ‘빅딜’이 불가피하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M&A에 뒤따르는 양도소득세 등 각종 세금을 면제해주거나 보조금을 주면 구조조정 작업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전환하는 데 들어가는 연구개발(R&D) 관련 비용 세제 혜택과 규제 개선도 요청하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사업재편을 위한 인센티브를 논의 중이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 기업활력법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은 조건을 충족하는 특정 업종 기업이 인수합병(M&A) 등 사업 재편을 신속하게 할 수 있도록 관련 절차와 규제를 한 번에 풀어주는 법. 일명 ‘원샷법’으로 부른다.

강경민/박상용/김우섭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