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법무실부터 터는 檢…"글로벌 기업, 韓에 등 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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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콘서트
'ACP 법안 도입 필요성' 토론회
의뢰인 법률자문 공개 안할 권리
OECD 회원국 중 한국만 없어
"증거 아닌 법적 대응논리 취득
상대팀 감독 작전 훔쳐보는 반칙"
"檢, 경영전략 들여다볼 수 있는데
다국적 기업이 韓에 본부 두겠나"
'ACP 법안 도입 필요성' 토론회
의뢰인 법률자문 공개 안할 권리
OECD 회원국 중 한국만 없어
"증거 아닌 법적 대응논리 취득
상대팀 감독 작전 훔쳐보는 반칙"
"檢, 경영전략 들여다볼 수 있는데
다국적 기업이 韓에 본부 두겠나"
최근 기업 인수합병(M&A) 자문 업무를 하는 로펌 변호사들은 의뢰 기업과 이메일이 아니라 퀵서비스로 중요 서류를 주고받는 일이 증가했다. 오랜 기간 M&A 업무를 맡아온 한 변호사는 “법적 분쟁이 생길 경우 검찰이나 금융위원회가 해당 서류를 의뢰인에게서 압수해 소송 무기로 사용하는 일이 늘었기 때문”이라며 “퀵으로 전달받은 종이 서류도 곧 파쇄한다”고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유일하게 한국에 ‘의뢰인-변호인 간 비밀유지권(ACP·attorney-client privilege)’이 도입되지 않아 벌어지는 촌극이다. 기업을 조사하는 검찰,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등은 자문 로펌과 사내 법무팀부터 압수수색해 기업의 법적 대응 전략부터 약점까지 압수해갈 수 있다. 이같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수사 관행이 해외 기업의 한국 투자를 저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기원 서울변회 법제이사는 소송 과정에서 자문 로펌이 압수수색을 당한 다양한 사례를 소개했다. 지난해 8월 검찰이 금융감독원과 함께 카카오의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혐의를 수사하며 A법무법인을 압수수색한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A법무법인은 카카오 측에 하이브의 공개매수 저지 관련 법률 자문을 했지만, 압수수색 과정에서 다양한 법적 리스크에 대한 대응 전략까지 새나간 것으로 전해졌다.
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주고받은 자료가 수사기관에 넘어갈 것을 우려한 의뢰인이 법률 자문에 소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헌법에 보장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천준범 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은 “사내 법무팀 압수수색을 통해 사건에 대한 증거가 아닌, 법적 대응 논리를 검찰 등이 취득하는 경우가 많다”며 “스포츠팀이 상대편 벤치에 들어가 감독의 작전 파일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반칙”이라고 비판했다.
일선에서는 ACP 침해를 우려해 법률 의견서를 서류로 주고받는 대신 전화나 구두, 텔레그램 메시지 등으로 자문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로펌이나 회사 이메일이 압수수색에 취약하다는 이유로 구글 지메일을 이용하는 사례도 늘었다. 정 교수는 “민감하고 중요한 사안일수록 서면 자료 작성을 꺼리게 돼 기업들의 업무에도 차질을 준다”고 했다.
25년간 검사로 일하다가 2021년부터 김앤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문한 변호사는 패널토론에서 “검사 시절 찾아보기 어려웠던 로펌 및 기업 법무팀에 대한 압수수색이 최근 광범위해졌다”고 전했다. 기업 및 금융 관련 법적 쟁점이 갈수록 복잡해지면서 가능한 편하게 수사를 하려는 것도 이유라는 분석이다.
이는 다국적 기업의 한국 지사 설립에도 장애 요인이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의 애리 이니세 법률위원장은 “10여 년간 한국에서 활동하며 ACP 문제로 한국에 있는 기업이 다른 나라에 소재한 기업과 비교해 법률 이슈로 어려움을 겪는 사례를 많이 목격했다”고 말했다. 미국 로펌 오멜버니앤드마이어스의 신영욱 변호사도 “아시아·태평양 전략을 한국 검찰이 언제든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어떤 다국적 기업이 한국에 본부를 두려 하겠나”고 지적했다.
국회에서는 김병기 의원을 비롯해 3명의 의원이 ACP를 보장하는 법안을 내놨다. 김상욱 의원도 “정의 실현은 중요한 과제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게 공정한 절차”라며 ACP 법제화 지지 의사를 밝혔다. 법무부를 대표해 패널토론에 나선 석동현 검사는 “사법방해죄가 도입되고 변호사 윤리가 높아지는 등의 전제하에 ACP 법제화를 적극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의뢰인-변호인 비밀유지권
의뢰인이 법률 자문을 위해 변호사와 교환한 법적 자료에 대해 공개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 법률 자문 내용이 압수수색, 증거 제출 등을 통해 외부에 공개될 위험이 있으면 의뢰인이 변호인을 믿고 충분한 사실관계를 전할 수 없어 충분한 법적 조력을 받지 못한다는 취지다.
배성수 기자 baebae@hankyung.com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유일하게 한국에 ‘의뢰인-변호인 간 비밀유지권(ACP·attorney-client privilege)’이 도입되지 않아 벌어지는 촌극이다. 기업을 조사하는 검찰,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등은 자문 로펌과 사내 법무팀부터 압수수색해 기업의 법적 대응 전략부터 약점까지 압수해갈 수 있다. 이같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수사 관행이 해외 기업의 한국 투자를 저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변호인 조력 막는 압수수색
한국경제신문은 21일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 사내변호사회, 서울지방변호사회 등과 ACP 도입을 주제로 입법콘서트를 열었다.김기원 서울변회 법제이사는 소송 과정에서 자문 로펌이 압수수색을 당한 다양한 사례를 소개했다. 지난해 8월 검찰이 금융감독원과 함께 카카오의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혐의를 수사하며 A법무법인을 압수수색한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A법무법인은 카카오 측에 하이브의 공개매수 저지 관련 법률 자문을 했지만, 압수수색 과정에서 다양한 법적 리스크에 대한 대응 전략까지 새나간 것으로 전해졌다.
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주고받은 자료가 수사기관에 넘어갈 것을 우려한 의뢰인이 법률 자문에 소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헌법에 보장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천준범 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은 “사내 법무팀 압수수색을 통해 사건에 대한 증거가 아닌, 법적 대응 논리를 검찰 등이 취득하는 경우가 많다”며 “스포츠팀이 상대편 벤치에 들어가 감독의 작전 파일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반칙”이라고 비판했다.
일선에서는 ACP 침해를 우려해 법률 의견서를 서류로 주고받는 대신 전화나 구두, 텔레그램 메시지 등으로 자문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로펌이나 회사 이메일이 압수수색에 취약하다는 이유로 구글 지메일을 이용하는 사례도 늘었다. 정 교수는 “민감하고 중요한 사안일수록 서면 자료 작성을 꺼리게 돼 기업들의 업무에도 차질을 준다”고 했다.
○글로벌 기업 유치에 치명적
문제는 이 같은 ACP 침해 사례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재벌가 인사 등에 대한 프로포폴 상습 투약 혐의로 구속된 서울 강남구 성형외과 병원장의 변호사 소속 법무법인 사무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살균제 제조업체 애경을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 △롯데그룹 조세 포탈 혐의 사건 관련 율촌 등이 압수수색 대상에 올랐다.25년간 검사로 일하다가 2021년부터 김앤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문한 변호사는 패널토론에서 “검사 시절 찾아보기 어려웠던 로펌 및 기업 법무팀에 대한 압수수색이 최근 광범위해졌다”고 전했다. 기업 및 금융 관련 법적 쟁점이 갈수록 복잡해지면서 가능한 편하게 수사를 하려는 것도 이유라는 분석이다.
이는 다국적 기업의 한국 지사 설립에도 장애 요인이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의 애리 이니세 법률위원장은 “10여 년간 한국에서 활동하며 ACP 문제로 한국에 있는 기업이 다른 나라에 소재한 기업과 비교해 법률 이슈로 어려움을 겪는 사례를 많이 목격했다”고 말했다. 미국 로펌 오멜버니앤드마이어스의 신영욱 변호사도 “아시아·태평양 전략을 한국 검찰이 언제든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어떤 다국적 기업이 한국에 본부를 두려 하겠나”고 지적했다.
국회에서는 김병기 의원을 비롯해 3명의 의원이 ACP를 보장하는 법안을 내놨다. 김상욱 의원도 “정의 실현은 중요한 과제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게 공정한 절차”라며 ACP 법제화 지지 의사를 밝혔다. 법무부를 대표해 패널토론에 나선 석동현 검사는 “사법방해죄가 도입되고 변호사 윤리가 높아지는 등의 전제하에 ACP 법제화를 적극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의뢰인-변호인 비밀유지권
의뢰인이 법률 자문을 위해 변호사와 교환한 법적 자료에 대해 공개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 법률 자문 내용이 압수수색, 증거 제출 등을 통해 외부에 공개될 위험이 있으면 의뢰인이 변호인을 믿고 충분한 사실관계를 전할 수 없어 충분한 법적 조력을 받지 못한다는 취지다.
배성수 기자 bae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