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천양희

속에서 불꽃을 피우나 겉으론
한 줌 연기를 날리는 굴뚝 같은

세찬 물살에도 굽히지 않고
거슬러 오르는 연어 같은

속을 텅 비우고도 꼿꼿하게
푸른 잎을 피우는 대나무 같은

폭풍이 몰아쳐도 눈바람 맞아도
홀로 푸르게 서 있는 소나무 같은

붉은 꽃을 피우고도 질 때는
모가지째 툭, 떨어지는 동백 같은

불굴의 정신으로

자신에게 스스로 유배를 내리고
황무지를 찾아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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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60년 시인이 새긴 ‘정신의 지문’ [고두현의 아침 시편]
천양희 시인의 신작 시집 <몇차례 바람 속에서도 우리는 무사하였다>(창비)에 실린 시입니다. 제목 ‘시인’은 시 쓰는 사람을 뜻하는 일반명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인 자신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읽히기도 합니다. ‘불굴의 정신으로// 자신에게 스스로 유배를 내리고/ 황무지를 찾아가는 사람’이라는 대목이 더욱 그렇습니다.

시인은 ‘속에서 불꽃을 피우나 겉으론/ 한 줌 연기를 날리는 굴뚝 같은// 세찬 물살에도 굽히지 않고/ 거슬러 오르는 연어 같은// 속을 텅 비우고도 꼿꼿하게// 푸른 잎을 피우는 대나무 같은// 폭풍이 몰아쳐도 눈바람 맞아도/ 홀로 푸르게 서 있는 소나무 같은’ 존재입니다. 그만큼 의연하고 불굴의 정신으로 무장한 존재이지요.

하지만 시인은 ‘붉은 꽃을 피우고도 질 때는/ 모가지째 툭, 떨어지는 동백 같은’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장엄하면서도 여린 마음을 가진 게 시인입니다. 천양희 시인은 올해로 등단한 지 60년째를 맞은 중진이지만 지금도 누군가의 ‘슬픔’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민감한 감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번 시집에 61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모든 시의 뿌리가 슬픔의 바닥을 어루만지는 듯합니다. 다음 시를 볼까요.

하나의 사람과 예순한 편의 슬픔

한 시인이
슬픔은 어깨로 운다고 합니다
한 시인이
슬픔은 모서리가 닳아 둥글어졌다고 합니다
한 시인이
오래된 슬픔은 향기를 품고 있다고 합니다
한 시인이
슬픔을 팔아서 자그만 꽃밭을 사야겠다고 합니다
한 시인이
슬픔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싶다고 합니다
한 시인이
어떤 슬픔은 함께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한 시인이
슬픔이 택배로 왔다고 합니다

어디서 왔는지 나이 먹은 슬픔이
오늘은 어머니가 보고 싶다고 합니다


시인의 속에는 수많은 시인이 살고 있습니다. 그 많은 슬픔을 그는 ‘어머니가 보고 싶다’는 근원적 모성의 둥근 어깨로 보듬어 안습니다. 그 속에 ‘누군가의 마음을 살릴 수 있는’ 치유의 길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시집 맨 뒤에 있는 ‘시인의 말’이 이를 그대로 비추어 줍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 걸어온 60년 시의 길이/ 나에게는 가장 먼 길이었다/ 그 먼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 돌아보니 그동안 나는/ 사람이 그리운 사람이었고/ 질문이 많은 사람이었다/ 마음자리를 잃고/ 밥처럼 먹은 슬픔을/ 오늘 밤/ 나는 쓸 수 있을 것 같다/ 단 한 편이라도/ 누군가의 마음을 살릴 수 있다면/ 이것이 시인의 말이 될 것이다’

그동안 그는 오로지 ‘시인’으로 살기 위해 시의 외길을 걸어왔습니다. 시를 대하는 자세는 성스러운 구도자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그가 걸어온 길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가장 먼 길’이었지요. ‘그 먼 길을’ 그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걸어왔습니다.

시력(詩歷) 60년에 이르는 지금도 그는 원고지에 시를 씁니다. 시를 쓰기 전에 먼저 손을 씻고 교자상 앞에 앉아 볼펜으로 한 자 한 자 씁니다. 그는 “아직 나는 시의 학교의 맨 처음 학생”이라며 “원고지 앞에서는 늘 공포를 느낀다”고 합니다. 그만큼 시의 회초리로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걸어온 길이기도 합니다. 이 같은 자세는 ‘벌새가 사는 법’이라는 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벌새는 1초에 90번이나/ 제 몸을 쳐서/ 공중에 부동자세로 서고/ 파도는 하루에 70만 번이나/ 제 몸을 쳐서 소리를 낸다// 나는 하루에 몇 번이나/ 내 몸을 쳐 시를 쓰나’.

우리의 호흡은 1분에 16~17회, 맥박은 60~70회에 불과한데 작은 벌새가 1초에 90번씩이나 날갯짓을 하다니요! 마음이 느슨해질 때마다 꺼내 읽고 싶어지는 시입니다.

시인은 1초에 90번 이상 마음의 날갯짓으로 자기 몸을 치며 살아왔습니다. 이화여대 국문과 3학년이던 1965년에 시인 박두진의 추천을 받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첫 시집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평민사, 1983)을 펴낼 때까지는 18년 세월을 절망 속에서 보내기도 했습니다.

죽으려고 찾아간 장소가 내변산 직소폭포였지요. 폭포 소리 너머로 ‘너는 죽을 만큼 살았느냐’는 목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만난 직소폭포. 거기에서 그는 비로소 생의 의지를 발견했습니다. 그곳에서 ‘직소포에 들다’라는 시도 잉태했지요. ‘폭포 소리가 산을 깨운다’로 시작해 ‘여기 와서 보니/ 피안이 이렇게 좋다/ 나는 다시 배운다/ 절창(絶唱)의 대목, 그의 완창을’로 끝나는 이 시는 그가 가장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한 작품입니다. 그만큼 가슴 아린 절창입니다.

이번 시집에도 시를 대하는 성스러운 자세가 오롯이 투영돼 있습니다. 이는 ‘내가 시를 쓰는 것은/ 목숨에 대한 반성문입니다’(‘반성문’), ‘시를 쓰는 너는/ 세상에 진 빚을 갚는 것이란다/ 가끔이라도/ 사람 마음에 다녀가는 너는/ 시인 아니냐’(‘한 소식’), ‘시 쓰기란/ 진창에서 절창으로 나아가는 도정’(‘추분의 시’), ‘시보다 더 충분한 것은 없다’(‘추분의 시’) 등의 시구로 이어집니다.

‘딱 한 줄’이라는 시에서는 ‘「일흔살의 인터뷰」라는 시를 발표한 뒤/ 한 독자가 물었다// 그 시에서 행복을 알고도 가지지 못할 때/ 운다고 썼는데// 「여든살의 인터뷰」를 쓴다면/ 어느 때 웃는다고 쓰겠느냐고// 나의 대답은/ 딱 한 줄// ‘가진 것이 시밖에 없을 때 웃는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자신을 ‘수직으로 선 나무’의 ‘곧은 언어’(‘치유의 시작’)로 ‘자연을 쓰는 서기(書記)’(‘내가 떠나는 이유’)에 비유합니다. 시집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유성호 한양대 교수는 그의 문학적 성취를 “한국 시의 찬연한 축복이요, 우리가 그의 시를 읽는 커다란 기쁨의 원천”이라고 평했습니다. 그 기쁨의 샘에서 “아름답고 융융한 예술적 사유”와 “숭고한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 “시인으로서의 존재론에 대한 메타적 성찰”이 맑게 솟아납니다.

그는 여든이 지난 지금도 ‘이제부터 나에게는/ 시작이 필요하다’며 그것이 ‘살아야 할 이유’(‘치유의 시작’)라고 말합니다. 이보다 더 간명하고도 깊이 있는 존재 증명이 어디 있을까요. ‘길이보다 깊이를 생각하는 새 아침’(‘발자취’)에 손을 씻고 정갈한 교자상을 펼친 그가 손글씨로 한 땀 한 땀 ‘정신의 지문(指紋)’(‘낱말이 나를 깨운다’)을 아로새기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등 출간. 김달진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