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공방(漢詩工房)] 見初雪思秋冬之界(견초설사추동지계), 姜聲尉(강성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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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
담뱃갑 은박지 뒷면에 그린 그림 - 이중섭의 "두 아이"
[원시]
見初雪思秋冬之界(견초설사추동지계)
秋末葉紛飛(추말엽분비)
冬頭亦無別(동두역무별)
混淆何劃分(혼효하획분)
界上存初雪(계상존초설)
[주석]
* 見初雪(견초설) : 첫눈을 보다. / 思秋冬之界(사추동지계) : 가을과 겨울의 경계를 생각하다.
* 秋末(추말) : 가을 끝, 가을 끝자락. / 葉(엽) : 나뭇잎, 낙엽. / 紛飛(분비) : 어지럽게 날다.
* 冬頭(동두) : 겨울 머리, 겨울 첫머리. / 亦(역) : 또한, 역시. / 無別(무별) : 구별이 없다, 다를 바 없다.
* 混淆(혼효) : 어지럽히다, 어지럽게 뒤섞이다. / 何(하) : 어찌, 어떻게. / 劃分(획분) : 나누다, 구분하다.
* 界上(계상) : 경계 위. / 存初雪(존초설) : 첫눈이 있다. ‘初雪存’의 도치로 이해하면 된다.
[번역]
첫눈을 보고 가을과 겨울의 경계를 생각하다
가을 끝자락이면 잎새 어지러이 날고
겨울 첫머리 또한 다를 게 없는데
가을과 겨울 뒤섞인 걸 어떻게 나눌까?
그 경계 위에는 첫눈이 있지.
[시작노트]
가을은 단풍과 낙엽의 계절이다. 그리고 11월 들어 먼저 만나게 되는 절기인 입동(立冬)부터 그다음 절기인 소설(小雪)까지는, 가을에 물든 낙엽이 선사하는 정취를 우리가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시기이다. 이 보름에 이르는 기간을 두고 누구는 여전히 가을이라 하고, 또 누구는 벌써 겨울이라 하기도 한다. 도대체 어느 쪽이 맞는 것일까? 올해처럼 20도를 웃도는 날씨가 여러 날 계속되었던 그 ‘시기’를 두고 ‘입동이 지났으니 겨울’이라고 하기에는 아무래도 좀 뭣하지 않을까 싶다. 절기와 날씨의 엇박자가 환절기면 어김없이 확인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거의 매년 반복되어온 일이다.
필자는 이 시의 시상을 애초에 담뱃갑 은박지 뒷면에 메모하였더랬다. 지금은 담배를 끊은 지 1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이 시를 지을 당시에 필자는 두루두루 소문난 골초였다. 담뱃갑 은박지 뒷면에다 그 옛날 고려성 선생(본명 조경환)은 「나그네 설움」이라는 노랫말을 적었고, 이중섭 화가는 그림을 그렸는데, 부끄럽게도 필자는 거기에다 이 시의 시상을 적어보게 되었다. 필자가 언감생심 두 분을 흉내내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호주머니 안에 달리 메모할 종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생각은 휘발성이 강하다는 것을 그때도 이미 익히 알았던 터라, 은박지 뒷면에 볼펜으로 급하게 시상을 메모했던 그날이 어제의 일인 듯 생생하기만 하다. 필자는 그날, 지는 햇살이 희뿌옇게 비쳐들던 언덕길 어느 술집에서 벗들과 함께 술을 마시는 중에, 화장실을 다녀오다가 첫눈을 보고는 불현듯 이 시상을 떠올리게 되었다. 만일 그 술집의 화장실이 술집 안에 있기라도 했다면, 필자의 이 시는 끝내 지어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내’ 시도 꼭 ‘내’가 짓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술집에 들어갈 적에도 언덕길에 낙엽이 날리던 것을 보았는데, 첫눈이 내리던 그때에도 낙엽은 여전히 날리고 있었다. 그러나 첫눈은 금세 그치고 말았다. 결과를 놓고 얘기하자면 달라진 것이라고는 내린 첫눈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사실뿐이었다. 바로 그때 무엇인가가 뒤통수를 친 듯 생각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가을과 겨울의 경계에는 첫눈이 있다.” - 이것이 그날 필자가 적었던 메모의 전부였다. 이 시상을 바탕으로 오늘 소개한 시를 지었던 것인데, 짐작되겠지만 제1구와 제2구는 필자가 그날 목도했던 실경(實景)을 바탕으로 시화(詩化)시킨 것이다. 부인과 잠자리를 가지다가 문득 멋진 카피 문구를 떠올린 어느 카피 라이터가 메모할 필기구가 없어 급히 부인의 루즈로 경대(鏡臺)에 휘갈겼다는 전설적인 얘기에 비할 바는 못 된다 하더라도, 필자에게는 잊을 수 없는 메모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그러니 어찌 메모를 하찮게 여길 수 있겠는가!
첫눈이 도둑고양이처럼 이 누리를 찾을 날이 멀지 않았다. 아직껏 저토록 많은 잎새들도 이제 하나둘 뿌리로 돌아갈 채비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잎새들이 가는 길 위를 다시 눈이 하얗게 덮을 것이다. 올해는 첫눈을 보며 또 무엇을 생각하게 될까? 첫눈 하면 으레 떠오르기 마련인 첫사랑의 얼굴도 감감한 지금, 필자는 엉뚱하게도 “인간은 이향(異鄕)에서 태어난다. 산다는 것은 고향(故鄕)을 구하는 것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사는 것이다.”라고 한 베르너(Werner, Zacharias)의 글귀 한 대목을 떠올리고 있다. 문득 어린 시절 고향의 눈이 그립다.
이 시는 오언절구로 압운자는 ‘別(별)’과 ‘雪(설)’이다.
2024. 11. 26.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원시]
見初雪思秋冬之界(견초설사추동지계)
秋末葉紛飛(추말엽분비)
冬頭亦無別(동두역무별)
混淆何劃分(혼효하획분)
界上存初雪(계상존초설)
[주석]
* 見初雪(견초설) : 첫눈을 보다. / 思秋冬之界(사추동지계) : 가을과 겨울의 경계를 생각하다.
* 秋末(추말) : 가을 끝, 가을 끝자락. / 葉(엽) : 나뭇잎, 낙엽. / 紛飛(분비) : 어지럽게 날다.
* 冬頭(동두) : 겨울 머리, 겨울 첫머리. / 亦(역) : 또한, 역시. / 無別(무별) : 구별이 없다, 다를 바 없다.
* 混淆(혼효) : 어지럽히다, 어지럽게 뒤섞이다. / 何(하) : 어찌, 어떻게. / 劃分(획분) : 나누다, 구분하다.
* 界上(계상) : 경계 위. / 存初雪(존초설) : 첫눈이 있다. ‘初雪存’의 도치로 이해하면 된다.
[번역]
첫눈을 보고 가을과 겨울의 경계를 생각하다
가을 끝자락이면 잎새 어지러이 날고
겨울 첫머리 또한 다를 게 없는데
가을과 겨울 뒤섞인 걸 어떻게 나눌까?
그 경계 위에는 첫눈이 있지.
[시작노트]
가을은 단풍과 낙엽의 계절이다. 그리고 11월 들어 먼저 만나게 되는 절기인 입동(立冬)부터 그다음 절기인 소설(小雪)까지는, 가을에 물든 낙엽이 선사하는 정취를 우리가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시기이다. 이 보름에 이르는 기간을 두고 누구는 여전히 가을이라 하고, 또 누구는 벌써 겨울이라 하기도 한다. 도대체 어느 쪽이 맞는 것일까? 올해처럼 20도를 웃도는 날씨가 여러 날 계속되었던 그 ‘시기’를 두고 ‘입동이 지났으니 겨울’이라고 하기에는 아무래도 좀 뭣하지 않을까 싶다. 절기와 날씨의 엇박자가 환절기면 어김없이 확인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거의 매년 반복되어온 일이다.
필자는 이 시의 시상을 애초에 담뱃갑 은박지 뒷면에 메모하였더랬다. 지금은 담배를 끊은 지 1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이 시를 지을 당시에 필자는 두루두루 소문난 골초였다. 담뱃갑 은박지 뒷면에다 그 옛날 고려성 선생(본명 조경환)은 「나그네 설움」이라는 노랫말을 적었고, 이중섭 화가는 그림을 그렸는데, 부끄럽게도 필자는 거기에다 이 시의 시상을 적어보게 되었다. 필자가 언감생심 두 분을 흉내내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호주머니 안에 달리 메모할 종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생각은 휘발성이 강하다는 것을 그때도 이미 익히 알았던 터라, 은박지 뒷면에 볼펜으로 급하게 시상을 메모했던 그날이 어제의 일인 듯 생생하기만 하다. 필자는 그날, 지는 햇살이 희뿌옇게 비쳐들던 언덕길 어느 술집에서 벗들과 함께 술을 마시는 중에, 화장실을 다녀오다가 첫눈을 보고는 불현듯 이 시상을 떠올리게 되었다. 만일 그 술집의 화장실이 술집 안에 있기라도 했다면, 필자의 이 시는 끝내 지어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내’ 시도 꼭 ‘내’가 짓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술집에 들어갈 적에도 언덕길에 낙엽이 날리던 것을 보았는데, 첫눈이 내리던 그때에도 낙엽은 여전히 날리고 있었다. 그러나 첫눈은 금세 그치고 말았다. 결과를 놓고 얘기하자면 달라진 것이라고는 내린 첫눈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사실뿐이었다. 바로 그때 무엇인가가 뒤통수를 친 듯 생각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가을과 겨울의 경계에는 첫눈이 있다.” - 이것이 그날 필자가 적었던 메모의 전부였다. 이 시상을 바탕으로 오늘 소개한 시를 지었던 것인데, 짐작되겠지만 제1구와 제2구는 필자가 그날 목도했던 실경(實景)을 바탕으로 시화(詩化)시킨 것이다. 부인과 잠자리를 가지다가 문득 멋진 카피 문구를 떠올린 어느 카피 라이터가 메모할 필기구가 없어 급히 부인의 루즈로 경대(鏡臺)에 휘갈겼다는 전설적인 얘기에 비할 바는 못 된다 하더라도, 필자에게는 잊을 수 없는 메모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그러니 어찌 메모를 하찮게 여길 수 있겠는가!
첫눈이 도둑고양이처럼 이 누리를 찾을 날이 멀지 않았다. 아직껏 저토록 많은 잎새들도 이제 하나둘 뿌리로 돌아갈 채비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잎새들이 가는 길 위를 다시 눈이 하얗게 덮을 것이다. 올해는 첫눈을 보며 또 무엇을 생각하게 될까? 첫눈 하면 으레 떠오르기 마련인 첫사랑의 얼굴도 감감한 지금, 필자는 엉뚱하게도 “인간은 이향(異鄕)에서 태어난다. 산다는 것은 고향(故鄕)을 구하는 것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사는 것이다.”라고 한 베르너(Werner, Zacharias)의 글귀 한 대목을 떠올리고 있다. 문득 어린 시절 고향의 눈이 그립다.
이 시는 오언절구로 압운자는 ‘別(별)’과 ‘雪(설)’이다.
2024. 11. 26.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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