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 어딘가에서도 노력하고 있는 창작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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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정대건의 소설처럼 영화읽기
오시야마 키요타카 감독의 애니메이션 '룩 백'
오시야마 키요타카 감독의 애니메이션 '룩 백'
오시야마 키요타카 감독의 애니메이션 '룩백'은 만화 <체인소 맨>으로 유명한 후지모토 타츠키의 만화 <룩백>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나는 원작 만화를 감명 깊게 읽었기에 애니메이션이 개봉해 한창 화제일 때도 좀처럼 극장으로 발걸음하지 않았다. 원작에 대한 애정이 큰 경우 영화화된 결과물에 실망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룩백>을 극장에서 보고 온 사람들이 원작에 누를 끼치지 않았다며 호평 일색이었기에 뒤늦게 한 시간 남짓의 애니메이션을 감상했다.
초등학교 교지에 네 컷 만화를 그리며 자신이 그리는 만화에 자신감 넘치던 소녀 후지노는 어느 날 교지에 함께 실린 쿄모토의 만화를 보고 경악한다. 스케치 실력이 초등학생 수준이 아니라 자신과는 현저히 차이가 난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후지노는 쿄모토의 실력을 따라잡기 위해 분발하지만 결국 재능의 차이에 절망하고 “그만둘래”라고 말한다. 그렇게 후지노가 그림과 멀어져가던 어느 날, 후지노는 담임으로부터 쿄모토에게 졸업장을 전달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후지노는 탐탁지 않은 마음으로, 등교도 하지 않고 방 안에서 그림만 그리고 있는 쿄모토를 찾아간다. 그런데 쿄모토는 후지노에게 팬이라고 하며 후지노의 모든 작품을 보았다고 말한다. 약간 우쭐해진 마음에 후지노는 만화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해버리고, 다시 열심히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이렇듯 처음 창작의 동력은 인정욕구, 우월감, 우쭐한 마음에서 시작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함께 그림을 그리며 우정을 나누고 쿄모토는 후지노를 따라 세상 밖으로 나온다. '룩백'은 무엇보다도 묵묵한 태도에 관한 영화이다. 애니메이션 내내 이들의 열정은 땀 흘리며 집중하고 있는 얼굴이 아니라 만화를 그리고 있는 뒷모습으로 표현된다. 계절의 변화에 따른 풍경의 변화에도 묵묵한 후지노의 뒷모습이 관객에게 아로새겨진다. '룩백'은 지금 이 순간 어딘가에서도 노력하고 있는 창작자와 그런 창작자들이 그린 만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찬사이다. 뭔가를 강렬하게 열망해 본 사람이라면, 뭔가에 긴 시간을 몰두해 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현재 정진하고 있는 일이든, 떠나온 일이든 모든 일이 일어난 후에도 다시 작업실로 돌아간 후지노의 뒷모습에서 뭉클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정대건 소설가·감독
초등학교 교지에 네 컷 만화를 그리며 자신이 그리는 만화에 자신감 넘치던 소녀 후지노는 어느 날 교지에 함께 실린 쿄모토의 만화를 보고 경악한다. 스케치 실력이 초등학생 수준이 아니라 자신과는 현저히 차이가 난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후지노는 쿄모토의 실력을 따라잡기 위해 분발하지만 결국 재능의 차이에 절망하고 “그만둘래”라고 말한다. 그렇게 후지노가 그림과 멀어져가던 어느 날, 후지노는 담임으로부터 쿄모토에게 졸업장을 전달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후지노는 탐탁지 않은 마음으로, 등교도 하지 않고 방 안에서 그림만 그리고 있는 쿄모토를 찾아간다. 그런데 쿄모토는 후지노에게 팬이라고 하며 후지노의 모든 작품을 보았다고 말한다. 약간 우쭐해진 마음에 후지노는 만화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해버리고, 다시 열심히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이렇듯 처음 창작의 동력은 인정욕구, 우월감, 우쭐한 마음에서 시작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함께 그림을 그리며 우정을 나누고 쿄모토는 후지노를 따라 세상 밖으로 나온다. '룩백'은 무엇보다도 묵묵한 태도에 관한 영화이다. 애니메이션 내내 이들의 열정은 땀 흘리며 집중하고 있는 얼굴이 아니라 만화를 그리고 있는 뒷모습으로 표현된다. 계절의 변화에 따른 풍경의 변화에도 묵묵한 후지노의 뒷모습이 관객에게 아로새겨진다. '룩백'은 지금 이 순간 어딘가에서도 노력하고 있는 창작자와 그런 창작자들이 그린 만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찬사이다. 뭔가를 강렬하게 열망해 본 사람이라면, 뭔가에 긴 시간을 몰두해 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현재 정진하고 있는 일이든, 떠나온 일이든 모든 일이 일어난 후에도 다시 작업실로 돌아간 후지노의 뒷모습에서 뭉클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정대건 소설가·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