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산된 유럽의 배터리 희망…노스볼트, 파산 위기
유럽 배터리 제조업의 희망이었던 노스볼트가 파산을 앞두고 있다. 유럽 각국 정부, 전기차사, 금융사 등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배터리 수율(정상제품의 비율)을 잡지못해 결국 회사 문을 닫게될 위기다. 배터리 제조업을 유럽 친환경 산업의 한축으로 키우겠다는 유럽의 목표는 달성이 어려워졌다는 평가다. 유럽 전기차사들의 한국 및 중국 의존도는 더 높아질 것이란 관측이다.

○결국 수율문제 해결 못해


22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유럽 최대 배터리사 노스볼트는 미국에서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부채가 58억4천만달러(약 8조1737억원)인데 비해 가지고 있는 현금이 3000만달러(약 420억원)밖에 되지 않으면서 회사운영을 포기하기 직전이다. 노스볼트는 2022년 3989억원, 2023년 1조6795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고, 올해에도 지속적으로 손해를 보면서 빚은 늘어났고 현금은 말랐다. 사실상 재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노스볼트가 수율 문제를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캐즘(대중화전 일시적 수요부진)에도 유럽 고객사들의 충분한 주문이 있었지만, 제대로 배터리를 생산하지 못했다. 수율은 생산된 배터리 중 품질 기준을 만족하는 제품의 비율을 뜻한다. 한국, 중국 주요 업체의 수율이 95% 이상인 것에 비해 노스볼트는 40% 미만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양극재, 음극재 등 소재를 사와서 100개의 배터리를 만들면 60개 이상은 버렸다는 의미다. 공급하는 배터리가 워낙 적으니 소재 구매비용조차 충당하지 못했다. 또 고객사에 계약된 물량을 납품하지 못했고, 그나마 납품되는 제품도 퀄리티가 형편없어 신뢰를 잃었다.

노스볼트는 중국산 장비를 한국산 장비로 바꾸는 등 수율을 개선하기위해 여러 시도를 했지만 문제는 개선되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주요 주주이자 고객이었던 BMW조차 지난 6월 노스볼트와 맺었던 20억달러(약 2조8042억원) 규모의 배터리셀 공급 계약을 해지했다. 해지된 물량은 삼성SDI 등으로 갔다.

노스볼트와 유럽 정부 등이 배터리 제조의 기술적 진입장벽을 과소평가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21년 처음 배터리공장을 지은 노스볼트는 풍부한 자금 지원만 이뤄진다면 수율을 빠르게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봤지만 제조역량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평가다. 국내 한 배터리업체 전 대표는 “노스볼트는 특히 전극공정에 문제가 있었는데, 온도 등 아주 작은 노이즈에도 수율이 크게 달라지는 작업”이라며 “이걸 해결하려면 현장 말단직원부터 실장, 단장들까지 수십가지 변수에 대한 노하우가 있어야 하는데 노스볼트는 그게 안됐다”고 말했다.

유럽 내부에서조차 비판이 나오는 제조현장의 낮은 노동생산성, 적은 노동시간 등이 문제가 됐다는 분석이다. 노스볼트 관계사 한 직원은 “배터리 제조가 밖에서 보기와 달리 그렇게 ‘우아한’ 사업이 아니다”라며 “수율을 단기간에 끌어올리려면 한국, 중국처럼 엔지니어와 현장 노동자들이 밤을 세워 피땀을 갈아넣어야 하는데 노스볼트 공장 현장은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유럽시장내 韓-中 경쟁 더 치열해 질 것”


노스볼트의 파산으로 글로벌 배터리업계의 한중일 체제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란 관측이다. 폭스바겐, BMW, 벤츠 등 유럽 전기차 제조사들은 그동안 한국,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노스볼트에 의도적으로 물량을 넘겨왔다. 유럽 정부와 금융사들 역시 친환경투자라는 명목으로 녹색금융 자금을 집중적으로 투입했다. 노스볼트가 지금까지 이런 방식으로 투자받은 금액만 150억달러(약 21조원)가 넘는다.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지원을 바탕으로 노스볼트는 한국, 중국 경쟁사에 버금가는 180GWh(기가와트시) 규모의 생산체제를 2026년까지 마련해 유럽 전기차사들을 지원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무산되면서 유럽 완성차업체 및 유럽 정부는 전략을 전면 개편해야하는 상황이 됐다. 노스볼트보다 규모가 작은 영국 브리티시볼트, 노르웨이 모로우배터리·프레이어, 프랑스 ACC·베르코어 등도 수율 문제와 실적부진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 배터리업체들로서는 기회이자 위기라는 분석이다. 유럽이 기대했던 노스볼트의 빈자리를 한국 업체가 공략할 수 있다면 공급물량을 확 높일 수 있다. 한국 배터리사들은 유럽 현지 생산 확대 등을 통해 유럽 고객사 물량 추가 확보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다.

반면 중국업체들이 빈자리를 채운다면 한중간 점유율 및 실적 격차는 더 커질수 있다. 현재 유럽 정부는 고관세 정책 등을 카드로 CATL 등 중국업체의 현지생산을 유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입을 원천차단하고 있는 미국과 달리 유럽 현지생산을 하게 해주는 대신 기술 이전을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과정에서 유럽과 중국의 밀착이 이뤄진다면 실제 배터리 물량 계약은 중국업체들 중심으로 이뤄질 수 있다. 박태성 한국배터리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한국업체로서는 유럽시장에서 중국과의 더 치열한 경쟁을 준비해야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