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다림질과 쿠키 만들기로 풀어쓴 반도체 이야기
‘세기의 천재’ 존 폰 노이만은 1944년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세계 최초의 범용 디지털 컴퓨터인 에니악(ENIAC)을 접했다. 단번에 컴퓨터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에니악 후속인 에드박(EDVAC) 설계에 참여했다. 그 과정에서 ‘폰 노이만 구조’를 고안했다. 프로그램과 데이터를 메모리에 저장해두고, 필요할 때 중앙처리장치(CPU)로 보내 처리하는 방식이다. PC와 스마트폰 등 현재 대부분의 컴퓨터가 이 구조를 따른다.

인공지능(AI) 시대에 폰 노이만 구조는 골칫거리다. AI 학습을 위해선 방대한 데이터가 메모리와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오가야 한다. 그 전송 속도가 GPU 연산 속도보다 느린 까닭에 병목 현상이 발생한다. GPU 성능이 높아져도 병목 현상을 해소하지 못하면 성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그래서 발명된 것이 고대역폭메모리(HBM)다. HBM은 D램을 여러 겹 위로 쌓은 것으로, GPU 바로 옆에 붙인다. 길은 넓히고, 거리는 짧게 해 데이터가 메모리와 GPU 사이를 빠르게 오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술술 읽히는 친절한 반도체 투자>는 반도체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들과 국회 보좌진 등이 만든 연구 모임인 ‘팀 포카칩’에서 쓴 책이다. 반도체가 무엇인지부터 한국 반도체 산업의 역사,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현황과 전망, 주요 업체와 인물, 미래 반도체 기술 등까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정말 쉬운 말로 쓰였다’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전문 용어를 빼놓고선 반도체를 알 수 없다. 반도체 제조 과정만 해도 웨이퍼, 식각, 증착 같은 말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책을 보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HBM과 관련해선 위로 쌓은 D램을 어떻게 접착하는지에 따라 MR-TUF와 TC-NCF로 나뉜다. 책은 SK하이닉스가 쓰는 MR-TUF를 “칩 사이에 보호재를 넣은 후 전체를 한 번에 굳히는 방식”이라며 “쿠키를 구울 때처럼 대형 오븐에 여러 개의 칩을 한꺼번에 집어넣고 한증막 같은 오븐 안에서 납을 녹이면서 때운다”고 설명한다. 삼성전자가 쓰는 TC-NCF는 “다리미 같은 장치로 눌러서 붙이는 방식”이라며 “NCF라는 절연 필름을 덧대고 일정 온도가 넘어서면 NCF가 녹으면서 칩들이 고정된다”고 했다. 반도체의 세계를 쉽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책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