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구와바라 게이이치(桑原敬一)는 가미카제(神風) 특공대 ‘생존자’다. 1945년 5월 4일 규슈에서 오키나와로 향하던 그는 엔진 고장으로 기체가 불시착하면서 ‘죽음의 비행’에서 살아 돌아왔다. 구와바라처럼 전쟁이 끝난 후 자신이 가미카제 생존자임을 공개한 사례는 많지 않지만 실제로는 적지 않은 이가 살아남았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격전지 오키나와로 가는 길목인 가고시마현 도카라열도에는 ‘불시착’한 비행기가 줄을 이었다. 특히 스와노세지마, 다이라지마, 나카노시마 세 섬에 중도 착륙이 집중됐다. 그중 나카노시마에만 1945년 4월 16일부터 5월 19일 사이 최소 8대의 가미카제 비행기가 ‘불시착’했고, 대부분 조종사가 제 발로 걸어서 비행기를 빠져나왔다. 가고시마현 지란 항공기지에서 이오지마로 향하던 전폭기 상당수는 이륙하자마자 몇 분 거리에 있는 미시마라는 작은 섬에 비상 착륙했다.

[토요칼럼] 가미카제 조종사 vs 러시아의 북한군
가미카제 생존자들을 인터뷰해 <불시착>이란 책을 낸 히다카 고타로(日高恒太朗)에 따르면 세 번이나 불시착했다가 귀환한 한 특공대원은 끝까지 “고의로 불시착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기체에 결함이 있었다고만 주장했다. 일본 군부는 “(가미카제 조종사들이) 기상 상태가 좋지 않았다거나 기체가 고장 났다는 이유를 들지만 정말로 고장 난 것인지 고의로 착륙한 것인지 분명치 않다”고 못마땅해했다.

후쿠오카에 있는 ‘무운을 떨친 군인의 숙사’란 뜻의 신부료(振武寮)라는 군 시설에 수용됐던 생환자 일부는 다시 비행기에 올라 목숨을 버렸지만, 많은 수가 정신교육을 받던 중 종전을 맞이했다. 군국주의의 강압 속에 군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야마토(大和), 아사히(朝日), 야마사쿠라(山), 시키시마(敷島) 같은 국수주의적 이름을 단 자살 편대들이 ‘지원’의 형식으로 등 떠밀려 출진했지만, 그 속에서 개인들은 필사적으로 저마다의 ‘살길’을 찾았던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장에 파병된 북한군 소식이 속속 전해지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13일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이 지난 2주간 쿠르스크 지역으로 이동해 전장에 배치를 완료했다”며 “이미 전투에 참여 중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확인했다. 앞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북한군이 쿠르스크 지역 전투에 투입돼 말 그대로 ‘전투 중’”이라고 했다. 북한도 러시아도 떳떳하게 ‘참전했다’고 밝히지 못하는 명분 없는 더러운 전쟁에, 자국 군복을 입지도 못한 ‘용병’ 북한군은 총알받이가 돼 최전선으로 떠밀리고 있다.

‘고기 분쇄기 전술’이라는 용어로 대표되는 러시아의 군사 문화는 예부터 인명 경시로 악명이 높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자신을 사지(死地)로 내모는 것에 치를 떤 수많은 러시아인이 침략자 나치 독일의 편에 서서 조국에 총을 겨누며 제 살길을 찾았을 정도다. 독일어로 자발적 조력자라는 뜻을 지닌 ‘힐프스빌리게’의 약칭인 ‘히비’로 흔히 불리던 반(反)소련 활동자는 그 수가 60만 명을 넘었다. 옛 악습을 버리지 못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도 문자 그대로 ‘사람을 갈아 넣는’ 전술을 반복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귀환’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이 가까워졌다는 목소리가 커졌다지만, 전쟁터의 참상은 변한 게 없다. 러시아군만 하루 사상자가 1000여 명에 이르는 소모전이 이어지고 있다. 각국 지도자가 지도를 펴 놓은 채 미래의 평화를 얘기하더라도 당장 생지옥에 던져진 북한군의 처지는 달라질 것이 없다. 무엇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최대한 유리한 조건으로 전쟁을 끝내기 위해 더 많은 ‘남의 나라 자식’의 피를 뿌리는 데 주저할 이유가 없다. 김정은 역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대기권 재진입 기술 같은 첨단 무기 기술만 얻을 수 있다면 생때같은 북한군의 목숨은 얼마를 희생하든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다.

언어도, 환경도 모두 낯선 이국의 전장에 던져진 북한군의 처지는 자폭할 미군함을 찾아 망망대해를 떠돌던 가미카제 특공대원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빈틈이 전혀 없을 것 같은 철권통치도 불의한 명령으로부터 살고자 하는 현장 병사들의 의지를 틀어막진 못했다. ‘북한판 불시착’은 이미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막다른 길에 몰렸던 푸틴과 김정은이 북한군 젊은이를 희생양 삼아 도모하던 무리수가 오히려 수많은 북한군이 ‘살길’을 찾는 단초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