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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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기후 환경이 후덥지근한 아열대로 바뀌면서 국내에서 재배하는 과일 색깔도 변하고 있다. 제주에선 ‘노란 귤’ 대신 ‘초록 귤’이, 대구·경북에선 ‘빨간 사과’ 대신 ‘노란 사과’가 재배되기 시작했다. 정부도 이런 기후변화에 대응해 새로운 품종의 과일이 잘 팔리도록 대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귤 출하 기준 바꾼 제주도의회

[단독] 귤 많이 먹으면 손 노래졌는데…곧 옛날이야기 된다
22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제주도의회는 지난달 2일 ‘제주특별자치도 감귤 생산 및 유통에 관한 조례’를 개정해 감귤 상품 출하 기준에서 ‘착색도’ 항목을 없앴다. 기존엔 맨눈으로 봤을 때 귤의 노란 부분이 50% 이상이어야 상품으로 판매할 수 있었지만 바뀐 기준은 초록빛을 띠어도 당도 기준을 충족하면 출하할 수 있다.

제주도의회가 기준을 바꾼 이유는 기후변화 때문이다. 과일이 착색되려면 일교차가 커야 하는데 최근 제주도에선 열대야가 많아지면서 일교차가 줄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7~9월 제주 북부 기준 밤 최저기온이 25도 이상인 ‘열대야 일수’는 75일에 달했다. 작년(50일)보다 25일 늘어난 것으로 역대 최장 기록이다. 이로 인해 9월 말부터 10월 말까지 출하되는 ‘극조생 감귤’ 중 착색이 덜 된 제품이 많아졌다고 한다. 제주도청 관계자는 “극조생 감귤 품종이 기존 ‘일남 1호’에서 ‘유라 계통’으로 바뀌는 추세인데, 유라 계통의 품종 특성상 일남 1호보다 착색 정도가 덜하다 보니 초록 귤이 더 많이 생산됐다”고 설명했다.

‘국민 과일’인 사과 색깔도 바뀌고 있다. 날씨가 아열대 기후로 변하면서 사과가 빨갛게 착색되기 어려워서다. 국내 사과 주산지 중 한 곳인 경북 군위군은 올해부터 2028년까지 10㏊ 규모의 ‘골든볼’ 생산 전문 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골든볼은 껍질이 노란빛을 띠는 사과 품종이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가 과일 품종에 미치는 영향이 앞으로 더 커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은 화석연료 사용량 증가와 도시 위주의 개발 확대를 가정한 기후변화 시나리오(SSP5-8.5)에서 남한의 경지면적(156만㏊) 중 아열대 기후권 비중이 2050년 55.9%(87만2000㏊)로 높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1991년부터 2020년 평균(10.3%)의 5.4배 규모다.

○정부, 농산물 도매법인 평가 기준 개정

정부도 기후변화가 과수산업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농산물 도매법인을 평가하는 지표에 ‘신품종유통’과 ‘산지 개발’ 항목을 추가할 계획이다. 적용 시점은 내년부터다. 기후변화로 달라지는 과일 품종을 시장에 유통할 수 있게 하고, 새로운 과일 산지 개발을 유도하기 위한 조치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맛과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지만 외관상 흠집이 있다는 이유로 상품성이 떨어지는 ‘못난이 과일’ 유통량을 늘린 도매법인을 평가할 때 가점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농식품부는 다음달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농산물 기후변화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농협 공판장을 포함해 총 82개 법인이 내년부터 새로운 지표에 따라 평가를 받는다. 농산물 도매법인은 도매법인 지정 기간 평가 결과 하위 10%면서 100점 만점에 60점 이하인 ‘부진’ 등급을 2년 연속 받거나 부진을 총 3회 이상 받으면 퇴출당한다. 지정 기간은 도매시장마다 다르다. 서울 가락 농수산물도매시장의 도매법인 지정 기간은 5년이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