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그룹이 최대주주(약 20%)인 스웨덴 배터리 셀 제조사 노스볼트가 미국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독일 캐나다 등으로 공장을 확대해 연간 180GWh의 배터리를 생산함으로써 유럽의 ‘배터리 독립’을 이루겠다는 꿈이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10개를 만들면 불량품이 6개에 달할 정도로 수율을 끌어올리지 못한 데다 북유럽의 적은 노동시간, 고임금 등 과도한 ‘노동 중시’ 환경에 발목을 잡혔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럽 배터리 희망' 노스볼트 파산… 고임금 노동환경에 발목잡혔다

○북유럽 제조강국도 수율에 ‘무릎’

22일 외신 등에 따르면 노스볼트는 미국 연방법원의 감독하에 파산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미국 연방 파산법은 현 경영진이 경영권을 유지한 채 자금을 조달할 기회를 준다. 유럽연합(EU)이 아니라 미국에 파산보호를 신청한 이유다. 노스볼트 재무 위기의 ‘트리거’는 BMW에서 비롯됐다. 노스볼트의 주요 주주임에도 BMW는 지난 6월 20억달러(약 2조8042억원) 규모 배터리 셀 공급 계약을 해지했다. 해지된 물량은 삼성SDI 등으로 갔다.

부채가 58억4000만달러(약 8조1737억원)에 달하는데도 추가 투자 유치에 실패, 보유 현금이 3000만달러(약 420억원)로 고갈돼 결국 채무 조정을 신청했다. 노스볼트는 채권자와의 협의를 통해 부채 상환을 잠정 중단하고 새로운 투자자를 찾아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EU와 중국의 밀착 가능성에 주목했다. 현재 EU는 고관세 정책 등을 협상 카드로 세계 1위 배터리 셀 제조사인 CATL 등 중국 업체의 현지 생산을 유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레드 테크’(중국의 첨단 기술)의 진입을 원천 차단하는 미국과 달리 EU는 시장을 내주되 기술(지식재산권)을 달라고 중국에 요구하고 있다. 노스볼트는 그동안 폭스바겐, BMW, 지멘스, 골드만삭스, 블랙록, 독일·캐나다 정부 등으로부터 150억달러(약 21조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박태성 한국배터리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한국 업체는 유럽시장에서 중국과 더 치열한 경쟁을 벌일 준비를 해야 할 수 있다”고 관측했다.

○“韓·中 경쟁 더 치열해질 것”

노스볼트가 위기를 극복할지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노스볼트는 2022년 3989억원, 2023년 1조6795억원의 순손실을 냈고 올해도 지속적으로 손해를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노스볼트와 유럽 정부 등이 배터리 제조의 기술적 진입장벽을 과소평가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21년 스웨덴 북부의 셸레프테오에 처음 배터리 공장을 지은 노스볼트는 풍부한 자금 지원만 이뤄진다면 수율을 빠르게 개선할 것으로 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조 역량의 한계가 드러났다.

한국, 중국 주요 업체의 수율이 95% 이상인 것에 비해 노스볼트는 40% 미만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배터리 업체 최고경영자(CEO) 출신 한 전문가는 “노스볼트는 특히 전극공정에 문제가 있었는데, 온도 등 아주 작은 노이즈에도 수율이 크게 달라지는 작업”이라며 “이걸 해결하려면 현장 말단 직원부터 실장, 단장까지 수십 가지 변수에 대한 노하우가 있어야 하지만 노스볼트는 이를 실현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중국 업체들이 산적한 노스볼트의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도 작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CATL조차 중국에서 공장을 가동한 경험이 거의 전부”라며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에서 제너럴모터스(GM)와 배터리 합작 공장을 짓고 가동 한 달 만에 수율 90% 이상을 달성한 것을 중국과 유럽이 단숨에 따라잡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K배터리에 기회 요인이 더 많다고 전망하는 이유다.

노스볼트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 영국 브리티시볼트, 노르웨이 모로배터리·프레이어, 프랑스 ACC·베르코어 등 유럽의 다른 배터리 업체도 수율 문제와 실적 부진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