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쇼크'에 손잡은 한화·HD현대…70조 캐나다 잠수함 정조준
7조8000억원짜리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수주를 놓고 소송전을 벌여온 한화그룹과 HD현대그룹이 전격 화해했다. 지난 8일 10조원 규모 호주 군함 입찰에서 두 업체 모두 탈락한 원인이 소송 리스크와 이에 따른 정부와의 불협화음이었다는 판단에서다. 한화와 HD현대는 앞으로 해외 함정 프로젝트가 나올 때마다 정부와 ‘K방산 원 팀’을 구성해 입찰에 나서기로 했다. 김동관 한화 부회장과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이 만나 해당 사안을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본지 11월 19일자 A1, 4면 참조

한화오션은 22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를 방문해 지난 3월 HD현대중공업을 고발한 데 대한 취소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한화는 “상호 보완과 협력의 디딤돌을 마련하는 것이 국익을 위한 일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HD현대중공업은 “K방산 경쟁력 강화, 수출 확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두 그룹의 갈등은 지난해 11월 대법원이 HD현대중공업 직원의 군사기밀 유출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면서 시작됐다. 한화오션은 “HD현대는 KDDX 입찰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방위사업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한화는 고발장을 제출했다.

지난해 6월 베트남 경제인 만찬간담회에서 만난 김동관 한화 부회장(왼쪽)과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  한경DB
지난해 6월 베트남 경제인 만찬간담회에서 만난 김동관 한화 부회장(왼쪽)과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 한경DB
두 회사가 손잡기로 한 것은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면 건국 이래 처음 찾아온 ‘방산 호황’을 제 발로 걷어찰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다. 호주 군함 입찰에서 일본 미쓰비시중공업과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스(TKMS)보다 가성비가 높은 두 회사가 탈락한 배경에 소송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과 독일 업체는 각국 정부와 협력해 호주 군당국과 긴밀하게 접촉했지만, 한국은 갈등 관계에 있는 두 회사가 뛰어든 탓에 정부와 손발을 맞추지 못했다.

두 회사는 입찰을 진행 중인 폴란드(3조원 규모), 캐나다(70조원 규모) 잠수함 프로젝트에서 ‘원 팀’으로 출격할 예정이다. 잠수함 기술력이 높은 한화오션이 앞에 서되 물량을 따내면 HD현대중공업과 나눠서 건조할 계획이다.

한화오션·HD현대重 화해…K방산 '원팀' 뜬다
10조 호주 잠수함 수주전의 교훈…차기 구축함사업 놓곤 이견 여전

지난 8일 나온 호주 정부의 10조원짜리 군함 입찰 결과에 한국 방위산업 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경쟁 업체의 절반(척당 3500억~4000억원) 가격에 빠른 납기도 약속했지만 두 회사를 뽑는 최종 후보(쇼트리스트)에도 못 올랐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독일 일본 업체보다 경쟁력이 높은 만큼 쇼트리스트에 오를 확률을 90% 이상으로 봤다”며 “호주 현지에서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법적 공방을 문제 삼는 목소리가 나온 게 결정타가 됐다”고 지적했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 정기선 HD현대그룹 수석부회장이 본격적인 만남을 가진 것은 이즈음부터다. 수차례 만남 끝에 법적 공방을 끝내고 추후 해외 입찰에서 ‘원팀’으로 나서는 것에 합의했다. 방위사업청 관계자는 22일 “두 회사가 공동으로 입찰하면 수주 경쟁력이 훨씬 높아질 것”이라며 환영했다.

○지난 1년간의 공방 마무리

두 회사의 갈등은 HD현대중공업 직원이 군사기밀 유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으며 시작됐다.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자 한화오션은 이 판결을 토대로 “HD현대중공업은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에 입찰할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방사청은 지난 2월 말 KDDX 사업 입찰 제한 사항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한화오션은 이에 불복해 3월 경찰에 KDDX 자료 불법 탈취 사건에 HD현대중공업 임원이 개입했는지 수사해 달라며 고발장을 제출했고, HD현대중공업은 명예훼손 혐의로 맞고소했다.

두 회사의 갈등이 증폭된 배경에는 과점 형태의 방산시장 구조가 자리잡고 있다. 예컨대 구축함 사업자는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뿐이다. 유일한 라이벌만 꺾으면 모든 걸 가져가는 구조다. 더구나 올해는 7조8000억원짜리 KDDX 사업이 나오는 만큼 두 회사 모두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시작한 법적 공방은 결국 ‘호주 군함 수주 실패’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두 회사가 법적 공방 과정에서 상대방의 기술력과 도덕성을 깎아내리자 호주 현지 여론도 싸늘하게 식었다.

○원팀으로 수주 경쟁력 높인다

일본의 전략은 한국과 달랐다. 일본 정부는 원팀 구성을 위해 해외 입찰엔 미쓰비시가 대표로 참여하되, 일감은 미쓰비시와 가와사키가 나누는 구조를 만들었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은 군함 수출 경험이 없어 한 수 아래로 봤다”며 “한국의 내홍이 수주 실패의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독일 역시 자국 회사들이 경쟁하지 않도록 항공기와 군함, 유도 무기 등을 중심으로 통합 작업을 했다. 호주 군함 수주에 성공한 티센크루프 역시 조선소 통합 등을 통해 대형화에 성공했다.

한화그룹과 HD현대그룹도 일본과 독일 전략을 쓰기로 했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입찰 중인 캐나다 정부 잠수함이다. 캐나다 정부가 3000t급 디젤 잠수함을 최대 12척 구매하는 사업이다. 잠수함 프로젝트 예산은 70조원, 건조 금액은 20조원에 달한다. 이후엔 각각 3조원과 2조원 규모의 폴란드·필리핀 잠수함 입찰 사업에 함께 참여할 계획이다.

당장 화해의 모양새는 갖췄지만 갈등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건 아니다. KDDX 사업을 놓고 두 회사의 견해가 엇갈려서다. 한화오션은 해외 입찰뿐 아니라 KDDX 사업도 두 회사가 나눠 수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비해 HD현대중공업은 KDDX 사업 기본설계를 한 만큼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까지 수의 계약 형태로 수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방사청은 조만간 KDDX 상세설계 사업자를 수의 계약으로 정할지, 경쟁 입찰로 뽑을지 결정할 계획이다.

김우섭/김형규 기자 duter@hankyung.com